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털, 따듯한 온기, 촉촉한 발바닥, 생기 있는 눈···. 방금 나열한 것들을 토대로 어떤 것을 머릿속에 그려본다면 굉장히 사랑스러운 존재가 떠오른다. 부정하기 어려운 사랑스러움을 가진 존재. 하지만 나는 이 사랑스러움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털이 있는 동물을 멀리한 것은 알레르기와 관련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것은 비합리적인 불안이었다. 부드러운 털과 온기 그리고 예측 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이 참기가 힘들었다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 (물론 사람도 예측 가능하지 않게 행동하지만, 갑자기 내 무릎 위에 올라오는 사람은 없었기에) 이 털이 있는 동물 공포증으로 나는 동물이 있는 어느 곳이든 편하게 갈 수 없었다. 길가에 고양이가 많은 외국의 야외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은 식탁 아래를 지나다니는 고양이를 보고 밥을 먹는 도중 식당을 나왔다. 고양이는 왜 그리 자신을 무서워하냐는 듯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내 몸에 닿지 않기만을 바랐다.
내가 고양이에게 너무 집중했기 때문에 고양이를 내 가까이 불러들인 것일까? 지방에 있는 아버지의 전원주택 마당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고양이는 마당을 스쳐 지나가는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집 마당에 꼭 붙어있었다. 몸집은 다른 고양이들보다 작았는데 요란하게 뛰어다니며 지나가는 고양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결국 마당을 차지해 버렸다. 아버지는 용감한 작은 고양이를 위해 추위와 비를 막을 집을 지어주셨는데 고양이는 집 대신 마당 곳곳에 있는 아버지의 화분 위를 옮겨 다니며 잠을 자기를 좋아했다.
아버지의 정원 일을 돕고 있던 어느 주말에 작은 고양이가 처음으로 내 가까이 와서 "낑" 소리를 냈다. 입으로는 "안녕"이라 말하면서 나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고양이는 한 발자국 다가와서 또 "낑" 소리를 냈다. ‘설마 안아달라는 건가?’ 나는 난감했다. "미안해~"라고 말하며 한 발자국 더 물러섰을 때 고양이는 또 "낑" 소리를 내며 내 신발에 한쪽 발을 올렸다. 장갑을 끼고 있어서 용기가 났을까. 작은 고양이의 양쪽 귀 사이 머리의 무늬가 시작되는 부분을 만져보았다. 말랑말랑했다. 고양이를 만지기도 했으니 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잔디 위에 앉았을 때, 작은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무릎 위를 등반해 올랐다. 그리고 이제 만족한다는 듯이 무릎을 침대 삼아 잠이 들었다.
작은 고양이는 먼지 위를 뒹구는 것을 좋아하고 나무를 타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 현관 앞에 자신이 잡은 것을 자랑하며 가져다 놓기도 했다. (이제 그만!) 활기차게 돌아다녀서 그런지 물을 꿀떡꿀떡 잘 마셨다. 그리고 어디서나 잠을 잘 잤다.
붙임성 좋은 이 작은 고양이와 친해진 나는 장갑이 필요 없게 되었다.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 병원에 갔을 때 다른 동물들 틈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놀라운 발전이다. 이제는 동물을 동반하는 카페에도 갈 수가 있다.
그리고 몸에 털뭉치가 달려들어 떼어내야 했던 이상한 악몽을 더 이상 꾸지 않게 되었다. 이 작은 고양이가 빨랫줄의 마른 빨래를 걷어 내듯 악몽을 걷어 낸 것처럼 느껴진다.
고양이가 그런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일까? 모두에게 이 용감한 작은 고양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