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랑이 늘 이기니까요.
아트인사이트에 새로운 에디터를 모집하는 공고가 올라왔다. 좋은 경험을 쌓는 중이라 나도 한 손 거들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기 위해 제출했던 지원서를 다시 읽다 깜짝 놀랐다. 지원서 곳곳에서 사랑과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3개월간 성장하면 성장했지, 무언가 잃어버린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 보니 생각보다 닳고 닳아 없어져 버린 게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랑이다.
난 태생적으로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다. 어떤 것이든 마음을 내어주는 일, 좋아하는 마음을 갖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쉬운 거였고, 친구들에게도 항상 하는 말이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살자.’ 였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사랑’의 시옷도 없는 게 아닌가.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몇 개 떠오른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 때문일 수도 있다. 일을 하며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만나다 보니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치이고 치여서 일수도…. 아니면 출퇴근하는 동안 내 한 몸 지킬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며, 이 모든 게 합쳐져 점점 말라가는 스스로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아서일 수도 있다. 핑계 없는 무덤 없기 때문에 이유를 말하려면 끝도 없다.
그리고 오늘도 그랬다. 이유도 모르는 울분이 치밀어올라 퇴근길 지하철에서 얼룩진 마음을 달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나아지지 않자 자책하고, 의심하고, 다그쳤다가, 남 탓으로도 돌렸다. 아끼고 아껴야 할 내 운동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대신해 주는 에스컬레이터를 마다하고 애꿎은 계단을 쿵쾅거리며 올라왔다.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일찍 자겠다는 일념하에서 집에 도착했더니 미처 정리하지 못한 택배가 있었다. 엄마가 보낸 거다.
연휴 동안 본가에서 지내며 방에 있는 물건을 서울로 택배 보내달라 부탁하고 와 아침에 도착했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싶은 순간이었던 터라 ‘퇴근하고 정리하지, 뭐~’ 하며 미뤄놓은 과거를 탓했다. 널브러진 것들을 두 눈 질끈 감고 잠들 수 없는 사람이기에 부랴부랴 정리하다 보니 눈물이 쏟아진다.
구운 계란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만든 계란에 담긴 사랑, 본가에서 챙겨온 레드향 두 알을 다 먹고 맛있다고 하니 더 보내준 사랑, 사과를 사 먹으려니 비싸다 투덜거린 걸 잊지 않고 과일 망에 넣어 보내준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울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흰 택배 상자에 담긴 사랑을 하나하나 챙기다 보니 마음의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내보내 버렸다. 오직 한 사람의 사랑을 받았을 뿐인데, 여러 명이 던진 미움을 이겨버렸다.
Love wins all.
아이유의 노래처럼 사랑이 늘 이긴다.
검색창에 노래의 제목을 쳐 그녀가 쓴 앨범 소개 글을 소리 내 읽었다.
누군가는 지금을 대혐오의 시대라 한다.
분명 사랑이 만연한 때는 아닌 듯하다.
눈에 띄는 적의와 무관심으로 점점 더 추워지는 잿빛의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무기로 승리를 바라는 것이 가끔은 터무니없는 일로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본 바로 미움은 기세가 좋은 순간에서조차 늘 혼자다.
반면에 도망치고 부서지고 저물어가면서도 사랑은 지독히 함께다.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 ‘Love wins all’ 곡 소개말
에리히 프롬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인간 실존의 모든 고난에 단 하나의 만족할 만한 해답은 바로 사랑이다.’라고 했다. 꺾이고 쓰러지며 생기는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면 흔적으로 남는다. 그렇게 묻어두고 살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선명해지지만, 결국 사랑이 그 자리를 메운다. 그러니 다시금 다짐해 본다. 닳고 닳아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 안에 가득한 것을. 세상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나를 스쳐 간 미움보다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꿋꿋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