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로로의 가사는 소비기한이 없다 [음악]

한 편의 시 만큼이나 긴 여운을 가져다주는 그의 가사에 대해
글 입력 2024.12.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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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묻은 너와의 기억

혀 끝에 묻혀

영원히 발음할 수 있도록 도망쳐

 

 

시의 한 구절 같은 노래 가사를 쓰는 한로로. 그 가사의 여운은 시보다도 길다. 영원토록 나의 마음 속에 남아있을 것만 같다.

 

오늘은 내가 그의 노래 가사에, 그리고 그에게 빠진 순간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무더웠던 여름날, 친구와 나는 2024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티켓을 예매했다. 우리가 그 락 페스티벌에 가는 이유는 한로로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 티켓을 예매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한로로’라는 가수를 잘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음… <입춘>이라는 노래가 유명했던가?’

 

한로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이게 다였다. 관심도 딱 거기서 멈췄다.

 

락 페스티벌이 2주 정도 남았던 시기, 그래도 페스티벌에 나오는 가수의 노래를 알고 가야지 더 재밌을 것 같아 한로로의 노래를 하나둘 들어보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들어본 노래는 당연히 그의 대표곡인 ‘입춘’이었다.

 

 



 

바삐 오가던 바람

여유 생겨 말하네요

내가 기다린다는 봄

왔으니 이번엔 놓지 말라고

 

 

잔잔한 멜로디, 영어 하나 없는 가사,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묵직하고 진중한 목소리. 모든 것이 의외였다.


57초쯤 후렴이 나오는데, 곡의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팡-‘ 터지듯 여러 악기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고 그 감정을 계속 이어가며 진행되는 노래. 왠지 모르게 잠시 숨을 참게 되었다. 노래에 압도되는 느낌…. 노래를 들으며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항상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볍고 듣기에 편한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었다. 마치 영상 속 배경음악처럼 계속 들어도 귀가 피곤하지 않을 만큼 가벼운 멜로디와 적당한 템포, 단순한 음이 반복되는 노래가 좋았다.

 

그런 나에게 한로로의 노래는 원래의 내 취향과 완전히 반대되는 노래였다. 하지만, 끌렸다. 그 색다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알고 싶어졌다.

 

유독 한로로의 노래 가사가 내 귀에 쏙쏙 들어왔기 때문일까? 나에게 노래란,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일상의 ‘배경음악’ 같은 느낌이라 노래의 존재감이 너무 강렬하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노래가 귀에 들리면 노래를 아예 꺼버릴 정도로. 그래서 차라리 가사 없는 노래를 찾아 들었다. 그만큼 노래의 존재감, 특히 그 존재감을 좌지우지하는 가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나였다.


하지만, ‘입춘’을 듣고서는 바로 음악 앱 속 가사지를 펼쳐보았다. 대체 내 귀에 박히는 이 노랫말의 뜻이 무엇일지, 전체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뭔지 너무 궁금해졌다.

 

직접 눈으로 읽어 내려간 가사는 정말 모든 줄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지금 시를 읽고 있는 건지, 노래의 가사를 읽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으니까. 자신의 마음이 저무는 날까지 푸른 낭만을 선물한다는 이 사랑이 대체 얼마나 절절할지 괜히 함께 가슴이 아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사랑이 시작된 걸까?


 


 

영원을 꿈꾸던 널 떠나보내고

슬퍼하던 날까지도 떠나보냈네

오늘의 나에게 남아있는 건

피하지 못해 자라난 무던함뿐야

그곳의 나는 얼마만큼 울었는지

이곳의 나는 누구보다 잘 알기에

후회로 가득 채운 유리잔만

내려다보네

 

 

다음으로 들은 노래는 ‘사랑하게 될 거야‘. ‘입춘’에 비하면 밝은 멜로디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멜로디가 비교적 밝고 가볍다고 하더라도 가사는 어김없이 마냥 가볍지 않았다. 이런 포인트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마 위 상처는 청춘의 징표

우리는 서로의 좋은 반창고

 

 

대망의 최애 곡, ‘비틀비틀 짝짜꿍’. 이 노래를 듣고서 나는 최종적으로 한로로에게 푹 빠져버렸다. 동시에 락 페스티벌이 더욱 기대되기 시작했다. 반드시 이 노래를 락 페스티벌 현장에서 따라 불러야겠다는 욕심이 생겼기에.


지금껏 들었던 한로로의 노래 중 가장 신나고 힘찬 멜로디였다. 가사도 사회 초년생들이 들으면 눈물이 흐를 만큼 공감되는 내용들로 가득했고, 중독성 있고 쉬운 후렴까지 완벽했다.

 

그렇게 락 페스티벌 당일이 되었고, 가사를 전부 외우진 못한 상태로 가게 되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모든 공연을 앉아서 보려 했지만, 한로로의 무대만은 스탠딩으로, 가까이서, 그 현장의 뜨거움을 느끼며 보고 싶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무대 가까이에 갔고, 그렇게 무대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힘차고,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자 정말 락 페스티벌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입춘’을 부를 때는 모두가 푸른 낭만을 선물하겠다는 그 아름다운 가사를 따라 불렀고, ‘비틀비틀 짝짜꿍’을 부를 때는 정말 서로가 서로의 좋은 반창고가 되어주겠다는 듯 듣기만 해도 힘이 나는 가사를 함께 불렀다.

 

한로로가 적은 가사의 힘은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그렇게 페스티벌에서 함께 불렀던 가사들은 페스티벌이 끝나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박혀 떠날 생각이 없다. 여전히, 선명하게 내 귓가에 울리고 있다. 한로로의 가사에는 유통기한(소비기한)이 없다.

 

곱씹을수록 아름다운

또, 영원히 아름다울 

그의 가사를 여러분도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

 

 

[정한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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