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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포스터] 퓰리처상 사진전.jpg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무기를 사용한 직접적인 폭력보다 좋은 글 한 장이 더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건의 한순간을 포착한 사진 한 장은 시간이 흘러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되기도 하고, 생의 한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년 12월 21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퓰리처상 사진전: 슈팅 더 퓰리처〉는 이러한 사진 한 장이 지닌 위대한 힘을 관객들에게 열렬히 전한다. 세상을 바꿔놓은 퓰리처상 수상작들을 1940년대부터 2024년까지 연대기별로 정리해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살아온 세상의 역사와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퓰리처상 수상작에는 한국전쟁 중 무너진 다리를 건너는 민간인들의 모습이나 제2차 세계대전 전투에서 승리한 미 해병대가 성조기를 게양하는 모습처럼 역사적인 사건의 한 장면을 담은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이와 달리 평범한 사람들의 아주 개인적인 사연이 담겨 있는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그중 거리에 나온 한 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경찰관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진 ‘신념과 신뢰(Faith and Confidence)’와 전신주에서 일하다 감전으로 쓰러진 동료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전기기사의 사진 ‘생명의 키스(The Kiss of Life)’는 매서운 추위로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베이브 루스 등번호 3번을 은퇴하다- Alamy Stock Photo.jpg
Alamy Stock Photo

 

 

전시장을 돌아보며 가장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던 곳은 작가 케빈 카터의 사진이 걸려 있는 곳이었다.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Waiting Game for Sudanese Child)’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지독한 굶주림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아 바닥에 힘없이 앉아 있는 수단 아이를 독수리가 뒤에서 보고 있는 이 사진은 공개 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람들은 이 사진을 찍은 케빈 카터가 자신의 명성을 위해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케빈 카터의 사진 한 장은 수많은 이의 목숨을 살렸다. 당장 아이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가 처한 상황을 세상에 알릴 것인가. 선뜻 발을 내딛기 어려운 갈림길 앞에서 카메라를 든 케빈 카터는 후자를 선택했고, 결국 그의 사진은 수단의 식량난을 해결하고 많은 아프리카인을 기근으로부터 지켜내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보고 당장 달려가 돕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의 어려움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한발 물러서 있는 사람도 필요하다. 그게 바로 사진작가가 맡은 역할이자 사명이 아닐까.

 

안타깝게도 케빈 카터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해인 1994년에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고통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진실한 사진작가였다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기를 바란다.

 


생명을 불어 넣다 - Photograph courtesy Ron Olshwange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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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단지 파괴할 뿐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찍는 사진가의 카메라는 사랑, 희망, 열정을 담아 삶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 그 모든 일은 1/500초로 충분하다. 삶은 지속되고,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1969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사진작가 에디 애덤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절대 무용하지 않다는 뜻일 테다.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결국 생의 한순간에 담긴 진실을 포착하고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노력이다. 그렇기에 카메라의 작디작은 뷰파인더 속에도 온 세상이 들어 있고, 얇은 종이 위에 인쇄된 사진 한 장도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을 바꾸는 사진 한 장의 힘을 보여주는 〈퓰리처상 사진전: 슈팅 더 퓰리처〉는 오는 3월 3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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