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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지 않은 것을 너무 쉽게 알 수 있는 세상에서 난 너무 빨리 적응했다. 초등학생 때 유튜브를 본 이래로 세계 저편에 있는 이들의 삶을 가까이서 체험하는 듯한 착각을 하고, 신기함과 궁금증이 해소되었다는 기분을 의아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저렇게도 사는구나,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며 아는 것이 늘어났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내게 많은 것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해본 것과 아닌 것의 이분법으로 갈라졌고 그 경계는 너무 가볍고 단순했다. 현장에서 본 것들과 인터넷으로 본 곳들을 혼동하기 시작하고 그것들을 내가 아는 것 같다고 착각한 순간에서야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가상현실과 현실을 착각하는 일들처럼 나도 비슷하게 경험을 왜곡했다. 그런 내게 일단 해보고 말하라는 것은 무책임하고 마음 편하게만 느껴졌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큰 고민 없이 툭툭 결정하는 것 같은데 나만 헤매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어딘가에 있는 누구든지 그의 삶과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건 편리하지만 직접 경험하는 일들은 미련해 보이게 만들었다. SNS로 쓱쓱 구경하는 모든 대단한 삶들을 보며 나라는 개인은 현실에서보다 쪼그라들었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 라는 말이 과도하게 연결된 듯한 순간 필요했다. 해보지 않은 것들을 타인의 경험에 기대어 어떨지 추측하고 결정해 왔다. 하지만 이럴 때 모든 기준을 세상 속 누군가에게 전가해버리고 개인으로의 나는 고통 없는 보상만 누리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도 솔직한 진실이다. 비교하자면 나보다 잘난 (것 같은) 사람은 끝도 없이 많다. 그 메커니즘 속에서는 절대 행복할 수가 없다. 외적인 요소들,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점을 바꾼다 해도 절대 바꿀 수 없는 점들은 여전히 남는다. 부모나 집안 건강과 재정 같은 것들은 정말 끝이 없어서 내가 궁궐같은 집에 살아도 어느 먼 나라 재벌에 비하면 가난해지는 말도 안 되는 기준이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그 누군가의 삶도 살아본 적이 없다.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삶은 나의 삶 하나뿐인데 자꾸 타인의 삶과 경험을 아는 것처럼 굴곤 한다.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어려움이 있고 나의 곤궁함 역시 나만 아는 시간이다. 그 단순한 사고가 꼬이고 꼬인 내게는 신비한 진실처럼 느껴졌다. 아예 트랙에서 벗어나 스스로와의 싸움을 하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게 명증해졌다.

 

나만 아는 시간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선택한 것은 "진짜 경험을 하기"였다. 돌이켜보면 고민-선택-후회의 과정에서 내가 실질적으로 한 일은 없었다. 고민 중에는 늘 검색이 수반되었고 그 결과가 있다면 있는 대로, 없다면 없는 대로 타인의 정보에 선택을 의존했다.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기준과 범위, 경험 속에 자발적으로 수동적 인간이 되었다. 그러다 인생에서 몇 년쯤 날렸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궁금증을 갖는 이 순간이 내 삶에서 재밌는 시작이 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할까 말까 고민이 들 때는 검색하지 않기로 했다. 결정하지 않고서는 타인에게 어떠냐고 질문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하나씩 경험해 보고 지워나갔다. 진짜 경험한 것만 믿고 남기는 나만의 소거법이었다.


어쩌면 나는 정신적 독립을 사람에게서가 아닌 인터넷에서 한 것 같다. 어떤 정보와 경험이 궁금해 미치겠다면 책으로 해소했다. 인터넷 검색은 가장 나중으로 미뤘다. 가장 쉬운 방법이 나를 의존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걸 늦게나마 알아서다 . 그렇게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기본적인 것만(교통편, 숙소) 파악해 떠나고, 취업을 해야겠다면 일단 방향 맞는 회사를 경험해 보고,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일단 3개월은 하자는 마음으로 지내는 요즘이 참 산뜻하다. 해보고 싶은 것, 궁금한 것, 모르는 것에 나를 대입해 보며 지워나가는 것이 느려 보이지만 지치지 않고 즐겁게 나아가는 방법임을 믿기 때문이다.


또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요즘, 여전히 내 계획을 떠벌리고 싶기도 하고, 조언을 구하고 싶기도 하고, 누군가 답을 정해주었으면 간절하게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나를 정말로 뿌듯하게 만드는 건 말은 멈추고 몸을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란 걸 알고 있다. 수많은 공식을 하나씩 건드려보고 싶은 호기심의 무게 정도로만 모든 선택을 설명하고 싶다. 대단한 일도 없고 어려운 일도 없다. “해본 것” 카테고리에 들어갈 기분 좋은 일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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