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 아저씨의 혼밥 이야기가 이렇게 귀여워도 될까?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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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독 '혼밥'과 '혼술'을 어려워했다.
혼자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가고, 심지어 여행까지도 다녀온 나였지만, 밥과 술은 왠지 혼자 하는 게 부끄럽고 힘들었다. 여러 번 도전을 해 봤지만 할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허겁지겁 먹고 뛰쳐나오느라 체한다거나, 집에서 혼자 즐기는 '가짜 혼밥 혼술'을 하곤 했기에 이건 실패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부터가 나의 관심을 확 끌었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두 가지를 과감하게 행한다는 책의 제목... 안 읽고 베길 수가 있나. '한 수 배워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재미없어! 자네가 만드는 버터 간장밥은 재미없어!
거장의 버터 간장밥 中 (59p)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정말 귀엽다.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터질 정도다. 어떻게 혼밥과 자작을 이야기하는 책이 귀여울 수가 있냐 싶겠지만, 책을 읽고 나면 나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본인을 노친네라 칭하며 친근함을 어필한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을 때쯤에는 '쇼지 사다오'가 마치 옆집 아저씨 혹은 아빠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 정도면 말 다 한 거지)
또, 자신만의 독특한 음식 철학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너무나도 확고해 왠지 좀 웃기기도 하고, 음식 하나에 대한 그의 열정이 보이니 그 순수한 마음이 꽤나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심지어 표현방식마저도 너무 독특하다. 정말 사소한 사실을 마치 중요한 사안처럼 표현한달까. 예를 들자면, '우리도 카레 국물 두 배 운동을 전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라던가, '머지않아 고기에 붙은 비계가 인정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둥.. 저렇게 유쾌하게 표현하니 더욱 글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아무튼 이 저자의 음식에 대한 열정은 참 대단하다. 오죽하면 나는 지금껏 내가 음식을 너무 건성으로 대해왔나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친구는 많소이다. 혼자 오고 싶었던 거지.' 이런 의사를 눈에 담아 시선을 돌려준다.
찌그러져서 한잔 中 (25p)
글이 정말 솔직하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딱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정말 본격적인 고수가 등장하여 지식과 팁을 알려주는 그런 책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의 예상을 전혀 빗겨나갔다!
보통의 책이라면, '혼밥을 하면서 남을 의식하지 말라' 이런 식으로 멋진 말을 먼저 던질 테지만, 이 책의 저자는 달랐다. 오히려 남을 의식한다고 솔직히 털어놓으며 시작했다. 이에 나같은 독자는 공감이 되어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 저자와 나의 다른 점. 바로 그런 남의 시선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즐기는지, 그 과정에서 본인이 느끼는 감정까지 그대로 책 속에 담아냈다.
나는 이 부분이 특히 좋았다. '이런 책을 낸 저자마저도 혼밥 하며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왠지 모를 안도감까지 느껴졌다. 혼밥을 하면서 어쩌면 가장 어렵다고 볼 수 있는 '남들의 시선 의식하지 않기'라는 하나의 짐을 쿨하게 툭 받아들이며, 혼밥을 매우 쉬워 보이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밥에 대한 진입 장벽을 자연스레 낮춰줬다.
어떠한 것이 매우 쉬워 보이면 그것은 그걸 하는 사람이 매우 고수라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 쇼지 사다오가 혼밥의 진정한 고수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은 오후 2시다. 오후 2시에 뜨거운 사케 한 병이다.
찌그러져서 한 잔 中 (26p)
아! 책을 읽기 전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환전이다. (ㅋㅋㅋ)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장 내일이라도 엔화를 들고 일본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저자가 일본인인 만큼 주로 일본에서 먹는 음식과 술집들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즐길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 애가 탈 지경. 특히 부러웠던 것을 몇 가지 꼽자면, 아침 9시부터 운영하는 이자카야가 있다는 것, 슬리퍼를 신고 걸어나간 집 앞 편의점에 야끼소바 컵라면이 있다는 것, 도시락의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는 것 등.
또, 확실히 나라의 특성상 모두가 개인주의이기에 혼밥과 자작에 최적화되어있었다. 아마 한국에 사는 나보다 비교적 더 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겠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도 꼭 한번 그런 곳에서 본격적으로 혼밥과 자작을 감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딱히 뭘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에게는 '메뉴판'이라는 최고의 도구가 있으니까요.
특별 대담 [전편] 中 (150p)
책의 구성이 매력을 더욱 높여준다.
챕터 사이의 '특별 대담'은 의외로 꽤나 흥미롭다. 갖가지의 음식 이야기가 지루할 때쯤, 딱 등장해주기 때문이다. 이 특별 대담은 혼밥의 달인과 혼술의 달인 둘이 이자카야에서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적은 글이다. 글의 형식이 아예 극의 대본처럼 구성되어 있어 정말 둘이 대화 하는 것을 옆에 앉아 듣고 있는 느낌이다. 그 술 자리가 눈 앞에 선명히 그려지는 느낌. 수월하게 술술 읽혀서 좋았고, 서로에게 하는 질문이 내가 궁금했던 질문과 겹쳐 궁금증이 해결되기도 하였다.
또, 삽화가 정말 귀엽고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책에 삽화가 없었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책이 귀엽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삽화의 역할이 대단하다.
일식을 사랑한다면,
솔직하고 귀여운 책을 찾고 있다면,
읽기 부담스럽지 않은 책을 찾고 있다면,
이 '혼밥 자작 감행'을 꼭 한 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정한나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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