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눈을 감고 타인을 느끼는 일 [도서/문학]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관계 맺기의 진실을 말하다
글 입력 2024.12.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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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이해’. 고작 음운 하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오해에서 이해로 향하는 길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것만큼이나 험난하다고 여겨진다. 아무리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도 사람들은 서로 마음을 나누지 못할 때가 많고, 한 번 굳어진 생각은 그것이 옳든 그르든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먼드 카버는 소설 「대성당」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그와 교감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를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소설 속 주인공은 시각장애인인 로버트와 함께 작지만 특별한 삶의 한순간을 경험한 후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로써 작가는 우리가 손을 맞잡기 위해서는 마음속의 얇은 장막 하나만 걷어내면 된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건넨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나’는 자기 아내의 오랜 친구이자 시각장애인인 로버트에게 전혀 우호적이지 않다. 로버트가 집에 오기 전부터 그는 로버트와 그의 흑인 아내를 조롱하며 로버트의 방문을 불편해하는 자신의 마음을 아내 앞에서 숨기지 않는다. 로버트가 집에 도착한 후에도 로버트에게 일부러 기차의 어느 편 좌석에 앉았는지를 물어보거나 그의 사려 깊은 질문에 무성의한 대답으로 일관하는 등 심술궂은 태도로 로버트를 대한다. 이런 ‘나’의 행동에는 그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그로 인해 만들어진 편견의 영향이 크다. 그동안 영화를 통해서만 시각장애인의 모습을 접해본 ‘나’는 “천천히 움직이고 절대로 웃지 않”는 영화 속 맹인과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지닌 로버트를 꼼꼼히 관찰한다. 지팡이를 사용하지도 않고 검은 안경을 쓰지도 않으며 예전에 읽었던 글의 내용과 달리 평범한 사람들처럼 담배를 피우는 로버트의 모습은 ‘나’에겐 놀라움의 연속이다.

 

시각장애인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로버트와의 만남을 통해 시각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와 편견을 폐기할 기회를 얻었음에도 계속해서 로버트를 쌀쌀맞게 대한다. 그가 쉽게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에게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 같은 것이 있느냐는 로버트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한다. “뭘 믿는 건 없다고 봐야겠죠. 아무것도 안 믿어요. 때로 그건 힘든 일이니까(Sometimes it’s hard).”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믿고, 신과의 소통과 교감의 가능성을 믿으며, 그것을 통한 자신의 변화를 믿는 일을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나’는 종교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믿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다. 보통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믿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에게 시각을 통해 감각할 수 없고 눈앞에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현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쉽게 믿지 못하는 주인공은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깊고 진한 교감 또한 믿지 않는다. 그의 눈에 로버트의 부인인 뷰라는 자신의 모습을 남편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불쌍한 여자”일 뿐이다. 그는 오로지 로버트가 앞을 볼 수 없다는 점에만 집중해 뷰라가 로버트와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을 거라고 제멋대로 판단한다. ‘나’는 자기 아내와 로버트 사이에서 십 년 동안 이어진 우정도 그다지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테이프에 녹음해 로버트에게 보내고, 이에 대해 로버트가 남긴 답장 테이프를 받아서 듣는 것이 단순히 아내의 “여가선용”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그는 로버트와 뷰라의 사랑을, 로버트와 아내의 우정을 믿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자기와 달리 눈을 통해 서로를 보지 않고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들에게 질투를 느끼고 이들을 까칠하게 대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겉으로는 차별주의자처럼 행동하는 그에게도 마음 깊은 곳에는 진실한 소통에 대한 열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대성당 짓기와 대성당 그리기


 

시각장애인인 로버트를 불편해하던 ‘나’가 그와 함께 대성당을 그리는 것은 ‘나’가 시각을 벗어난 새로운 감각을 통해 로버트를 느끼고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나’가 눈을 통해 감각한 로버트는 “홍채에 하얀 부분이 너무 많고, 눈 속의 눈동자가 목적도 없이 또한 멈출 능력이 없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명백한 장애인이다. 자기 자신과 너무나 다른 모습을 지녔기에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도, 제대로 소통할 수도 없는 존재 말이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은 채 로버트와 함께 손을 겹쳐 잡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손의 따뜻한 온기와 감촉을 통해 로버트를 느끼게 된다. 이때 그는 처음으로 로버트가 장애인이기 이전에 자기와 다를 것 하나 없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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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눈여겨볼 지점은 두 사람이 함께 그린 것이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대성당’이라는 점이다. 대성당에 대해 아는 게 있냐는 ‘나’의 말에 로버트가 답했듯 하늘을 찌를 듯한 두 첨탑과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는 대성당은 완성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수백 명의 일꾼들이 오십 년이나 백 년 동안 일해야 대성당 하나를” 지을 수 있고, 그들은 “평생 대성당을 짓고도 결국 그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죽”는다. 하지만 정작 대성당의 필요 이유인 신과 신도의 만남은 대성당을 짓는 것만큼 그리 어렵지도,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기만 해도 신도는 신과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로버트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인 로버트와 그에 대해 마음이 닫혀 있는 ‘나’가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대성당을 지을 때만큼의 인내와 어려움이 필요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작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종이 위에 선을 그어 그들만의 대성당을 그리는 단 하나의 사소한 행위만으로 정서적인 교감에 도달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맹인이라는 이유로 로버트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꺼렸던 ‘나’는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자기가 어디 안에도 있지 않은 오묘한 느낌을 경험하면서 눈이 보이지 않는 로버트의 세계에 비로소 한발 다가간다. 이 결말을 통해 소설은 존재와 존재가 서로 연결되는 일에는 대단한 조건이 필요하지 않음을, 아주 작은 노력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느끼고 이해하게 될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이는 80년 전에 세상에 나온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을 보고 자기가 애정을 갖고 길들인 장미꽃 한 송이의 특별함을 잊어버린 어린왕자에게 여우가 알려주는 삶의 비밀이다. 인간이 약 70%의 감각 정보를 시각을 통해 받아들인다는 점을 떠올리면 중요한 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별로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사랑, 우정, 믿음, 행복, 기쁨. 이렇게 실제로 우리를 웃게 만들고 살게 하는 것들은 정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이 세상이 과학이 고도로 발전하고 이성과 합리가 인간의 미덕으로 칭송받는 감각 세계라고 해도 인간은 두 눈으로는 절대 감각되지 않는 무언가(something)를 마음으로 분명히 느끼고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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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대성당」은 이러한 삶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신과 신도의 관계에 빗댄다. ‘나’가 결국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오해나 편견과 상관없이 로버트를 느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은 마치 지식과 논리에 기대어 신의 존재와 신앙을 끈질기게 부정해 오다가 어느 순간 물리적 감각을 초월하여 신을 만나게 된 무신론자의 신비한 영적 체험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비유는 꼭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자신처럼 지극히 평범한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딱딱한 지식이나 눈에 보이는 모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일러준다. 어떤 존재와 진실하게 연결되기 위해서는 꼭 눈을 떠 서로를 바라보지 않더라도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마음의 얇은 장막만 거두면 된다는 것. 작가의 이 가르침이 『어린왕자』 속 문장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독자들의 마음속에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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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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