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6일간의 엄청난 황금연휴가 선물처럼 주어졌다. 이런 연휴에 제격인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몰아보기’이다. 이런 연휴에는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있어도,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도, 밤을 새워도 합법이다. 이 기회를 노려야 한다. 바쁜 현생 탓에 지금껏 보지 못하고 미뤄온 OTT 속 보물들을 꺼내볼 시간이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하나의 작품을 골라야 한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은 작품으로 시작했다가는, 그 작품 하나가 처음의 불같은 사기를 확- 꺼트리기 때문에. 이런 사기 저하 방지를 위해 나의 추천 드라마 몇 편을 소개해 볼까 한다. 아무래도 보증된 작품을 보는 편이 더 좋지 않겠는가.
앞서 보증된 작품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나는 사실 드라마에 완전히 문외한이다. 오죽하면 마지막으로 챙겨본 한국 드라마가 무려 2010년에 방영한 ‘시크릿가든’이니까.
하지만, 이런 내가 엉덩이를 딱 붙이고 그 자리에서 시리즈 하나를 순삭한 드라마라면? 갑자기 솔깃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찌 보면 ‘드라마 광’의 추천보다 ‘드라마 문외한’이 추천하는 드라마가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여러분도 지금부터 엉덩이 딱 붙이고, 이 글에 집중해 이번 연휴를 꽉 채워줄 밀도 있는 드라마 하나를 데려갔으면 한다.
1. 나기의 휴식
지칠 대로 지쳐 이 6일의 연휴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당신이라면, 이 드라마를 필수로 시청해야 한다.
제목에 떡하니 적혀있듯, 이 드라마는 주인공인 ‘나기’가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며 생기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평범한 직장인인 나기가 회사를 그만두고, 외딴 동네로 가서 이것저것 씩씩하게 만들어 먹으며 살아 나가는 모습을 보면 괜히 대리만족이 되는 느낌이다. 그뿐만 아니라, 드라마라면 놓칠 수 없는 달콤씁쓸한 러브 라인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딱 이번 연휴에 몰아보기 좋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6일간은 잠시동안 나도 나기가 되어보는 것이다. 드라마 속 나기처럼 긴 휴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갑작스레 6일씩이나 주어진 소중한 휴식은 맞으니까. 마냥 흘려보내기보다는 나기처럼 야무지고 알차게 보내보자는 동기부여가 되어줄 수도 있다. 연휴가 조금이라도 더 흘러가 버리기 전에 어서 챙겨보자!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브루클린 99
‘아, 난 미드 유머코드랑은 잘 안 맞던데…’ 라고, 생각한 당신! 그런 당신을 위한 입문용 미드다.
나는 사실 미드의 끝판왕인 ‘프렌즈’를 먼저 보고 이 미드를 보게 되었지만, 내가 만약 이 드라마로 미드를 시작했다면 그 시작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모든 것이 적절하다. 어느 하나 ‘과하다’ 싶은 것이 없고, 딱 모든 것이 알맞은 느낌이랄까. 러브라인도, 주인공들 간의 자연스러운 케미도, 유쾌함도, 흥미진진함도 모든 것이 이렇게 적당할 수 없다.
특히, 이 드라마의 메인 컨셉이자, 테마가 ‘경찰서’라는 것이 바로 이 미드만의 킥이 된다. 만약 이 드라마의 배경이 경찰서가 아닌 어떤 회사의 사무실이었다면 그저 그런, 흔하고 재미없는 미드로 남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서이기에 매번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쾌감, 또 그 긴장감 사이의 유쾌한 포인트들이 더욱 배가 된다. 일반인이 아닌 경찰의 일상을 엿보는 느낌이 재미를 배로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밥 먹을 때 틀어두고 보면 정말 한 끼 뚝딱이다. 아직 미드의 재미와 매력을 찾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번 연휴에 브루클린 나인나인을 통해 알아보길 바란다. 이만한 입문용 미드가 없으니까.
3. 더 오피스
반면, 볼만한 미드는 다 본 이제는 또 새로운 도파민을 찾아 헤매고 있는 미드의 고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여러분을 위해서도 한 편을 준비했다. 이 미드는 빠더너스 ‘문상훈’의 인생 미드이자, 미드를 여러 개 챙겨본 나마저도 무릎 꿇게 했던 미친 미드이다. 바로 ‘더 오피스’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제작한 드라마인데, 다른 미드와는 달리 주인공들이 카메라를 인식하고 있어 더욱 색다르다. 카메라의 앵글도 상당히 자유분방한 편이라 줌인, 줌아웃도 잦다. 또, 한 명씩 직접 카메라에 대고 인터뷰를 하는 장면들도 나와 미드치곤 정말 참신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건 약과다. ‘더 오피스’에는 정말 미친 캐릭터들이 많다. 아니, 사실상 미친 캐릭터들만 모인 것 같다. 지금껏 본 시리즈들 속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캐릭터들은 이 드라마로 들어가면 아주 순한 맛의 캐릭터들이 되어버릴 정도니까.
현실에서는 절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무례한 말들을 입버릇처럼 뱉는 캐릭터가 주인공인지라 처음에는 거의 뇌를 빼고 시청해야 한다. 그래야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볼 수 있다. 만약 버티지 못한다면 아마 진도를 나가기 정말 어려워질 것이다. 마치 잠시 낮잠에 들었을 때 꿨던 꿈속 한 장면인 것처럼 생각하고 보기 시작하면 마음이 편하다. 뒤로 갈수록 그것에 익숙해지고, 메인 러브라인까지 등장하면서 더욱 그 재미가 커진다. 나도 처음에는 적응을 못 하고, 러브라인을 챙겨보는 게 즐거워 오직 그 맛에 보다가 나중에는 러브라인은 뒷전이고 그 무례하고 황당한, 코믹한 상황들이 어서 이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더 오피스’는 참 신기한 드라마이다. 아예 시청자의 취향을 바꿔버리니까. 모든 미드를 섭렵해 이제 조금 질리기 시작했다면 이 드라마로 이번 연휴에 미드를 섭렵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4.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
잔잔한 힐링과 웃긴 건 됐고, 오직 자극을 원한다면 이 드라마도 좋다.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는 바로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추리물이다. 미스터리처럼 느껴지는 어떠한 사건을 미친 재능을 가진 주인공 ‘쿠노 토토노’라는 대학생이 직접 해결하는 내용이다.
이 드라마는 사실상 주인공의 매력이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드라마다.
우선, 이 쿠노 토토노의 비주얼부터가 가히 충격적인데, 다름 아닌 뽀글뽀글 폭탄 머리를 한 청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 중에서도 계속 그 파마머리와 관련된 유머가 나오는 것이 상당히 웃긴 포인트가 된다.
또, 본인의 미친 재능과는 상반된 아주 평화롭고 어찌 보면 지루한 일상을 살아 나가고 있는 내성적인 청년이기에 불쑥불쑥 본인도 모르는 새 사건에 휘말린다거나 경찰들이 직접 집으로 찾아와 그에게 도움을 청하면 몹시 당황스러워하고 반기지 않는 모습 자체도 왜인지 매력적이다. (이 정도면 사랑인 걸까…)
드라마의 구성도 참 알찬데, 배경음악이나 효과음 등 음향 자체도 정말 적재적소에 잘 사용해서 드라마에 굉장히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드라마를 보며 음향에 감탄해보기는 처음이었는데, 그 정도로 정말 잘 사용한 것 같았다.
또, 자막의 사용도 어떠한 사건이 해결된다거나 특정 실마리가 풀렸을 때, 그 캐릭터의 이름이 자막으로 뜨면서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듯이 연출된다는 점이 인상 깊다.
여러모로 상당히 잘 만든 미스터리 드라마라고 생각된다. 애초에 이런 추리물이나 미스터리 작품을 보면 왠지 모르게 내용 전개에 답답함을 느끼고, 그 뒤 내용이 너무 궁금해 참지 못하고 허겁지겁 배속해 시청하는 타입인데 이 드라마는 한 화에 상영 시간이 정말 긴 편임에도 불구하고 체감하지 못한 채 매우 흥미롭게 봤던 걸로 기억한다. 추리물 덕후에게도, 혹은 이런 부분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사람에게도 추천해 볼만한 드라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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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말이 연휴 간 몰아볼 드라마 추천이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사심을 가득 담은 내 취향 드라마 추천 글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런 드라마들을 가장 챙겨보기에 좋은 시기임은 확실하니 분명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공유해본다.
여러분의 ‘몰아보기’가 성공적이길 바라며 이 글은 여기서 이만 마치도록 하겠다.
과연 여러분은 이중 어떤 드라마로 이번 연휴를 채우게 될까? 사실상 이번 연휴의 주인공이 될, 그 드라마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