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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오늘날 외국을 탐하여 우리에게 일용할 죽음을 주옵시고, 주 아래 하나된 나라가 아닌 다만 무적으로 인도 하옵시며, 대게 나라에 자유와 개똥이 넘치옵나이다.”

 

이 대사는 연극 『소년에게서 온 편지: 수취인불명』의 핵심을 꿰뚫는다.

 

주기도문을 패러디한 이 문장은, 국가주의와 맹목적인 충성심이 어떻게 개인의 도덕성과 자아를 잠식하는지를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서 3년 연속 퍼스트 어워드를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고, 뉴욕과 런던을 거쳐 드디어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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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와 나타샤, 두 배우이자 창작자는 10년간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섬세하게 구축해냈다. 특히 클로이와 나타샤의 원작과 캐스팅 그대로 공연된 오리지널 내한 공연이었기에, 작품의 의도와 맥락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연극은 보이스카우트 캠프에서 여름을 보내는 두 소년, 에이스와 그래스호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들은 매일 아침 미국 국기에 대한 선서를 반복하며,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이러한 장면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이 어떻게 교육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연극은 이 충성이 어떻게 전쟁 참여로 이어지는지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대통령이 신의 위치를 대신하고, 죽음이 번영을 대신하는 장면은 강렬한 상징성을 띠며, 국가 권력이 종교적 신념처럼 절대화되어 개인의 도덕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설정은 관객에게 국가에 대한 무비판적인 충성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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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스호퍼와 에이스는 보이스카우트 소년으로, ‘남자다움’을 제1원칙으로 삼는 아이들이다.

 

그들은 밧줄타기, 암호로 대화하기, 군인 흉내 내기 같은 놀이를 하며 우정을 쌓고 남성성을 다져간다. 그런 그들에게 대통령을 향한 충성과 국가를 위한 희생, 총칼을 든 군인은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존재다.


하지만 두 소년이 가진 이 가치관의 원형은 결국 시대적 배경 속에서 주입된 이데올로기다. 그래서인지 충성, 충성, 또 충성을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은 한편으로 무척 안타깝게 다가왔다. 과연 소년들이 택한 길은, 그들의 주체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그들은 국가와 시대가 만든 이상 속에 갇혀 성장하는 인물들로, ‘주어진 길’을 착실히 걸어가는 데 그친다. 어디까지가 자아의 의지이고, 어디서부터 강요된 믿음인지, 연극을 관람하는 내내 저울질하게 되었다. 게다가 보이스카우트와 군인을 오가는 구성 덕분에, 무엇이 현실이고 허구인지 경계가 무너지고, 그 속에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이데올로기의 진정성 또한 흐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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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단순한 전쟁 드라마를 넘어, 국가주의와 전쟁의 도덕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 물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에 대한 무비판적인 충성과 전쟁의 도덕성에 대한 질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중요한 이슈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연극은 부조리극의 형식을 통해 관객에게 전쟁과 국가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제시했다. 두 소년의 이야기는 개인의 도덕적 선택과 그 책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무대 위의 이야기가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 이유일 테다.


『소년에게서 온 편지: 수취인불명』은 전쟁과 국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하는 작품으로,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무대에서 두 소년이 전하는 외침은 어쩌면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보내는 편지일지 모른다.

 

단순한 연극을 넘어, 마음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질문을 던지는 예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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