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 세상을 바라보는 심미안, 그림책 작가 미안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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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세상을 아름다운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그림책의 심미안 ㅡ 미안 작가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안이라는 필명으로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미안입니다. 그림책을 위주로 활동을 해오다가 최근에는 그 분야를 넓혀 글, 그림, 사진, 독립출판까지 다양하게 시도를 하고 있어요. 종합적으로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라고 저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아티스트님께서는 어릴 적부터 그림책을 굉장히 많이 접해왔고, 자연스럽게 그림책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던 적이 있어요. 모든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데. 작가님께서는 그림책을 더욱 많이 읽을 수 있게 되었던 계기가 있다면.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접하게 되었어요. 그 중 하나가 바로 그림책이었던 것이죠. 어머니께서 그림책을 자주 사다 주셨고, 저도 그것을 항상 재미있게 읽고 하다보니 저의 인생에서 가장 먼저 노출되고 그만큼 많이 접하게 되었던 콘텐츠가 바로 그림책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저는 조금 내향적인 성격이었거든요. 외향적으로 집 밖에서 뛰어 노는 친구들에 비해, 저는 집에서 그림책을 읽는 시간이 더 많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연령대가 올라가며 자연스럽게 그림책 외의 도서들도 읽었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어릴 적 읽었던 그림책의 기억이 정말 긍정적으로 남아있었어요. 대학교로 가서 그림을 전공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어릴 적 읽었던 그림책이 떠올라서 그림과 글을 결합해서 저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이야기’라고 한다면 우리가 글로 된 언어만을 많이 생각하잖아요. 저는 그림과 글을 결합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해서 ‘그림책’이 눈에 들어온 것 같아요.
- 그림을 전공하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셨다고 해주셨어요. 작가님께는 그림이 먼저였을까요? 글이 먼저였을까요?
‘이야기’가 먼저였더라고요. 사실 저는 이 사실을 얼마 전에 깨닫게 되었어요. 전공을 그림을 하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저 스스로에 대해 ‘나는 그림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림이 나의 유일한 표현 수단인 것 같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 글을 개인적으로 계속 적어보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결국 글과 그림 모두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궁극적으로 제가 매력적으로 느껴서 하고자 했던 것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그 자체였던 것이죠.
- 그렇다면 그림을 전공하게 된 것도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바탕이 되었던 것일까요?
‘이야기를 짓기 위해 그림을 그리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 그림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어떤 과목을 배울 때도 항상 맥락이 이어지는 것에 흥미를 많이 느꼈거든요. 그저 단순히 ‘A는 B다’라는 명제보다는, 그 명제의 바탕이 되는 배경이나 이어지는 흐름을 볼 때 더욱 흥미를 느꼈어요.
이미지에 메시지를 담은 것이 그림이고, 그것을 모아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바로 그림책이잖아요. 저는 처음에는 그림으로 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마음이 그게 모이고 모여 그림책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미안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과 그림책의 현재
- 작가님만이 느끼는 그림책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 들려주세요.
저는 평소 만연체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그 반대되는, 함축적이고 정돈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더욱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그림책은 아무래도 다른 그래픽 노블이나 장편 소설보다는 짧은 시에 가깝고, 그래서 축약된 상태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해야 해요. 그만큼 더 강렬하게 다가갈 수도 있고, 이면과 표면이 공존하는 방식의 연출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죠. 저 스스로가 평소 정리되지 않은 말을 많이 하다보니 그만큼 더 말을 정리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는 내용에 여백이 있는 그림책을 좋아해요.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동안에도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자세한 묘사가 없는 만큼 장과 장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죠. 그 점이 저에게는 참 좋습니다.
- 반대되는 것을 추구하는 만큼 굉장히 어려울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그림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맞아요, 정말 어려워요. 하하. 그래서 저는 평소 정돈된 사고를 하는 분들보다 예열하는 시간이 긴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신속하고 능숙하게 다작을 하시는 작가님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할지 비교적 오래 고민하며 적어 내려가는 편이에요. 그래서 아무래도 제작 기간이 길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것은 저의 문제인 동시에 저의 삶에 재미를 주는 부분이기도 해요. 저는 항상 어려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거든요. 잘 맞지 않을수록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그것을 해결했을 때 큰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요. 그래서 제가 세밀한 이야기를 적어도 그것을 압축해서 결과물을 내고, 그 과정에서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도 저는 이런 저의 방식이 오히려 저의 삶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큰 보람을 느끼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 어려울수록 더욱 재미를 느낀다는 말이 참 좋아요. 그림책을 그릴 때, 이야기를 압축하는 과정 외에도 어려움과 함께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사실 저는 그림을 많이는 안 그리는 편이에요. 하하. 일반적으로 그림책 작가라고 하면 숨 쉬듯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시겠지만, 저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시간이 훨씬 길어요. 그림은 그 생각이 다 정리된 후에 그것을 구현해내는 과정일 뿐이죠. 그래서 저는 구상 시기가 그림책을 제작하는 모든 과정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림책을 제작한다는 것은 글과 그림, 두 개의 비슷하지만 다른 매체를 융합해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잖아요. 그 두 매체를 융합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이 참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어요. 본작업에 돌입하면 어느 정도 정해진 것을 표현하면 되기 때문에 조금 지루한 면도 있죠. 하하. 오히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할 때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해요. "내가 생각한 대로 이렇게 풀리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완성된 작품을 보면 큰 보람을 느끼고, 그 보람에 다시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되며, 다시 그 지루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계속 그림책을 만들게 됩니다.
- 그렇다면 그렇게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과정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물론 스케치도 하지만, 대부분은 머릿속에서 정리해요. 가끔 베짱이처럼 보일 때도 있겠지만요. 하하. 지금까지 제가 제작해온 주제들이 모두 현실 기반이다보니, 관찰을 많이 하고, 그 과정에서 담아내고 싶은 문제나 갈등을 마주하게 되면 그것을 머릿속에 잘 담아둡니다.
그리고 나중에 비슷한 경험을 계속 마주하며, "이것이 단순히 우발적 갈등이 아닌, 보편적인 문제구나"를 깨닫게 되면, 그걸로 이야기를 제작하기 시작해요.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마무리 되는 것이 나을까?" "어떤 매개체를 사용해서 표현할까?" 이런 다양한 의문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죠.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영화로 비유하자면 [닥터 스트레인지]처럼요. 제 머릿속에서 저는 계속 '도르마무'를 외치며 수많은 가능성과 갈래들을 생각하는 거예요. 인물의 성격을 바꾼다면, 주인공의 설정을 바꾼다면, 결말을 다르게 표현한다면…한 뿌리에서 뻗어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중에 하나씩 정리해가며 제가 생각하는 최선과 최고의 결과물을 냅니다.
- 그렇다면 그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작가님께서 선택하게 되는 결정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주제에 벗어나지 않는 흐름’이 가장 중요해요. 굉장히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주제가 흐려지기도 하고, 처음에 이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했던 이유와 멀어질 때도 많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꾸준히 드러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지 항상 경계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제가 이야기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가 가르치듯,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에요. 저는 그저 한 명의 개인일 뿐이지, 선생님도 신도, 어떤 선구자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답을 정해놓고 이야기를 구성하다 보면, "이 답 외에는 틀린 거야"라고 가르치는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갈 때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한 개의 답을 찾아 그 이야기에 담아내기보다는, 주제에 대한 언급을 꾸준히 하되, 마지막에는 결국 독자들이 자유롭게 각자의 결론과 답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저는 그저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나마 드리는 것뿐이죠. 그래서 제가 구성하는 이야기는 결말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결말은 어떻게 보면 애매모호할 수 있지만, 그만큼 여운도 긴 것 같아요. 제가 독자 입장일 때 그런 작품을 선호하기도 하고요.
- 구상을 하는 과정은 즐겁지만, 글과 그림으로 표현할 때 ‘이게 맞나’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고 해주셨어요. 주로 어떤 때인가요?
머릿속에서 막연하게 떠올렸던 인물의 모습이나 이야기의 구성 같은 것들이 실제로 원화나 원고로 들어갔을 때, 처음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풀려서 표현되는 경우가 있어요. 어떤 때는 마치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받아서 그리는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이 이야기는 분명 제가 시작했고, 하나하나 진행한 것인데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튀어나오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런데 그런 변화가 오히려 발판이 되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어떤 때는 "이렇게 하니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는구나"하며 배울 때도 있죠. 그래서 저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타인의 조언도 계속해서 듣고 있어요. 홀로 작업하다 보면 저만의 세상에 갇힐 수밖에 없으니까요. 더 좋은 변수를 찾기 위해 나서서 의견을 구하기도 합니다.
- 예전, 작가님께서는 그림책이 마치 물수제비와도 같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지금의 작가님께 그림책은 무엇일까요?
요즘 저는 그림책이 타인의 일기장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작가로서 보편적인 속성의 이야기를 하려고는 하지만, 결국 저나 제 지인들의 경험 중에서 직접 선택한 소재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떻게 보면 그림책은 작가의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작가의 마음속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과 같죠.
그래서 그림책을 읽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공감하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나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 같다"거나 "이렇게 행동하는 방법도 있겠구나"하고 새로운 시각을 접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 과정에서 그림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이해하게 되고, 또 자기 자신도 돌아보게 되는거죠. 저는 이 특성이 일기장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 굉장히 재미있는 비유인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최근의 그림책은 어떤 목적으로 제작되고 읽히는 것 같으세요?
요즘 독서인구가 현저히 줄어들었잖아요. 그렇다보니 출판 시장도 위축되고 있는데요, 저는 이런 상황에서 독자들이 다시 책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역할을 그림책이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중고등학생들 중에는 교과서나 문제집을 많이 접하다 보니 '책'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 거부감을 줄이면서도 책이라는 콘텐츠와 친밀해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로 그림책이 적합하죠. 짧고, 그림이 많아 볼거리가 많으면서도 다양한 사고를 이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진입 장벽은 낮으면서도 책의 역할은 확실히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최근 학교에서도 그림책이 많이 활용되고 있어요.
또 재미있는 점은, 어른들에게 그림책이 일종의 ‘치유’라는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치유가 단순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죠. 비록 풀어내는 방식은 간소화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이슈들이 그림책에 충분히 담겨 있고, 그 안에서 어른들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그림책의 목적이 굉장히 다양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렇다면 그런 그림책의 주 독자는 누구일까요?
요즘에는 오히려 어른들이 그림책을 더 많이 보지 않나 하는 생각도 종종 해요. 삶이 고단할 때 그림책으로 돌아오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데 사실 그림책이라는 것은 단지 위로를 주기 위해서만 제작되지 않잖아요. 위로와 동시에 생각할 거리를 함께 제시하죠. 저는 이 점이 반복되는 삶에서 밀접하게, 벗어난 듯, 그 아슬아슬한 틈을 통해 일상의 재미를 많이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림책은 아이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더욱 심오한 내용들이 그림책에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어린이 책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화한 것이죠. 실제로 그러한 작품을 제작하는 창작자들이 많아졌고요,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그림책을 찾는 독자들도 늘어가는 것을 점차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림책이 담는 주제의 범위가 확장된 것 같아요.
그래서 초기 그림책의 역할과 현재의 역할은 많이 달라졌고, 그만큼 다채로워졌다고 생각해요.
미안 작가의 작품으로 던져주는, 우리 일상 속 생각의 주제
- 작가님의 메인 작품을 하나 소개해 주세요.
하하, 물었을 때 가장 아픈 손가락을 고르는 느낌이네요. 그래도 하나를 말씀드려 보자면, 창작자이자 동사에 한 개인으로서 자세한 이야기를 다룬 <새와 춤추는 사람>을 제일 먼저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작가로서 해야하는 일, 그리고 사람으로서 살아가며 해야하는 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유지하는 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책이거든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수 있는 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와 춤추는 사람>은 소문이라는 주제로 다루는 저의 시리즈 그림책 중 두번째이자, 가장 최근 나온 책이에요. 소문이 왜곡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에 대처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색다르게 풀어본 책이죠. 기존의 제가 소문과 거짓말에 대한 나약한 개인의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그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초인적이고 가장 지향점이 될 수 있는 대처를 하는 주인공을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단단하고 잘 버틸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사람’을 염두하고 시작하여 구성한 책입니다.
- 말씀해 주신 것처럼 <새와 춤추는 사람>은 전작 <거짓말>과 함께 '소문'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되어요.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죠. <거짓말>과 비교했을 때, <새와 춤추는 사람>에서 가장 주의를 기울였던 부분이 있다면.
감정을 절제시키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거짓말>에서는 굉장히 솔직하게 전체적인 이야기를 드러냈고, 그 안의 등장인물들도 폭발적으로 감정을 내보이거든요. 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등장인물의 연령대 차이도 있고, 같은 소문을 주제로 제작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묵묵히 나아가는, 견디고 반복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했다보니 <거짓말>보다는 인물의 감정, 사건에 대처하는 자세,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 모두 차분하고 간결하게 보이게끔 표현을 해보았습니다.
- ‘새’와 ‘춤’, 두 개의 키워드를 메인으로 꼽은 이유도 궁금해요. 어째서 사람은 새와 춤을 추는 것으로 설정되었을까요?
최대한 낯선 조합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외지인이 보았을 때 너무도 이상하고, 참견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을 것 같은 기이한 현상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조합이 가장 좋을지에 대해 생각을 했거든요. 예를 들어 강아지는 도그 댄스같은 분야가 있을 정도로 훈련이 잘 되는 동물이고, 그만큼 사람과 많이 볼 수 있는 조합이잖아요. 그런데 숲이라는 야생에서 살아가던 새가 갑자기 나타나서 인간과 춤을 춘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이상하게 보일 것 같은 거예요. 도저히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는 모습일 것 같았죠. 그렇게 가장 참견을 부르는 이상한 조합을 찾다 보니 최종적으로 ‘새와 춤을 추는 사람’이라는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 작가님께서는 워낙 현실과 밀접한 그림책 주제를 선택하시는데, 실제로 <새와 춤추는 사람>도 작가님께서 겪으신 실제의 사건이 녹아들어 있을까요?
희한하게도 저는 매번 책 작업을 할 때마다, 그 작업 중에 책의 주제와 연관된 사건이 발생해요. 제가 겪거나 저의 주변인들이 꼭 겪게 되죠. 아무래도 제가 엄청 독특한 주제들을 다루기보다는 사회에 만연한 문제점들을 짚으려다보니 그런 것 같아요. 실제로 <새와 춤을 추는 사람>도 제작 도중 지인이 오해를 받고,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그저 묵묵히 견디는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런 내용의 그림책을 만드는 이유는 결국 그 일이 줄어들기를 바라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책을 제작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 책이 추후 독자님께서 비슷한 상황에 놓이셨을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합니다.
-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쓸 점도 많다는 의미 같아요. 섬세하게 주제에 대해서 풀어내야 하니까요. 이러한 점에 대해 작가님께서 가장 신경쓰는 점이 있다면.
메시지를 강요하는 책을 만들지 않으려고 주의해요. 저의 의도가 왜곡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다양한 관점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작가로서 어떤 한 인물을 저의 페르소나처럼 활용하지 않으려고 해요. 만약 그렇게 보인다면, 제가 더욱 노력하고 성장해서 제대로 전달해야겠죠. 그래도 ‘얘는 착해’, ‘얘는 나빠’ 이런 식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통제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의 그림책들은 찝찝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사람이 이렇게 됐으니, 이렇게 행동하세요.'하는 식으로 결말을 내서 저만의 기준을 강권하고 싶지 않아서요. 대신 ‘이 인물은 이렇게 행동했는데, 독자님들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을 하시겠어요?’ 하고 질문을 던지려고 노력합니다. 명확하고 긍정적인 결말의 장점도 있어요. 독자님들께서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덮으실 수 있겠죠. 다만 저는 제 이야기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편안함을 포기했습니다.
- <새와 춤추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께서 제시하신 선과 악이 조금 명확하지 않았나 해요.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인공 사람을 응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하하 맞아요. 저도 이 책을 읽는다면 어쩔 수 없이 주인공 사람의 편을 들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자 주인공을 다른 인물과 확실히 구분짓는 특징적인 외모나 이름을 설정하지 않았어요. 독자께서 주인공에게만 이입하지 않고, 사건에 따라 등장 인물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도록이요.
- 앞으로는 어떤 그림책을 만들고 싶으세요?
제가 앞서 <소문>을 주제로 하는 책이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첫번째가 <거짓말>, 두번째가 <새와 춤추는 사람>이었죠.
마지막으로 준비 중인 책이 <말꼬리(가제)>에요. 이 또한 <거짓말>, <새와 춤추는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문에 대처하는 내용이에요. 다만 이번에는 조금 더 분량이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그림책보다는 만화책에 가까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담아내고자 하는 내용을 최대한 줄여서 그림책의 형식을 유지하고 싶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의 가지가 많이 뻗어있거든요. 그리고 촌극에 가까운 분위기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 아직 담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담고 싶은 그림책의 주제가 있다면.
저는 지금 학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소멸’을 주제로 작성한 원고를 바탕으로 졸업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슬픈 이야기지만, 모든 생명은 그 결말이 정해져 있잖아요. 건조한 분위기로 다양한 형태의 소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림책이 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요.
미안 작가의 새로운 목소리를 살펴봅니다.
- 최근에는 그림책 외에도 다양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어요. 블로그에 글을 올리시거나, 그림책이 아닌 형태의 도서를 제작하고 계시죠. 그렇게 제작하게 된 것은 역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언어의 확장을 위해서였을까요?
맞아요. 말씀해 주신 대로, 그림책에서 벗어나 글, 그림, 사진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그 각각의 특징들을 활용해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형태의 제한을 두지 않고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했죠. 실제로 다른 예술가 분들께서도 특정한 범위에 갇히지 않고 무궁무진하게 그 바운더리를 확장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더 명확하고 다채롭게 전달하시잖아요. 저도 그와 같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림은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정확하게 제시해주는 느낌이 강하잖아요. 그런데 글로만 전달했을 때는 읽는 이에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더 많이 줄 수 있죠. 그 부분이 저에게는 참 색다르고 매력적이어서 최근에는 즐겁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 그림책 외의 분야에서 활동을 할 때는 메인 컬러로 푸른색을 활용하고 계세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하하. 파란색을 보면 차분해지고 편안해져요. 평소 산보다는 바다, 낮보다 새벽, 여름보다는 겨울을 선호하는 편인데요, 바다와 새벽, 겨울을 표현할 때에도 푸른 톤이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자주 사용하게 됩니다.
- 지금까지 진행하셨던 작업 중 하나 소개해주신다면.
그림책 외의 작업 중에서는 [눈생물도감]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소멸에 관한 작업 중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눈'이 바로 소멸의 대명사격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녹아 없어질 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 짧은 순간, 추위 속에서 버텨가며 어떻게든 정성을 들여서 자신의 개성과 애정을 담은 눈생물을 만들잖아요. 그것을 가져가지 못하고 만든 장소에 그대로 남겨두고 가죠. 이 과정이 매 겨울마다 반복된다는 사실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렇게 애정이 담겨 제작되고, 그곳에 서 있다가 곧 사라질 그 눈생물을 만든 이와 무관한 타인이 발견하고 기록으로 남긴다면 그 또한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저는 특히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려울만큼 요상한 형태의 눈사람들에게 끌렸어요. 객관적으로 근사한 모습이 아닐지라도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굉장히 재미있게 진행했던 프로젝트입니다.
- 해당 프로젝트는 아코디언북의 형태로 제작되었는데. 어째서 아코디언북이었을까요?
앞서 제가 이렇게 눈 생명체를 만든다는 행위가 매 해 반복되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이것을 매년 돌아오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결된다’에 초점을 맞췄죠. 펼쳤을 때 끊임없이 이어지면서도 앞과 뒤가 다시 만나기도 하고, 또 그것이 순환되기도 하는 구조잖아요.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아코디언 북이 제가 바라보는 눈 생명체의 특징과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서 아코디언 북의 형태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 저는 작가님께서 [미완의 미안] 블로그에 올리시는 글도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미안의 간헐적 단상]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오는 글을 연재하고 계시는데.
저의 그림책은 독자들의 연령대에 제약이 없기를 바라며 만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책으로서 가져야만 하는 규칙과 제약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림책에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고삐 풀고 제한 없이 남길 기회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정말 미완의 상태지만, 마음대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어서 만족하고 있어요.
- 그 중 가장 재미있게 적었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미완의 미안] 중에서 작품을 소개해 주신다면.
강네로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둘 있는데, 자전적 경험이 조금 포함된 이야기예요. 마냥 웃기지만은 않은 내용인데 저는 그 이야기를 적으며 제 마음 속에 쌓여있던 응어리들이 풀어지는 듯했어요. 그 시리즈는 앞으로 더 이어질 것입니다.
마무리 지으며
-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내가 왜 파란색에 집중하게 되었는가’를 보다 심도 있게 탐구하고 싶어요. 그래서 이 세상의 수많은 파랑을 모아, 그 이미지들로 다양한 것들을 표현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 부탁드립니다.
제가 읽기에 불편한 이야기를 해왔는데도, 꾸준히 제 책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저는 일상 속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괴상한 이야기,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계속할 예정이에요. 그것을 기대해주시고, 재미있게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요즘 출판업계가 불황인데 이 인터뷰를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저뿐만 아니라 많은 창작자분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푸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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