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1. 국, 찌개 따위의 음식에서 건더기를 제외한 물.
2. 어떤 일의 대가로 다소나마 생기는 이득이나 부수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
식당을 운영 중인 수민의 인생은 돈을 중심으로 굴러간다.
그동안 키워준 은혜는 돈으로 갚으라는 엄마의 말에 수민은 몇 년에 걸쳐 8천만 원이라는 ‘양육비’를 갚아나가고, 그의 캘린더에는 가게 월세, 집 월세 등등 온통 돈 나갈 일로 점철되어 있다.
룸메이트인 유정이 같이 먹을 음식을 요리할 때마다 꼬박꼬박 현금을 내밀 만큼 자신이 받은 모든 것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수민의 가게에 단조롭게 붙어있는 “국물은 없습니다.”라는 안내 문구는 수민의 인생과 닮아있다. 국물이 공짜가 아닌 삶 말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고 있자면 ‘국물’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지친 날 뜨끈한 국물을 마시며 나도 모르게 속이 풀린다고 (다소 아저씨처럼) 생각하던 순간들, 유정이 수민을 위해 끓여주었던 콩나물국과 둘이 함께 먹던 찌개, ‘국물도 없다’는 관용구 같은 것들.
이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든 따뜻함을 내포한 한 끼이든 수민에겐 어느 하나 쉽지 않았음이 분명해진다.
그런 수민의 일상에는 두 명의 사람이 있다. 제대로 된 월급도 없이 수민의 식당 일을 도와주는 태웅과 태웅의 소개로 룸메이트가 된 유정이다.
그들은 수민의 차가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다가간다. 태웅은 수민이 힘들 때 말없이 옆에 있어주고, 유정은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다는 수민의 말에 그럼 자신이 요리할 테니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한다.
그리하여 수민의 삶은 ‘국물이 공짜’가 아닌 삶에서 타인과 함께하는 삶으로 점점 변해간다. 돈을 보내라 독촉하고 아프다는 문자에 ‘병원 가’ 세 글자를 남기는 엄마가 아니라, 같이 밥을 먹고 힘들 때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 홧김에 내던져버린 자전거를 밤새 보관해뒀다 조용히 귤과 함께 돌려주는 이름 모를 동네 주민과 함께.
내가 갚을 수 있을 정도로만 행동하라고 외치던 수민이 결국 솔직하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기다림은 물론이고 그자신 또한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을 것이 쉽게 그려졌다.
타인이 주는 모든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갚을 수 있는지 계산해야만 했던 한 사람이, 이익과 계산에서 벗어난 관계를 구축하는 순간. 국물 없는 볶음면만 팔던 자신의 가게에서 친구들을 위해 국물이 가득한 국수를 대접하는 순간. 항상 무표정하게 날을 세우던 수민은 그제야 친구들과 함께 웃는다.
그렇게 수민의 삶은 예전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따뜻한 국물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