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진짜 재밌으니까 꼭 봐!
다들 한 번쯤 퍼즐 조각처럼 딱 들어맞는 작품을 만나게 되는 일을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이러한 작품을 만나게 되면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인들에게 열정적으로 추천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재밌게 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작품을 추천하는 건 아니다. 지인들에게 열정적으로 추천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 작품을 만났음에도 선뜻 추천하기 망설여지는 작품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내 취향을 저격한 작품이라거나, 혹은 작품 속 담긴 메시지가 사회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작품이라거나 하는 등 이러저러한 이유 탓에 무척이나 재밌게 본 작품이 존재함에도 “요즘 뭐 보고 있어?”라는 질문에 작품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기가 망설여지는 것 같다.
작품을 추천하기에 앞서 해당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보편적인 규범을 벗어나지 않은 것인가, 또는 다수가 보기에 거북하게 느껴질 만한 장면은 없는 것인가와 같은 주관적이고 쓸데없는 걱정을 거치고 나면 몇 안 되는 작품들이 손에 남게 된다. 이 목록에는 당연히 <던전밥>도 포함된다.
비주류와 주류, 그 어딘가에서
<던전밥>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해당 만화는 현실에서 보기 힘든 마물들과 마법, 그리고 던전이 존재하는 ‘이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라이오스 일행은 지하 미궁을 탐험하던 도중 레드 드래곤을 마주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라이오스와 그의 일행들은 지하 미궁 안에서 오랜 시간 헤맨 탓에 지쳐있었고, 결국 라이오스의 동생인 파린이 레드 드래곤에게 잡아먹히게 되는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 이런 위기 속에서 라이오스는 하루라도 빨리 레드 드래곤에게서 파린을 되찾는 것을 최종 목표로 두고 모험을 계속하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궁 내에 존재하는 생물, 즉 마물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겠다는 라이오스의 생각은 작중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 정상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레드 드래곤을 무찌른 후, 자신의 동생을 잡아먹었던 ‘그 레드 드래곤’을 맛있게 요리해서 먹었다는 라이오스에게 경악 어린 시선을 보내는 장면도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작품 내에서 비정상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 라이오스에게 매력을 느꼈다. ‘마물을 먹어선 안 된다.’라는 금기를 깬 라이오스는 사회적인 규범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왜 나는 라이오스를 매력적으로 느꼈던 걸까? 그리고 어떻게 나는 이 작품을 매력적으로 느낌과 동시에 이 작품을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었던 걸까?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맞닿아있는 문제가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도덕적으로 어긋난 선택을 하곤 한다.”
위 문장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사람들은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보고 도덕적인 결함이 존재한다고 여기지만, 작품 속에서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는 캐릭터에게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미궁과 마물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속에 사는 우리에게 “인어의 꼬리는 물고기이니 먹어도 되는가, 먹어선 안 되는가.” 같은 논제거리는 현실적인 감각을 건드리지 않음과 동시에 작품에 빠져들게 한다.
즉, <던전밥>에 등장하는 ‘금기’라는 요소는 현실과 작품의 세계를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다소 매니악한 요소를 가볍게 즐길 수 있게 하는 전환점이 되어 준다.
“식사는 삶의 특권이야. 살기 위해서는 계속 먹어야 하지.”"하루 세 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제때 잠을 잔 우리가 너보다 훨씬 제정신이야!"- 만화 <던전밥> 中 일부 내용
라이오스는 결국 레드 드래곤을 무찔러 파린을 구함과 동시에 지하 미궁을 만든 최초의 마술사를 무찌른 후, 대륙의 왕이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작품의 전체적인 틀을 본다면 더할 나위 없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라이오스에겐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끝이었다.
라이오스는 마술사를 무찌르는 과정에서 그토록 좋아했던 마물들과 만나선 안 되는 저주에 걸렸으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했던 라이오스는 대륙의 왕이라는 지위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시원섭섭한 감정을 동반하는 것 같다. <던전밥>은 이 시원섭섭한 감정이 비교적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완벽함과 거리가 멀었던 주인공과 그 일행들은 모두가 비정상이라고 외치는 방법을 고수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 힘겨운 여정 끝에는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일들만 있지도 않았다.
삼시세끼를 함께했던 동료들과는 약속을 잡고 만나야 하는 사이가 되었으며, 그토록 좋아했던 것들은 이제 더이상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또다시 앞을 향해 나아간다. 마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쩌면 나는 완벽하지 않은 인물들의 결말을 지켜보면서 위로를 받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비정상적으로 보일지라도 내가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만을 믿고 나아가봐도 괜찮지 않을까. 이 만화처럼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결말을 맞이할지라도 내 마음을 지켜낸 지금의 기억과 함께라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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