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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최근 자취를 시작했다. 대학 입학 이후로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 처음이다. 기숙사에 살던 때와 달리, 학교와 조금 멀어지긴 했어도 건강한 음식을 요리해서 먹을 수 있고, 내 취향껏 공간을 꾸밀 수 있다는 기쁨에 빠져있다.

 

삶의 질은 전반적으로 증가했으나, 엄동설한에 자취를 시작하게 되어 마음 한 켠에 난방비에 대한 불안이 있다. 보일러 온도를 얼마나 높여도 되나, 샤워를 너무 오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자취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모순. 불안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2년 전 봤던 한 연극이 떠올랐다. 무려 5시간이라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극장까지 가게 만들었던 국립극단의 <이 불안한 집>이다. <이 불안한 집>은 고대 그리스 비극인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현대적으로 다시 쓴 작품이다.

 

난방비 걱정에서 어떻게 그리스 비극까지 흘러갔냐고? 집이 안식의 공간이자 불안의 공간으로서 동시에 기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통해 5시간 내내 기다린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이 불안한 집>을 소개한다.

 

1-3부로 이뤄진 이 연극은 공연의 토대가 되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구성을 충실히 따라간다. 특히 1부에서는 코러스를 활용한 스타시몬-에페이소디온 반복 구조가 나타나며 그리스 비극의 원형을 잘 드러낸다.

 

무대 디자인에서도 그리스 비극의 원형이 드러난다. 무대 상하수에 각각 미끄럼틀이 있고 그 두 미끄럼틀은 2층 무대로 연결되어 있는데, 배우의 등퇴장 방향에도 순서가 정해져있던 고대 그리스 비극 무대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이야기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세 자녀(첫째 딸, 둘째 아들, 셋째 딸)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첫째 딸을 신께 바치라는 신탁이 내려온다.

 

아버지는 딸을 죽이고 전쟁에 나가고, 10년 만에 승리해서 돌아온다.

집을 비운 10년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는 각각 애인이 생겼다.

어머니는 딸을 죽인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해 전쟁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아버지의 애인을 살해한다.

 

유학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그 애인을 살해한다.

신들은 부모를 죽인 둘째 아들에게 분노해서 저주를 내린다.

 

괴로워하던 아들은 신들의 법정에 회부되어 신에 의한 재판을 받는다.

아폴론과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아들은 저주에서 풀려난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이 지금까지 읽히며 중요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복수를 바라보는 고대인의 시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작의 3부에서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인 아들 오레스테스를 신들의 법정에 회부하고, 오레스테스는 아폴론과 아테나에 의해 무죄를 선고 받는다.

 

즉, 고대인들은 복수를 정의로운 행위로 인식했다. 또 오레스테스를 신들의 재판에 붙일만큼 복수는 아주 공적인 것이었다. 2023년에 다시 쓴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서는 복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연극에서 바라보는 복수관이 참 마음에 들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낳고, 낳고 또 낳는데 엔딩에서 중요한 건 복수를 멈추는 일이다라고 모든 복수의 시작이었던 첫째 딸 이피지니아가 직접 말하는 것이 너무 흥미로웠다.

 

특히 작품이 공연된 2023년이 <더 글로리>와 <모범택시>와 같은 사적 복수물이 많이 상영될 때라 복수를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더욱 소중히 다가왔다. 조금 더 생각해본다면 아픔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 것인가로도 연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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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중요하게 보는 건 작가들의 신관이기도 하다. 원작 작가 아이스퀼로스는 신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무려 희곡의 첫 문장부터 신을 찾을 정도로 신에게 삶의 의탁했다.

 

그래서 원작 인물들은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르고 신에게 괴롭힘 당하고, 신에 의해 갑자기 저주에서 풀려나기도 한다. 등장인물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연극의 사건을 갑자기 신이 등장하여 해결하며 막을 내리는 것을 그 유명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부른다.

 

<이 불안한 집>에서는 신관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느냐, 고백컨대 신관에 대해서는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연극학이나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닐 뿐더러,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으로 연극을 애정하고 있기에 한 번의 관극으로 작품을 온전히 분석해내기는 불가능하다.

 

3부부터 신관에 대한 주요 서술이 나오는데, 사실 이미 4시간이나 연극을 본 터라 집중력이 흐트러져 기억하기 어려웠다. 1부에서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신은 없다라고 외치는 대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 대사의 기능까지는 찾아내지 못하였다.

 

오랜만에 떠올린 공연에 대한 생각을 갈무리하며, 나의 집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이 불안한 집에서 어떻게 안식할 수 있을까. 이 불안한 시대, 나라, 취업난 속에서도 가라 앉지 않고 뛰어오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나의 안식처는 소중하다. 아직은 불안한 나의 집이 온전히 안락하게 느껴질 그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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