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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2004년 개봉한 영화 <노트북>은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인생 영화로 꼽히는 명작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영화였다. 혹시나 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반, 조금 더 아껴두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그런 마음들을 이겨내고 이번 주말에 드디어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모두 지나간 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수없이 많고 많은 멜로 영화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오래전 개봉했던 이 영화가 아직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은 이것도, 다른 멜로드라마와 영화들처럼 사랑과 운명이라는 클리셰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과연 어떤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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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노트북>은 아주 뻔한 클리셰들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다. 운명처럼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게 미쳐 있는 상태로 데이트를 즐겼다가, 부유한 여자의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갈라진다. 오해로 인해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하고, 그랬다가 운명처럼 다시 재회하게 된다. 재회 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건 물론이다. 이 문장들 중 클리셰가 아닌 문장이 없다. 집안의 반대와 신분의 격차로 갈라지는 연인은 우리나라의 아침 드라마에 몇 번이고 나올 법한 문장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특별한 점이 존재한다.

 

바로 “난 온 마음과 영혼으로 한 여인을 사랑했고 그것만으로 나는 여한이 없다.” 라고 말하는 남자, 노아다.

 

노아가 앨리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영화의 처음 장면에서는 노년의 남녀가 등장한다. 이들의 정체가 노년의 앨리와 노아라는 것은 영화의 후반부에서나 밝혀지지만, 워낙 힌트를 많이 주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미 그들의 정체를 짐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앨리는 노아를 까맣게 잊은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양, 기억하지 못한다. 심각한 노인치매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노년의 노아는 포기하지 않는다. 젊었을 적의 노아가 앨리를 포기하지 않고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갈 집을 짓고 있었듯, 노년의 앨리에게도 계속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앨리가 자신이 누구이고 노아가 누구인지 알아챌 때까지 몇 번이고 이야기를 읽어준다. 그렇게 해서 노아가 앨리를 되찾을 수 있는 시간은, 겨우 5분 남짓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이라는 단어는 노아의 모든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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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앨리에게 첫눈에 반한 것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미쳐 있게 된 것도, 오랜 시간을 지나고 다시 마주했을 때 또다시 사랑에 빠진 것도, 그렇게 서로를 선택한 것도 모두 ‘사랑’ 때문이다. 다른 이유, 아주 특별하거나 아주 독특하거나 아주 설득력 있는 이유는 없다. 그런 게 없어도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쉽게 납득한다. 사랑 때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그렇게 스스로 클리셰를 받아들인다.

 

사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운명적인 사랑만을 얘기하던 예전과는 다르게, 많은 이야기에서는 현실적인 사랑을 얘기한다. 한때 뜨겁게 사랑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식어버린 연인들의 모습은 현실에서도, 영화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사랑을 확인했던 연인은 영화가 끝난 후 현실을 마주하고 이별한다.

 

그렇기에 죽을 때까지, 죽음까지 함께 사랑한 노아와 앨리의 모습이 기억에 남게 된다. 이제 그만 어머니를 포기하라는 자식들에게 “내 사랑이 저기 있는데 어떻게 떠나?”라고 말하는 노아. “이걸 읽어주면 당신에게 돌아갈게” 라고,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 앨리. 변하지 않는 사랑을 기어이 해낸 이 연인을 어떻게 마음에 담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 <노트북> 속, 노년의 앨리와 노아가 한 침대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던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지켜낸 한 연인을,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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