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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적절한 온도로 살아가는 일 [사람]

한밤중에도 살고 싶다는 마음은 차오르고

by 곽한별 에디터
2026.08.10 17:36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 한여름이 되기 몇 달 전부터였다.

 

처음에는 몇 방울이었다. 바닥에 수건을 깔아 두면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그러다 물이 제법 규칙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건은 금세 축축해졌고, 나는 그것을 빨아 다시 깔았다. 에어컨을 끄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지만 바깥은 매년 갱신되는 폭염이었다.

 

수리를 불러야 했다. 그런데 돈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 방에 누군가를 들이고 싶지 않았다. 바닥에는 물건이 널려 있었고 빨랫감이 쌓여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 그 광경을 본다고 생각하면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보다 그쪽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얼마간 물이 떨어지고 먼지가 쌓인 에어컨과 함께 살았다.

 

아이스팩을 목 뒤에 대도 금방 터지고, 나는 결국 며칠 밤을 지새운 뒤에야 에어컨 청소와 수리를 예약했다. 기사님이 오시기 전날 밤 나는 거의 울면서 방을 치웠다. 바닥에 널린 것을 주워 담고, 빨랫감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화장실까지 닦았다. 대체 에어컨 하나 고치는 데 왜 이렇게 많은 일이 필요한가 생각하면서. 그리고 난 대체 그동안 뭐를 방치해 온 건가 자책하면서.

 

다음 날, 에어컨은 생각보다 쉽게 고쳐졌다. 더 이상 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리모컨으로 온도를 몇 번 올렸다 내렸다 하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에 맞췄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 이불을 걷어찼다가 다시 끌어당길 필요가 없는 온도.


그날 밤에는 오랜만에 뒤척이지 않고 잤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방 안의 공기가 적당히 서늘했다.

 

그 감각은 정말이지, 만족스러웠다.

 

살면서 자신만의 ‘적절함’을 알아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적절한 에어컨 온도 하나를 찾는 데에도 몇 번씩 리모컨을 눌러야 한다. 사람 사이에서는 더 어렵다. 얼마나 말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지, 언제 웃고 언제 불편하다고 말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가까워져도 되는지, 어느 순간 물러나야 하는지.

 

나는 오랫동안 그 정도를 잘 몰랐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나의 마음이 적절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나의 마음은 끊임없이 무두질당했다.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마음에 균열을 내고, 스스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순간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만의 데이터가 쌓였다. 어떤 말을 참으면 오래 마음에 남는지. 누구에게 어디까지 마음을 내어주어야 내가 소진되지 않는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이고, 어디에서부터는 어렵다고 말해야 하는지.

 

회사에서도 비슷했다. 적절한 정도의 사회생활을 하고, 적절하게 일하고, 적절한 농담을 한다. 사람을 믿되 나 자신까지 내어주지는 않는다. 함께 웃고 즐거워하면서도 집에 돌아올 힘은 남겨 둔다.

 

이런 걸 이제야 알게 된 내가 바보 같아서, 성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부끄럽다. 다만 이제는 나를 보존하면서도 성장할 수 있고, 오늘의 나뿐 아니라 내일의 나까지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을 사람에게 붙이는 것이 조금 우습지만, 요즘 나는 나 자신의 지속 가능성을 꽤 진지하게 생각한다.

 

물론 실패는 반복된다. 

 

때로는 적절하지 못하게 술을 마시거나 잘못을 저지른다. 참을 수 없이 눈물을, 그것도 회사에서 흘린다. 그러다가 다음 날에는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전화를 받고, 적절하게 친절하고, 적절하게 타인에게 관심을 표한다.

 

그렇게 다시 나에 대한 데이터를 하나 쌓는다.

 

이상하게도 요즘의 나는 예전만큼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내가 가질 수 있을까 오래 고민했던 사랑에 대해서도 더는 꿈꾸지 않는다. 쓸데없이 무엇인가에 동하는 마음을 가지지도 않고, 그냥 할 일을 한다. 출근하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예의를 차린다. 때로는 바보같이 웃는다. 해야 할 말을 하고, 일을 끝낸 뒤에는 집으로 돌아온다.

 

삶이 심심해진 것일까? 오히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동안 인생의 다채로움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별것 아닌 농담에 한참 웃는 일, 누군가와 밥을 맛있게 먹는 일, 시원한 방에 누워 있는 일. 구겨진 빨랫감을 힘껏 털어 널었을 때 반듯하게 펴지는 수건을 바라보는 일.

 

그런 것들이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얼음이 크리스털처럼 부딪히는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타 주던 당신이 더 이상 없는데도 그렇다. 그 옛날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했던 ‘번듯하게 잘 사는 삶’과도 여전히 거리가 멀다. 가끔은 엉망이고, 종종 불안하고, 내 주장을 하기 전에 몇 번이고 할 말을 정리하고, 여전히 청소를 미룬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어, 내가 지금 행복한가?’라고 생각했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이 모두 사라져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행복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엉망인 부분을 그대로 가진 채로도 동시에 행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조금 더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이 욕심처럼 은근하게 차오르는 순간이 있다. 한밤중 냉장고 앞에서, 찌그러진 생수통째로 물을 마시던 중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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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팔찌를 만들어 누군가의 손목에 채워주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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