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학교에 헬로키티 책가방을 메고 다녔고, 스누피가 그려진 물컵은 아직도 사용하고 있으며, 현장 체험학습을 갈 때면 미피가 그려진 도시락통을 들고 갔다.
이 중 내 도시락통의 주인공이자 또 다른 누군가의 추억을 장식해 주었을 캐릭터 '미피'가 어느새 탄생 70주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미피와 마법 우체통'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답게 전시장 안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미피의 꽉 찬 우체통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편지는 마치 동심 속에 미피를 품어보았던, 미피를 추억했던 사람들처럼 많고 다양하다.
편지는 여러 언어로 적혀 있는 듯했지만, 하나같이 애정이 느껴졌다.
수많은 편지봉투 중 케이크가 그려진 귀여운 카드 하나가 있다.
전시는 총 8개의 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에서 6번 구역까지는 미피와 친구들, 이웃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7번 구역에서는 미피를 탄생시킨 딕 브루너를, 8번 구역에서는 여러 작가들의 손에서 재탄생한 미피를 볼 수 있었다.
전시장 곳곳에는 미피가 받은 편지가 숨어있었고, 중간중간 미피 그림책 시리즈도 발견할 수 있었다. 따뜻하고도 일상적인 내용이 담긴 편지들을 읽어볼 때면 귀여워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구간은 <그리운 친구, 딕 브루너> 구간이었다.
딕 브루너는 일주일에 6~7일을 작업실에서 보냈다고 한다. 왜 딕 브루너가 미피의 아버지, 할아버지를 자처했는지 알 것 같다. 그 언젠가 탄생했을 미피는 그의 전부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매일 아침 5시 30분에 기상한다는 딕 브루너는 마치 현대인의 '미라클 모닝' 같은 기상 시간과 다르게 매우 평온한 일상을 보냈던 것 같다. 일어난 뒤 아내에게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짜주었고, 아침 식사 동안에는 아내의 일상이 담긴 그림을 작업했다고 한다.
커피와 신문, 자전거, 와인과 저녁. 그의 하루에는 잔잔함과 여유로움이 가득했고, 그가 추구하는 '간결함의 미학(Less is more)'과도 맞닿아 있는 듯 보였다.
["저는 정답이 될 때까지 많은 것을 바랍니다. 본질적인 것만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형태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그 상상이 펼쳐질 수 있도록 많은 공간을 남깁니다. 그것이 생략의 예술이며, 단순함의 힘입니다."]
딕 브루너가 말하는 '단순함의 힘'은 미피라는 캐릭터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무표정한 얼굴처럼 보이는 미피의 얼굴에도 몇 가지 요소를 추가하면 호기심, 즐거움, 슬픔, 후회, 수치심, 원근감을 표현할 수 있다.
딕 브루너는 미피를 보는 아이들이 그들의 상상력으로 직접 미피의 감정을 더욱 다채롭게 채워 나가길 바랐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각종 체험형 공간 덕분에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발걸음이나 터치를 인식하는 장치들을 통해 체험형 미디어 아트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덕분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미피를 다시금 추억 속에서 꺼내볼 수 있는, 그리고 새로운 기억 속에 미피를 담아낼 수 있는 <미피와 마법 우체통> 전시는 2025년 8월 17일까지 인사 센트럴 뮤지엄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