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은 1989년 출간된 기형도의 첫 시집이자 유고작이다.
그는 1985년 시 <안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였으나 1989년에 사망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후 90년대 들어 '기형도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큼 그의 시는 각광 받았으며, 수많은 시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 안개 속 드러나는 희미한
그는 어릴 적 소하리에서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안개가 유독 자욱한 공장 지역이라 7~80년대의 산업화 과정을 몸소 보고 겪으며 지냈다. 특히 그의 신춘 문예 당선작 <안개>에서는 산업화로 인한 인간의 부품화와 인간성의 상실이 잘 드러난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들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죽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안개 中)
<안개>에서는 그가 살던 마을 소하리의 희고 자욱한 이미지와 함께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을 나지막히 읊조린다.
소하리의 안개란 자연 현상이자 동시에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의 시 세계에서 안개란 인간을 변화시키는 구조이자 개인이 의미화한 구조를 아우르는 핵심적인개념이다.
'사소한 사건들'이라는 단어로 일축되는 끔찍한 일들은 스산한 안개의 이미지와 더불어 잔인한 비인간성을 드러낸다.
2. 불운한 유년과 그 추운 이미지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종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롤 울어야 한다
.……
방 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바람의 집-겨울 판화 中)
이튿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간유리 같은 밤을 지났다.
그날 우리들의 언덕에는 몇백 개 칼자국을 그으며 미친 바람이 불었다
.……
아으, 칼국수처럼 풀어지는 어둠! 암흑 속에서 하얗게 드러나는 집
.……
바람이여, 언덕 가득 이 수천 장 손수건을 찢어 날리는 광포한 바람이여. 이제야 나는 어디에서 네가 불어오는지 알 것 같으다. 오, 그리하여 수염 투성이의 바람에 피투성이가 되어 내려오는 언덕에서 보았던 나의 어머니가 왜 그토록 가늘은 유리막대처럼 위태로운
……
(폭풍의 언덕 中)
……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
……
(나리 나리 개나리 中)
69년, 아버지의 뇌졸중이 발현하며 그의 불행이 시작된다.
치료비에 많은 금액을 쓰고 어머니와 누이들이 생계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기형도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엄마 걱정 中)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가 열여섯이 되던 해 누이의 요절까지 겪게 된다. 혹독하게 추운 유년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 시 세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 결과 그의 시에서는 외풍이 심하게 드는 추운 집과 가난하고 불쌍한 아버지, 위태로운 어머니와 그리운 누이의 이미지 등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이렇듯 기형도는 가난과 죽음에 관해 주로 글을 썼으며, 칼에 베이는 듯 따가운 바람과 추운 계절적 이미지가 시집 전반에 걸쳐 드러나 있다.
3. 90년대 시 세계의 예고
그러나 1988년부터 1989년까지 그의 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기형도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하던 1980년대는 민주화 운동이 한참이던 시기였다. 많은 동료들이 노동시와 민중시를 쓰고 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기형도는 시대적 이데올로기보다는, 개인적인 감정과 고민을 토로하는 시를 써 내렸다. 자신이 가야 하는 길과 하고 싶은 길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방황한 것이다.
1989년은 그가 유년의 윗목에서 벗어나 겨울에서 봄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해였을 것이다. 그는 사랑과 실연, 사회의식 등이 드러난 시를 활발하게 발표하였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 中)
……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 (대학시절 中),
하지만 그는 그의 부친이 앓았던 뇌졸중으로 생일을 엿새 앞둔 어느 날 극장에서 사망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는 오히려 그의 사후 더 주목받기 시작한다. 1989년 출간된『입 속의 검은 잎』은 90년대에 더욱 각광받기 시작한다.
기형도 대신 그의 시집 제목을 정한 평론가 김현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 '도저한 부정적 세계관'으로 그의 시세계를 정의했다. 기형도의 시는 1980년대와 90년대의 연속성을 보여주며, 90년대의 시 세계를 예고하는 면모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삶에 있어 파편화된 글들은 긍정적이기 힘들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와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 부조리를 직면할 때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기에 시에서 부정성은 더욱 극대화된 효과를 지닌다. 부정적인 사건이나 정서가 긍정적인 것보다 우리에게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인 경향성을 바로 부정성이라 부른다. 부정성으로 가득 찬 기형도의 시 세계가 1990년대 시의 첫 관문을 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국 격동의 7~80년을 관통한 한 청년으로서, 그는 평범하게 불행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담담하고도 서글픈 어조로 유년 시절의 아픔과 청년 시절의 사랑, 사회의식을 시로 쓰자 그는 시인이 되었다. 그렇게 그의 시를 읽은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기형도가 겪었던 외로움과 슬픔에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는다.
정치와 문학, 민중과 개인, 이념과 욕망, 역사와 일상 그 사이에서 고민하며 80년대의 끝자락에 서 있던 어떤 시인에 대해 생각해 보면 조금이나마 위로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