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funtwo’를 기억하나요
‘funtwo’는 한국의 기타리스트 임정현으로, 그의 닉네임이자 유튜브 채널명이기도 하다. 그는 아래의 Canon Rock 커버 영상으로 유명하다.
그가 연주한 캐논 락 커버 영상은 유튜브 초창기를 상징하는 영상 중 하나이다. 2005년 유튜브가 막 시작할 때 올라온 영상 중 하나로, 조회수가 9천만을 넘었으며 뉴욕 타임즈에 보도되었을 정도로 전세계적인 화제를 낳았다. 들어보면 “아, 나도 저렇게 기타 잘 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끔 짜릿하다.
다만 그가 직접 편곡까지 한 것은 아니고 편곡의 원작자는 대만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JerryC이다. ‘funtwo’는 그가 만든 어레인지를 연주만 한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영상으로 캐논 락을 처음 접했으리라.
출근하다가 불쑥 이 영상이 떠올라 다시 찾아봤다. 일렉 기타만이 가진 속 시원함과 캐논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만나 제 안에 있는 응어리를 풀어주는 듯했다.
사실 나는 가사가 없는 음악을 잘 찾아보는 편이 아니나, 이상하게 최근에 자꾸 캐논 락이 생각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최근에 캐논을 샘플링한 가요들을 많이 들었다. Andy Grammer의 ‘These Tears’, Maroon5의 ‘Memories’… 우리나라 가요 중에는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캐논을 샘플링한 것으로 유명하다.
상기한 노래들이 너무 좋아 댓글 창을 내려보면, 꼭 “이 곡은 캐논을 샘플링해서 좋은 거야”라는 언급들이 많았다.
캐논에 대하여
내가 캐논 변주곡의 멜로디를 처음 들었던 건, 피아노를 잘 치는 고모들로부터였다.
어딘가 서정적이면서 드라마틱한 선율에 처음으로 나도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바이엘과 체르니를 지나 드디어 다음 배울 곡으로 캐논 변주곡이 등장했을 때, 굉장히 들떴던 기억이 있다.
피아노를 그만둔 후에도 캐논은 유일하게 내가 계속해서 칠 수 있었던 곡이었다. 악보가 다른 곡들보다는 쉬웠고 반복되는 구조가 많아 악보를 보지 않아도 곧잘 외워서 칠 수 있었다. 지금은 피아노를 놓은지 약 20년이 되었지만, 오른손 멜로디는 아직 손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캐논 변주곡의 정식 명칭은 파헬벨의 ‘캐논 D장조’(Canon and Gigue in D major)다. 캐논 ‘변주곡’이라 불리는 까닭은, 정말로 ‘캐논이라는 음악이 변주되었기 때문에’가 아니라, ‘이 변주곡이 캐논 형식’이기 때문에다.
캐논이란, 하나의 선율을 시간차를 두고 반복해서 따라 부르는 대위법적 기법으로, 쉽게 말해 돌림노래 같은 스타일이다. 파헬벨의 캐논 구성은 3개의 바이올린 파트가 서로를 모방하고, 8마디 짜리 반복되는 베이스(오스티나토)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 예측 가능한 구조가 감정을 자극한다. 사람의 뇌는 예측 가능한 반복에서 변화를 만날 때 깊은 몰입을 느낀다고 한다.
캐논은 처음엔 단출하게 시작하지만, 점점 화성이 풍부해지고, 음역이 넓어지고, 악기들이 들어오면서 감정을 같이 고조시킨다. 혼자 시작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하나둘 참여하면서 결국엔 커다란 합창이 되는 느낌을 준다.
슈퍼히어로 영화도 아이언맨 혼자 싸울 때보다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블랙 위도우가 함께할 때 더 감동적이지 않는가.
캐논이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
뮤지컬 멤피스의 'Steal Your Rock N Roll'
‘나의 음악이 너를 부를 때 맘을 열어봐 / 한 걸음씩 리듬에 맡겨’
비록 캐논 샘플링된 가요를 요즘 많이 들어서 캐논 변주곡 자체를 찾아본 것 같긴 하지만, 가끔 음악이 이렇게 손짓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캐논 특유의 서사가 짙은 멜로디는 확실히 감정을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그래서일까, 유튜브에도 캐논을 활용한 감정 회복 영상들이 많다. 특히 ‘캐논 1시간 영상’의 댓글 창을 보면 인생의 희망을 얻었다는 댓글들이 많다.
캐논은 강한 감정을 곧바로 밀어붙이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시작해, 천천히 풍성해지며, 정점을 찍고 다시 차분해진다. 캐논을 듣는 동안 감상자는 혼자인 듯하지만 어쩐지 외롭지 않다.
캐논의 멜로디는 위와 같은 이유들로 샘플링을 통해 현재 대중음악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샘플링이란 기존 곡의 일부를 가져와 새로운 곡에 활용하는 작곡 방식이다. 아래 곡들은 모두 캐논의 베이스를 샘플링하거나 변형한 곡들이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 - 자전거 탄 풍경
가을 우체국 앞에서 - 윤도현
오래된 노래 - 스탠딩에그
Memories - Maroon5
These Tears - Andy Grammer
Life is Cool - Sweetbox
나는 클래식을 잘 알지 못해, 캐논의 작곡가가 파헬벨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모차르트, 베토벤이 아니지만 파헬벨은 캐논을 통해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감동을 안겨준 작곡가가 되었다.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작품이 오래 살아 숨 쉬는 게 예술가에게는 가장 큰 영광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