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2025플레이위드햄릿_포스터_수정.jpg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누구나 잘 아는, 그러나 그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그럼에도 아주 유명한 대문호의 작품 중 하나이다. 그에 따라, <햄릿>에 대해서는 무수한 버전의, 그리고 다양한 장르를 거쳐 수용되면서도 변화되어 온 극들이 이미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위대하고 유명한 작품을 다룸에 있어, <플레이위드 햄릿>의 공연이 가진 특색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극에서 햄릿이 한 명이 아닌 네 명으로 나뉘어 혹은 분열되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극에서의 햄릿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삼촌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되어 너의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를 차지하는 몰염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의 혼령을 통해 듣게 된다. 이때 <플레이위드 햄릿>은 그 혼령의 이야기를 듣고 혼란에 빠졌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내면의 여러 목소리들에 집중한다. 그리고 나서 만약 그 혼령의 목소리를 우연히 듣게 된게 다름 아닌 나라면, 그때에 다분히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반응들에 초점을 맞추고 극은 진행되어 나간다. 그 목소리가 아버지의 목소리 인것 같으면서도, 그것이 단지 나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간의 여러 모습들을 이 극은 표현해내고 있다.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라면, 내가 아닌 모든 인간이 그렇게 마치 여러 사람으로 분열되는 것처럼 여러 내면의 목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상황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 대한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해, 관객이 호레이쇼(햄릿의 친구이자 철학자)의 역할을 맡으면서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장면이 삽입되었다. 이는 보통 공연장에서 관람하는 관람객의 경우와는 조금 다른 양상인데, 보통 대부분의 공연장에 관람을 하러 가면 관객은 그저 객석에 착석한 수많은 관람객 중 한 명으로서 관람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 극은 관객 바로 앞에 나란히 서서 우리를 호레이쇼라고 부르며, "나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살아야 해? 아님 죽어야 해?" 라고 묻고 그 답을 묻는 연출 방식이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131 (2).jpg

 

 

그러나 이 네명의 배우들만이 등장하는 이 극에서 각각은 비단 햄릿뿐만 아니라 무려 7명에 해당하는 인물들-(1) 자신의 아버지, (2) (현재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의심되는) 클로디어스 왕, (3) (자신의 어머니) 거트루드, (4) (클로디어스의 사주를 받아 햄릿의 의중을 확인하고자 하는 햄릿의 친구들인)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톤, 그리고 (5) (클로디우스의 재상인) 폴로니우스, (6) (클로디우스의 딸이자 햄릿의 연인인) 오필리어, 마지막으로 (7) (클로디어스의 아들이자, 오필리어의 오빠인) 레어티스-을 소품과 배우들의 연기만을 가지고 다분히 활용해여 표현해낸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날마다 오늘 그 안에서 누가 이 일곱명의 인물들을 연기할 것인지에 대해, 그 역할과 관련된 모자를 서로 던지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랜덤으로' 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었다.

 

극이 후반부에 다다랐을 때, 클로디어스는 햄릿을 죽이기 위해 레어티스에게 사주를 한다. 사주를 하는 명분은 바로 햄릿이 거투르드와 다투는 사이, 그것을 엿듣고 있던 폴로니우스를 누가 엿듣고 있다고 생각한 햄릿이 커튼 뒤를 칼로 찔렀을 때 마침 거기에 폴로니우스가 있었고, 그로부터 폴로니우스는 죽음을 맞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던 오필리어 마저 자살하게 되면서, 복수심으로 불타는 레어티스에게 클로디우스는 바람을 불어넣어 자신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햄릿을 죽이게 만들 작정이었던 것이다. 원작에서는 그것이 칼싸움의 형태로 펜싱을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극에서는 칼이 '젬베'로 대체되어, 파워풀한 리듬이 만들어내는 역동성 속에서 그 둘간의 싸움의 처절함을 창의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젬베로 직접 싸운다기보다는, 젬베가 칼의 역할을 대체하여 독이 묻은 칼의 역할을 하는 것은 원작과도 동일한 내용이었다.

 

내 감상으로는 이 장면이 이 극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다. 그 싸움을 통해 결국 호레이쇼를 제외한 모두가 죽게 되고, "결국 이 모두가 죽게 된 건 나 때문이구나." 체념하다 못해 강렬한 슬픔이 묘한 카타르시스로 변모하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들은 일종의 그들만의 살풀이를 춰나간다.

 


KakaoTalk_20250217_174115278.jpg

 

 

이러한 상황에 닥친 자라면, 그 어느 누군들 미치지 않을 수 없겠는가.

 

이에 네 명의 햄릿은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이 끝나고 죽음만이 남은 이 상황에서 자신들이 마치 스스로 자신의 혼을 달래는 것처럼 노래하고 춤추며 극을 마무리한다.

 


KakaoTalk_20250217_172345382.jpg

 

 

마치 햄릿의 머리속을 오랫동안 항해하는 것 같은 연출의 연극을 보고 싶다면, 3/16까지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인 <플레이위드 햄릿>을 관람할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이유빈.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