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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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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맞아 떠난 여행에서 무척 재미있는 전시를 관람했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궈페이의 화려한 작품들을 전개하면서도, 그에 준할 만큼 많은 수의 회화/설치 미술 작품들을 함께 전시해 두었다. 아이들의 꿈을 모티프 삼아 제작한 드레스 뒤로 아이의 꿈이 담긴 일러스트를 걸고, 접시를 연상시키는 청색 드레스 뒤로 유사한 질감과 색감의 고전 패턴 작품을 배치하는 식이다. 이처럼 감각적인 배치로 인상을 남긴 미술관은 바로 아트바젤의 요람, 홍콩 서구룡문화지구에 위치한 엠플러스(M+) 미술관이다.


전시의 주인공은 의심의 여지 없이 작품이지만, 영화/드라마의 흥행을 이끄는 데 배우만큼 플롯이 중요한 역할을 하듯 미술관의 비중을 절대 묵과할 수 없다. 언뜻 중요도 순 혹은 연대기 순으로 작품을 배열했을 것처럼 보이지만 공간마다, 기획마다, 심지어는 큐레이터의 성향에 따라 전시의 결과 질이 훅훅 바뀐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미술관에 갈까?>는 경영전략의 핵심을 미술관으로부터 끌어오며 이러한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일약 성공의 반열에 오른 미술관들은 저마다 관철시킨 철학을 지니고 있다. 전 세계의 유수한 미술관이 유명세를 기록하기까지의 여정이 단순히 작품 수/ 미술관의 위치같이 정량적인 면모로 완성되지 않음을 책의 사례를 통해 접할 수 있다.

 

 

 

모리 미술관 : 개방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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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선입견을 완벽히 깨부수는 사례가 바로 일본의 모리 미술관이다. 미술관의 캐시카우가 되는 작품들은 주로 상설전에서 나오지만 (루브르 박물과의 <모나리자>, 오르세 미술관의 <밀레의 만종>, 대영 박물관의 <로제타석> 등) 모리 미술관에는 이렇다 할 소장품이 없다.


그럼에도 모리미술관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파격적인 시도들을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입주한 고층빌딩 모리타워라는 위치적 이점을 활용해 공간 자체를 명소화하고, 이미지와 다르게 보수적인 업계에서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영국인 미술행정가를 초대 관장으로 영입했다. 덕분에 신생 미술관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모리 미술관은 현대미술 거장들의 전시를 개최하고, 관광 측면에서도 선순환을 이어가며 롯본기 지역의 높은 땅값을 충당할 수 있었다.


기획전의 질도 놓치지 않았다. 작년 여름 모리 미술관에서 관람한 전시 는 그해 관람한 전시 중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수작이다. 일본 문화와 아프리카 미술의 연결 지점을 제시하면서 모리미술관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획전을 보여줬고, 전시 구성 역시 단순히 티에스터 게이츠(작가)의 일대기를 그리는 대신 아프리카 미술, 일본의 도자기 문화, 작가의 문화적 여정 등을 적절하게 섞어 그만의 작품세계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아래 링크에 해당 전시의 리뷰를 작성해 놓았다.

[Opinion] 일본과 아프리카, 시대를 넘어선 합주 [전시]

 

 

 

프라도 미술관 : 융합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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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미술관이 부족한 작품 수 대신 공간이 주는 매력도로 가치를 크게 끌어올렸다면, 프라도 미술관은 한없이 풍부한 소장품으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혹자는 결국 작품 수가 미술관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방증이라 볼 수 있지 않냐는 의문을 던질 수 있겠으나, 프라도 미술관 역시 공간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별도의 동인이 명확히 존재한다. '융합'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문화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시녀들>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걸려 있다. 화가가 조명하는 하나의 대상을 초점 아래 두던 기존의 작품 구성에서 벗어나, 작품 저편으로 시야를 넓혀 미술계에 새로운 시각을 던졌다고 평가받는 대작이다. 그리고 이 그림을 그린 작가 벨라스케스야말로, 800년 가까이 아랍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융합의 문화를 선도해온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특색을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한 인물이다. 아랍의 발전된 기하학/원근법을 받아들이면서도 유럽의 미술양식을 적용해 새로운 구도를 창조해 냈기 때문이다.


저자가 스페인 SPA 브랜드 '자라'의 사례와 함께 챕터를 시작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좋은 품질의 옷감을 빠르게,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는 SPA의 특징 이상으로 자라만의 '특색'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융합의 역사와 결을 함께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안료를 만들고 염색하는 공정에 유독 눈에 띄는 기량을 발휘해왔는데, 자라는 그러한 특징을 가장 잘 활용한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스페인을 상징하는 뜨거운 태양과 풍요로운 자연환경 덕택에 화사하고 다채로운 색채를 구가하면서도, 아랍 특유의 숫자 감각과 섬세한 패턴이 결합돼 자라만이 제안할 수 있는 색깔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미술관이 주는 공간으로서의 매력은 다채로운 시사점을 마련해준다. 책의 제목에서도 강조하듯, 미술관을 방문할 때 작품에 집중된 시선에서 벗어나 이를 담은 공간에 눈을 돌려보면 때로 깨달음을 안겨주는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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