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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서 3년 연속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연극 <소년에게서 온 편지: 수취인불명>이 드디어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공연예술에 관심이 많은 관객으로서 자연히 주목하게 된 내한 소식이었다.


영어 연극은 처음이라 낯설기도 했지만 보다 보니 금세 빠져들었다. 이 작품은 언어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소극장 연극이 갖는 본질은 국적 불문 사람을 끌어당기고 연결되게 만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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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함께하며 우정을 다지던 두 소년 '메뚜기'와 '에이스'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직이고 말하는 소년들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과 그때 하던 별의별 놀이들이 생각나 잠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천진함 뒤로 점차 진하게 배어나는 사회의 어둠이 보였다.

 

소년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국가에 맹세하는 장면, 존슨 대통령의 이름을 마치 신처럼, 아버지 대신처럼 부르는 장면 등이 반복되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모두 군인이었다는 말 등 짧은 대사에서도 비극적인 배경이 느껴졌다.


그 소년들은 줄곧 '괜찮은 사내'로 성장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마지막까지도 그들은 엄마뿐 아니라 대통령을 함께 떠올리며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 대목에서는 안타까움과 화가 섞인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가장 연약한 구성원들은 국가적 세뇌와 폭력에 언제나 더 무분별하게 노출된다.


이러한 스토리와 대사를 통해 전쟁의 그림자, 남성성과 강인함에 대한 이데올로기 등을 깊은 곳에서부터 풍자해 내는 극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장난처럼, 놀이처럼 행해지는 끔찍한 폭력들에 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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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과 연기의 측면에서 단연 압권이었던 것은 두 배우의 에너지다.

 

소품은 타이어 하나뿐인 무대에서 클로이와 나타샤는 맨발로 몸을 아끼지 않으며 1시간 내내 뛰고 구르는 열연을 펼쳤다. 액션, 무용, 체조,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는 경이로운 예술이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장치는 배우들이 중간중간 하모니카로 연주하는 비틀즈의 음악이었다. 초반부의 씁쓸한 경쾌함을 담은 'Ob-La-Di, Ob-La-Da'부터 후반부의 무너질 듯한 'Yesterday'까지, 적재적소에 감정을 표현해 주며 장면을 전환한다.


그 외 대부분의 상황은 조명과 음향으로 적절히 구현해 냈다. 보이스카우트 시절과 베트남 역시 초록빛 조명으로 구분한다. 기차가 지나가는 부분, 물속에 빠져 움직이는 부분 등에서도 생생한 감각적 몰입이 가능했다.


속도감 있고 군더더기 없는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극 내내 차오르던 불안이 절정으로 치닫고, 휘몰아치듯 지나간다. "살면서 가장 안도한 순간이었다"라는 대사와 함께 돌이킬 수 없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50년 전 베트남전쟁 이야기지만, 지금도 이스라엘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이 극은 끝나지 않는다.

 

특히 한국은 비슷한 어두운 역사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6·25전쟁 학도병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역사다. 한국 관객들에게 더 의미 있는 극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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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우리말 단어들이 있는데, 소년이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완전한 아이도, 어른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세상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아직 순수함도 간직한, 풋내 나는 존재들.


이 연극은 그런 어느 소년에게서 온 편지다. 수취인은 불명이다. 세계의 많은 이들이 이것을 열어 읽어보면 좋겠다. 클로이와 나타샤도 그런 마음으로 이 극을 쓰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기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에 대한 부족한 답장을 띄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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