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앞선 에피소드를 통해 그간 잊고 살던 프로필 뮤직 플레이리스트를 꺼내 보며 뜻밖의 수확들이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쉽게 좋아하지만 또 그만큼 새로운 자극에 약한 사람이라서 질림의 역치가 참 낮다.


그래서 즐겨 듣는 노래가 새로 생기면 이전에 듣던 음원에는 다시 눈길을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에피소드를 시작하면서 새삼 잊고 있던 노래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령 그 노래를 듣던 시절의 기억, 당시 계절의 향, 누군가의 따듯했던 말 한 마디들 말이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어김없이 프로필 플레이 리스트를 되돌아보며 시간 여행을 했고, 그로부터 얻은 나의 소소한 수확물을 내놓아 보려고 한다. 아쉽게도 현재 내게 남은 것은 30개로 제한된 카카오톡 메신저의 프로필 뮤직 리스트이지만, 앞으로는 따로 플레이 리스트를 기록하고 이 카테고리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다.

 

 

 

백예린 – 야간 비행


 

 

 

이 노래에 담긴 나의 계절은 20살의 끝자락, 쌉싸름한 겨울이다. 유독 이 노래가 플레이 리스트에 담기던 순간이 참 생생하다. 그날은 다가오는 기말고사 준비로 24시간 스터디 카페에 있던 새벽녘이다. 이토록 ‘야간 비행’에 어울리는 때가 또 있을까.


그래서였나, 이전에도 듣던 노래였지만 그날따라 알고리즘이 끄집어내 우연처럼 흘러나온 이 노래의 가사말에 새삼 귀를 기울이게 된 연유는. 가사 보다 멜로디에 주로 집중하는 편이었기에 자주 들었던 노래였지만서도 그렇게 찬찬히 가사를 뜯어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전에 봤던 빛, 그 꽃을 찾아서

난 지금 어딘가로 야간비행

확실한 게 없어도 난 달려가

 

 

그러다 이 구절이 마음에 쿡 박혔다. 그 때의 나는 정체성의 아노미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저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만 잘하면 장땡이었던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겨우 알을 깨고 세계에 나왔지만 자신이 깨고 나온 알을 비롯하여 내 안의 근본조차 몰랐던 시절이다.


과 특성인 건지 좋아하는 것이 확실했던 대부분의 나의 대학 동기들과 달리 나는 내 취향과 취미마저 몰랐다. 좋아하는 것을 몰랐기에 그것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집 학교 집 학교 만을 오가다 이렇게 지루한 인생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지 낙담하던 그 시절, 이 가사가 내게 해답의 실마리를 알려주었다.


확실한 게 없어도, 비록 칠흙 같은 야간일지라도 차가운 바람을 뚫고 날아가다 보면 전에 봤던 그 예쁜 꽃을 찾을 수 있고, 새삼 그 꽃의 아름다움이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진부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문화 예술이 그랬다.


어린 시절 나의 주말은 대게 대학로에서 흘러갔다. 본인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하시지만 유독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연극이나 뮤지컬, 국악, 무용 등 장르 불문 문화 예술이 이루어지는 곳곳에 나를 데리고 가셨다고 한다. 정작 어머니는 그런 쪽으로 전혀 관심이 없으셨는데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당시의 나는 그 시간들을 그리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집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액자들 속 엄마의 손에 이끌려 커튼콜 때 무대 위로 올라가 배우들과 찍은 사진을 보면 내 표정은 누가 봐도 ‘나 여기 마지 못해 올라 왔소’라고 말하듯 뚱해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그로부터 10년 가량 흘러 성적에 맞춰 들어간 학과는 하필 문화관광학과였고, 그렇게 진부한 러브 스토리마냥 돌고 돌아 다시 운명처럼 만난 문화 예술이 내게는 이 노래 가사 속 예쁜 꽃 처럼 참 새롭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으로 나를 이끌고 온 운명이라면 운명 같은 이 이야기가 야간 비행과 꼭 닮아 있어서 유독 이 노래에 마음이 가는 것 같다. 다시 야간 비행을 해야 할 시기가 올 수도 있겠다. 그때는 조금쯤 더 꽃의 아름다움을 빨리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최유리 – 동그라미


 

 

 

나의 어린시절은 까칠하고 모난 내 모습에 대한 뾰족한 시선들뿐이라서, 나는 깎이고 깎여 동그란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세모로 태어나 동그라미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달까. 어릴 때 나는 참 이기적이고도 모진 면이 있어서 잘 지내던 친구들과도 어느 순간 늘 위기를 맞이하곤 했다.


그들은 항상 나의 변덕스럽고 모진 면에 지쳐 돌아섰고, 혼자가 되기 싫었던 그 시절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원래 나의 모습을 깎아내는 것 밖에 없어 보였다. 물론 아이는 사회화를 거쳐 어른이 된다지만 나는 과하게 사회화가 되었던 것 같다. 싫은 소리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어른으로 자랐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가령 아르바이트 1년을 성실하게 채우고도 그만두겠다는 말을 해야 할 시기가 오면 복숭아 뼈가 목에 박힌 사람처럼 그렇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미루고 미루다 정말 말을 해야 할 때가 오면 그날은 하루 종일 배앓이를 하다가 마치 죄 지은 사람 마냥 그 말을 뱉어 내곤 했다.

 

 

이대로 나 모진 사람이 된 것 같아

이 걱정의 말을 해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볼까

모진 구석 하나 없구나

나는 그저 마음 하나를 빌린 건데

커져가니 닮아 있구나

 

 

최유리의 곡들은 항상 나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곤 한다. 그녀의 곡들이 든 플레이리스트는 나에게 냉동고 저 안에 보관하다가 아껴먹는 디저트 같은 존재인데, 쉽게 질려 하는 나의 특성 상 혹여라도 질려 버릴까 봐 여행 가는 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그녀의 플레이리스트를 꺼내 듣곤 한다.


최유리의 곡들 중에서도 가장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동그라미’였다. 모진 사람이 될까 걱정을 하고, 내가 바라보는 타인들에게는 모진 구석이란 없는 것 같다는 가사는 어린 시절 나와 참 닮아 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씩 빌리다 보니 그 사람들과 닮아진 것 같고, 그럼 안심이 되었다.

 

 

오늘은 곧 사라져 가는 사람들 속에서

아니 더 큰 먼지가 되어온 날

날 바라보는 사람들 시선에 갇혀 지내도

나는 아직 모질고 거친 거야

 

 

그러다가 문득 나는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항상 타인의 눈치를 보며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착하게 굴어도, 내면의 나까지 속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모질고 거친지 알기에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 동그라미를 연기하는 내 모습에 점차 의문이 들었다.


요즘에는 스스로를 지키면서도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려 한다. 동그라미가 되지 않고 세모인 나 스스로를 드러내더라도 모진 각들로 타인을 찌르지만 않으면, 그러니까 내가 진짜 나를 잘 드러내는 방법만 안다면 나는 나를 지키면서 타인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그런 성숙한 세모인 내가 나 스스로를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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