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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시드니 하버


 

우리가 탄 배는 시드니 하버 크루즈였다. 유람선처럼 단순히 강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오는 페리로 생각하고 올라탔던 나는, 오페라하우스 근처 항구에서 출발한 페리가 오페라하우스를 돌아 동쪽으로 하염없이 나아가는 걸 보면서-그 끝에서 강이 바다가 된다는 걸 알게 되면서-이 페리가 원래 선착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하버브릿지를 기준으로 남쪽은 시드니 중심지로, 높은 건물들이 있고 시청을 비롯한 박물관, 천문대, 미술관, 수족관 등이 있어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라면, 북쪽 거주지로 (놀 데가 없으며) 주로 부자들이 사는 곳이었다.

 

가이드는 저 북쪽 동네 어딘가에 시드니에서 가장 비싼 집이 있다고 말했다. 그 집에선 오페라하우스가 정면으로 보인다며, 그 집을 찾아보라고 페리에 타기 전-자본주의적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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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페리가 강을 거스르며 출발함과 동시에 풍경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는 그 얘기를 까맣게 잊고 사방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설산처럼 생긴 웅장한 구름이 흐르는 하늘 아래, 사방의 풍경이 공평하게 눈에 들어왔다.

 

북쪽 동네는 주황색 지붕을 모자처럼 쓰고 있는 낮은 집들이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숨어 있어서 밀림처럼 보였다. 페리의 출발지였던 남쪽은 북쪽 동네와는 이질적일 정도로 너무나 도시 그 자체였지만, 누가 보이지 않는 결계라도 쳐놓은 것처럼 도시가 더 이상 확장되지 않고 거기서 멈춰 있어서 멀리서 보니 해양 도시 나름의 아름다움과 여유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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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가 가고 있는 방향에는 도시의 흔적 따위 없이, 낮은 언덕과 절벽들이 능선을 따라 길게 뻗어 있었다. 파란 하늘과 짙은 색의 강물을 그 낮은 지대가 구분해 주고 있었다. 강물 위에는 갈매기 무리처럼 하얀 요트들이 돛을 펼친 채 떠다녔고, 때마침 지나간 검은 범선 한 척이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잠시 헷갈리게 했다.

 

그 외엔 어디를 뜯어보아도 눈부심과 초록, 파랑이었다. 온통 자연으로 이뤄진 아름다움이었다. 자연히 그대로 있는 것뿐인데 아름답다니, 라고 나는 생각하며 그것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마음속에라도 본뜨기 위해서 하염없이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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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저편


 

페리는 두 곳을 거친 뒤 어느 낙원에 닿았다. 무수한 요트와 보트가 마치 어린아이의 콧대처럼 보이는 도도하면서도 귀여운 뱃머리를 내밀고 유유자적 떠다니는 긴 해변이었다. 그 해변을 따라 휴양지처럼, 오로지 목적이 휴양에 있는 것처럼, 밀림을 배경으로 줄지은 낮은 층의 가게들과 적당한 사람들이 보였다. ‘왓슨스 베이’였다.

 

불과 몇 시간 전에는 좁은 비행기 속에 틀어박혀 있었던 내가 지금은 이런 곳에 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선착장 근처에 있던 비현실적일 정도로 커다란 무화과나무는 이곳의 낙원성을 더욱 강조하는 듯했다. 여름 해를 반영하는 따사로운 빛깔의 윤슬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일렁이는 해변은 미지근하지 않고 왠지 따뜻할 것만 같았다.


낙원의 시작은 그렇게나 푸근하고 아름다웠다면, 해변 뒤편의 잔디로 된 언덕을 넘어서자 눈에 들어온 낙원의 저편,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갭 파크’는 장엄하게 이 해안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절벽은 층마다 날카롭게 뻗어 있어 매서워 보였는데, 그 너머는 온통 푸른 바다였다. 해변까지는 쪽빛이었던 바다가 갭 파크 너머로는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빛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위험해 보였다. 그걸 알리는 듯 가슴께 높이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바다란 아름다우면서도 위험한 곳이었지,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이 너머는 태평양이었다. 우리는 그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이어진 오솔길을 쭉 걸어갔다. 오솔길은 한 사람이 겨우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서,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비켜서야 했다. 오솔길 양편에 자란 나무들은 사막의 식물들처럼 잎이 날카롭고 뾰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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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걸어가다 탁 트인 곳으로 나왔고, 전시물처럼 놓여있는 커다란 닻을 마주쳤다. 오래전 이곳에서 침몰한 배에서 찾아낸 닻인데, 파도가 거칠어 그것만 찾을 수 있었고 수몰된 사람들을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닻을 전시한 거라고 가이드가 말하며 우리를 산책로 더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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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처럼 생긴 산책로에서 가이드는 또 한 번 멈춰서더니, 무슨 문장을 새겨넣은 듯한 바위를 가리켰다. ‘돈 리치 그로브’라고 적혀있었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이곳 갭 파크는 매년 꾸준히 자살자가 있는 자살명소였다고 한다. 시내에서 떨어진 곳인 데다, 오솔길 양편의 나무와 잡목들이 사람을 가렸기 때문에 자살자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재향 군인인 돈 리치가 이쪽에 앉아서 혼자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자살을 결심하고 산책로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돈 리치와 대화하면서 자살 시도를 단념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생을 포기하고 죽음으로 뛰어들려는 절망을 단념케 한 것이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였다. 그런 이야기가 유명해져서 돈 리치의 사연이 방송을 탔나 했는데, 그때 그와 대화하고 자살을 단념했다고 연락해 온 사람이 이백 명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기념하고자 돈 리치의 숲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이렇게나 아름다운 절벽에서 누군가 죽음을 생각한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또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붙여 삶의 의지를 불어넣었다는 게 사소하지만 제법 뭉클한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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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는 쭉 오르막이었기에 사람들은 점점 지쳐갔다. 언제 끝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가이드는 능숙하게 미소 지으며, 바로 저쪽에 버스가 대기 중이라고 이야기했다.

 

 


진짜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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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처럼 생긴 집들이 모여 있는 주택가를 가로질러 버스가 도착한 곳은 ‘본다이 비치’. 본다이 비치는 좀전의 왓슨스 베이와는 전혀 다른, 진짜 해수욕장이었다. 가게들도 많았고 주차장에, 오가는 차들도 많았으며 무엇보다, 사람이 많았다. 다 여기서 놀아서 왓슨스 베이에는 안 가는 거구나 싶을 정도로 많았다. 그들 대다수는 해수욕에 진심인 사람들이었고(서핑, 비치발리볼 등등), 패션도 전부 진심이었기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자연히 눈에 띄었다. 거기서만큼 관광객이라는 정체성을 뚜렷하게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이드는 제주도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이곳 해변의 모래에 놀란다며, 한번 맨발로 해변을 걸어보라고 이야기했기에, 우리는 거침없이 양말을 벗고 한 손에 신발을 들고 해변을 걸었다. 정말로 모래가 파우더처럼 부드러웠다. 그 어떤 이물질 없이 부드러워서, 모래사장을 빠져나와 손으로 발을 가볍게 터니 모래가 전부 떨어져 나갔다.

 

해변의 오른쪽 끝에는 바다와 맞닿아 있는 수영장이 있었는데, 유명한 아이스버그 풀이라고 했다. 거기까지 가보려고 했지만, 그러나 시간이 부족해서 다시 버스로 돌아왔다. 슬슬 해가 기우는지, 투명하게 느껴졌던 햇빛이 온화한 색깔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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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이 비치에 무지개 거리가 있다고 말한 게 기억난다. 호주는 성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90년대에 지정되었는데, 그때 동성결혼도 합법화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본다이 비치 몇몇 가게는 무지개 깃발을 걸었다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하지만 버스는 우리를 데리고 빠른 속도로 본다이 비치에서 벗어났기에, 깃발은 구경도 못했다.

 

 

 

너무나 익숙한 그 맛


 

하루가 가고 있었다. 갑자기 노곤함이 밀려왔다. 어서 빨리 숙소에 가서 잠들어야만 지금까지 눈에 담은 이 모든 걸 선명하게 꿈속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버스는 호텔이 아닌 저녁 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버스에서 내리자, 좀 전까지가 정말 모두 꿈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익숙한 가게가, 아니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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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은 한식이라고 가이드가 일러둔 걸 그때 떠올렸다. 한식. 지난번 미국 여행에서도 상상 이상으로 짜고 단 음식들에 시달리다(서양인들이 췌장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진 않았다) 한식을 찾았는데, 그때 맛본 한식은 뭐랄까, ‘미국식’ 한식이라 이름 붙여도 될 정도로 한식과 달랐기 때문에 이번 호주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게가 정말 너무나, 너무나 한국적이었다. 둘러보니 직원들도 다 한국인-워킹홀리데이를 온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전골 맛도 정말 한국에서 먹는 그 맛이었다. 이질감이 없었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 듯한 기분으로 저녁을 먹었고, 익숙한 배부름이 몰려오자 내일과 모레, 글피의 한식이 모두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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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적막


 

숙소는 시드니 북서쪽 ‘맥쿼리 파크’에 위치한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였다. 정작 숙소로 오자 아직 저물지 않은 해 때문인지 기운이 솟았다. 그러나 이곳 주변엔 쇼핑몰이 모여 있는 맥쿼리 센터 말고는 구경할 곳이 없었다. 없다고, 가이드가 미리 말하기도 했다. 주변은 공업회사 단지나 아파트였기 때문에 시내와 달리 사람도 거의 없었다.


여행 첫날이니만큼 근처만 돌자 싶어 숙소에 짐을 풀고 맥쿼리 센터를 구경했다. 입구에 있던 한식 고깃집을 지나고 주차장을 지나 건물 안에 들어가자 안에 울월스와 콜스 같은 마트와 일본 다이소, 카페와 식당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마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영업이 끝난 상태였다. 오후 일곱 시인데도. 목적 없이 왔기에 떠돌기만 하던 우리는 커피라도 테이크아웃 하려고 했지만, 처음 지나친 한 곳 말고는 모든 카페가 닫혀 있었다. 이토록 큰 쇼핑몰이 적막할 줄이야,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밤의 산책


 

숙소에서 몇 시간 쉬니 이 밤의 자유가 슬슬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저녁도 이르게 먹었는지 금세 출출해졌다. 우버잇츠 앱을 켜봤지만, 맥도날드 말고는 배달하는 곳이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맥도날드? 단념할까 하는 그 순간, 할 것도 없으니 맥도날드에 가서 먹자는 생각이 떠올랐고, 그렇게 생각하자 맥도날드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지도를 켜보니 맥도날드는 숙소에서 2킬로미터 정도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족 모두가 동의했다.


밤의 거리를 거닐며 이곳 사람들은 밤이 되면 다 집으로 기어들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정말, 한두 명 마주친 게 다였다. 도로도 탁 트여 있고 인도도 넓었지만 사람이 없었고, 밤이라 그런가 을씨년스러웠다. 거리가 위험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완전히 안전한 것 같지는 않았다. 혼자라면 못 걸어다녔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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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십 분 넘게 걸으니 동네의 모습이 바뀌었다. 한적한 거리 끝에 식당들이 보였다. 그러나 역시 문을 연 건 맥도날드와 그 옆의 KFC, 또 그 옆의 서브웨이, 또 그 옆의 편의점, 건너편 주유소에 있던 세븐일레븐. 우리는 가기로 했던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긴장했다. 주문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그러나 키오스크였다.

 

한국 맥도날드의 키오스크와 정말 똑같은 구조라서 손쉽게 주문했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곧 나온 햄버거 세트는 포장지 안에 들어 있었고, 우리는 테이크아웃을 누르고 주문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갓 나온 햄버거를 들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배달비는 아꼈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니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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