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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현대인에게 예술이 선사하는 감각과 의미는 무척 다양하다. 현대인은 오락을 위해,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기 위해, 혹은 일상적으로 하기 어려운 경험을 구매하기 위해 예술을 찾는다. 그림만 해도 과거 상류층의 특권이자 곧 그들의 권위를 유지하고 재현하는 수단이었으나 현대인은 디자인 등 실용적이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두며 교양보다 취미의 영역에서 발을 넓히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미술 사조를 공부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미술 사조는 언뜻 보면 순전히 기법의 발전 혹은 발명의 역사로만 여겨지거나 특정 시대와 스타일을 대표하는 몇 명의 천재를 위한 프레임으로 여겨져 지루하게 느껴지기 쉽다. 다만 미술 역시 결국 줄곧 인간의 전유물이었으므로, 미술 사조 역시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다는 기본 전제를 이해하면 다르게 다가온다. 미술 사조를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 중 하나는 어쩌면 현대인과 다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가치관과 시대상의 상호작용을 이해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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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는 그러한 의미에 특히 충실한 미술 교양서다. 책은 유명 유튜버이자 저자 '야마다 고로'가 어시스턴트와 대담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미술 그 자체보다 캔버스 너머의 화가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해 인상파의 탄생부터 끝까지의 설명을 유기적으로 엮어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화가의 스타일과 생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 몇 점을 선정해 다른 화가들과의 우정이나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관한 언급으로 매끄럽게 연결하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아 계속 앞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던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사실적인 표현은 생략하고 물감 덩어리로 분위기를 담아내는 것을 중시한 인상파처럼,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인상파에 대한 '인상'을 강렬하게 각인시킨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마술로 인상파를 다시 그리다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는 그 두께 때문에 지레 겁을 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 앞서 언급했듯 대담 형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문단이 금방 바뀌어 텍스트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은 아닌데다 야마다 고로의 스토리텔링이 지닌 흡인력 덕에 하루만에 독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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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많은 수의 화가와 대표작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다루는 만큼 호흡이 짧지만, 화가가 인상파에 남긴 영향에 관한 지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 빛과 색채를 중시한 터너가 그림의 디테일을 포기하고 인상을 강조하는 실험을 통해 이후 인상파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던 것, 화가로서 유명한 작품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인상파가 미술을 계속하기 위한 물적 지주가 되어주었던 바지유, 미국에 인상주의를 소개하는 다리가 되어주었던 카사트 등이 그 예시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여금 한 편을 읽으면 독자도 한 줄로 화가를 수식할 수 있고 화가의 대표작과 얽힌 이야기를 설명할 수준이 된다.

 

이러한 설명은 각 화가에 관한 한 가지 인식을 강화한다는 느낌보다는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보는 이에게 흥미를 돋구기 위한 강의 영상 같은 인상을 준다. 각 편마다 후에 설명할 작가의 스타일에 관한 간단한 배경지식을 제공하고 이후의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책을 읽어나가며 앞뒤의 내용이 비로소 연결될 때는 묘한 쾌감까지도 느낄 수 있다. 이는 호기심으로 생겨난 지식의 빈칸이 채워질 때의 기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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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산책, 양산을 든 여인>

 

 

책에는 당대 배경에 관한 지식 설명은 물론 화가의 사생활에 관한 일부 일화 또한 상당히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데, 이 또한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다소 개인적이고 노골적인 평가가 반영된 구간도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화가의 생애와 그림에 투영된 철학 등을 이해하려는 태도에 더 가깝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구간 중 하나인 모네의 개인사에 관한 내용은 익숙한 그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해주었다.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 중 첫번째 작품은 그의 첫 번째 아내 카미유와 장남을 모델로 한 것인데, 카미유가 사망하고 알리스와 결혼한 후 그린 두 점에서는 아이의 모습은 없고 모델이 된 알리스의 얼굴이 흐릿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첫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한 대목을 읽으며 화가가 느낀 고뇌와 표현의 변화를 연결한 지점이 모네에 관한 개인적인 인상을 천재 낭만주의자에서 인간적인 낭만주의자로 바꾸어 놓았다. 물론 이것이 모네에 관한 오해를 걷고 진면모를 설명하는 데 의미를 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림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인생의 중요한 지점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그림을 이해하는 지표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새로이 깨달은 점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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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카사트, <파란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소녀>

 

 

모네나 드가와 같이 인상파로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굳건히 자리잡은 화가 외에도 여성 인상주의 화가의 업적과 스타일을 소개한 내용 또한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메리 카사트의 인생과 그림의 주제에 관한 이야기는 책에서 다룬 것 이상으로 찾아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다. 책에서는 화가의 일부 대표작에 관한 설명 및 화가의 그림 스타일 변천사,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 인간관계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루며 인상파 공부에 관한 의욕을 충분히 자극한다.

 

이러한 전략은 카사트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특히 가슴 뛰는 아쉬움을 남겼다. 카사트의 생애에 있어 드가가 롤모델로서 미친 영향이 상당히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었던 만큼, 후반부에 언급된 여성관에 관한 둘의 차이가 어떻게 카사트의 그림과 주제에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없어 호기심을 당장 해소할 수는 없었으나 독자 뿐만 아니라 한 명의 공부하는 인간으로서 책을 읽은 후 필요한 궁금증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두근댔다.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는 현학적으로 인상파를 설명하려 시도하지 않고 인간의 삶에 주목해 인상파의 특징과 역사를 간명하게 설명한다. 인상파는 대표 작품 몇과 화가 이름만 조금 아는 정도인 수준이었기에, 이런 친절한 도서를 읽을 수 있었던 데 감사한다. 책을 읽으며 보불 전쟁이나 제1차세계대전 등 역사적 사건이 화가의 개인적인 삶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면서 시대의 큰 변화와 그 안의 여러 인간상에 관해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을 깨울 수 있었다.

 

삶과 함께하는 대중 예술이 우리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만큼이나, 대중예술에 누구보다 익숙한 현대인이 예술에 쉽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미술 사조 공부에 달려들었다가 시무룩해졌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별히 인상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더라도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를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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