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환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현대인이 선택하게 되는 것 [도서/문학]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도우리) 가 분석하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중독 문화의 맥락
글 입력 2024.10.3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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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자기 계발 담론), 배달 앱, 퍼블리, 방 꾸미기 행위/앱, 중고 거래, 카카오톡, 사주 풀이와 대안 종교, 데이트 매칭 플랫폼, 인스타그램이 화제성을 지닌 ‘트렌드’이자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문화 요소가 된 세상에서, 이러한 요소들을 어떤 키워드로 분류할 수 있을까? 한겨레에서 출판한 도우리 칼럼니스트의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2022)는 이것들을 플랫폼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맥락에서 분석한다. 이 책은 사회과학으로 분류할 수 있고, 문화에 대한 비평의 성격을 가진 에세이다. 저자는 제 3자의 ‘객관적’ 입장에서 논의하고 있는 대상과 ‘거리두기’하며 논지를 서술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며 주제를 전개하고 사회적인 현상을 분석한다. 왠지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학자가 사용했던 자기분석(auto analysis)이라는 사회학적 방법론이 연상된다.

 

또한 이 책은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하게 변한 후기 근대를 초기 근대와 비교 및 대조하며 여러 단면으로 분석한 울리히 벡이나 지그문트 바우만의 논의, 그리고 기존의 감정이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참고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정동’ 연구를 발전시키고 ‘행복’이 어떻게 시민권 차원에서 규율의 대상이 되고 통치술로 사용되는 것인지를 분석한 사라 아메드, 급변한 마케팅 패러다임 속에서 인플루언서의 특수한 지위와 역할을 논의한 <인플루언서>를 저술한 볼프강 M. 슈미트 같은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은 물론 구체적인 연구를 수행한 한국 학자들의 연구들을 폭넓게 인용하며 자신의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익숙한 취약성


 

이 책이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배달 플랫폼, 중고 거래 플랫폼, 쇼핑 플랫폼, SNS 등 플랫폼 자본주의의 부산물이자 이 체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하는 핵심 중추와 같다. 책 속에도 나오듯 현대인들이 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핸드폰에 많이 깔려 있는 앱들을 살펴보면서 쇼핑할 것을 고르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카톡’과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처럼 이러한 요소들은 이미 삶의 연결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 되어 버려서 쉽게 제거할 수 없다. 제거한다면 대인관계나 생계에 있어서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플랫폼에 대한 여러 연구가 그러하듯, 이들은 모두 기존의 ‘자본주의’ 담론으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에 서 있다. 생산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러한 효율과 생산력의 패러다임이 전통적인 ‘모던’한 방식과는 다르게 변해버렸다. 이 책에서 문제시하는 여러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다루는 플랫폼에 수반되는 여러 위험성처럼 플랫폼은 이용자에게 리스크(일종의 경제학적 외부효과로 볼 수도 있다)를 부과하며 (그 리스크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점도 중요하다), 오츠카 에이지가 <감정화하는 사회>에서 밝혔듯이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기업의 자본으로 환원하는 플랫폼 기업은 이용자의 잠재 의식 속에서 일종의 무상 노동을 수행하게 한다. 이용자들이 플랫폼 앱에서 행하는 모든 행동은 기업의 분석 대상이자 자본이 되어 전략에 반영된다. 플랫폼이 하나의 공간이라면, 기존에 공공의 영역이었던 부분이 시장적 사유화의 대상으로 바뀐 셈이다. 또한 자본가와 노동자가 불분명해진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서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기업가적 주체로 ‘계발’해야 하는 현실을 다룬 ‘갓생’ 챕터 역시 인상적이다.

 

또한 이 책은 이러한 사회 속에서 ‘청년’이라는 주제로 형성된 위기 담론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것들도 짚고 넘어간다. 데이팅 앱 속 여성은 남성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매력 자본’의 판단 기준은 젠더화된다. ‘랜선 사수’가 되어주는 직무 지식 제공 사이트에서 일반적으로 상상되는 ‘직무’에 필요한 역량은 화이트칼라 중심이고, 자기 자신을 일종의 인적 자원, ‘자본’으로 제조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과 정보는 계급적으로 불균등하다. 책에서 분석된 현상들이 말해주듯, 위기를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 속에서 사회적 마이너리티가 겪게 되는 취약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중독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 글을 읽으며 레이건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동을 연구한 사회학자 로란 벌렌트의 저서 <잔인한 낙관>에서 등장하는 ‘답보 상태’가 연상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초기) 근대 자본주의의 안정된 삶의 각본을 악화시키고 불평등을 심화시킨 신자유주의라는 배경 속에서 ‘좋은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위태로움(precariousness)이 사회를 잠식했고 그로 인해 사회 속 개인의 취약성이 증가했는데, 그는 이 시대적 맥락 속에서 개인이 취하게 되는 정동적 기제에 관심을 가졌다*. ‘답보 상태’란 그러한 상황에 완전히 순응하지도,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를 지칭할 때 사용되며, 이때 주체의 행동은 저항과 순응이라는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규범에 양가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모순적인 ‘답보 상태’라는 개념은 그 당시 미국과 현재 한국에 어느 정도의 시간적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산층과 청년의 프레카리아트화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서 이 책에 깔린 정서를 설명하는 것 같다. 실제로 흥미롭게도, <잔인한 낙관>이 예시로 삼는 ‘폭식’이라는 행위에 대한 서술과 한국인들이 배달 앱을 계속 찾는 행위에 대한 이 책의 설명은 어느 정도 유사하다. 배달앱, SNS, 꾸미기 등 현대인이 중독된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하면서도 ‘현타’를 맞는 것은 제한된 사회 조건 속에서 그러한 구조를 ‘트루먼쇼’의 결말처럼 나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규범에 완전히 충실하고 모범적인 시민-소비자라는 존재가 될 수도 없는 이들의 ‘선택권 없는 선택’과 그 결과이다. 공모자로 연루되고 동시에 피해자인 상태는 신자유주의 사회가 한 개인을 ‘작동’하게 하는 방식 아닐까?

 

책에 달린 추천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의 고민이나 문제의식은 놀랍도록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과 유사한 것 같다. ‘구조’와 개인이라는 사회학적 이중구조 속에서 자아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채 결국 그 사이 어딘가, 중독이라는 하나의 답보 상태로 귀결되는 것은 확실성을 보장하는 대안적 세계관을 모색하는 것에 지친 이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대인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을 골라 테마를 구성하면서, 구체적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깔린 주제와 정서는 같은 지점을 향해 있다.

 

 

 

그래서 앞으로 어쩌라고?


 

이러한 종류의 사회과학 책들의 후기를 찾아보다 보면, 저자가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려주지 않는다는 불만을 마주하고는 한다. (그렇게 문제 해결 방법이 쉬웠으면 진작에 해결되지 않았을까?) 혹은 현상에 대한 분석만 있고 그 결과나 미래에 대해서는 쉽게 예측하지 못하거나 모호한 예상만을 내놓는다는 이야기도 보인다. ‘현실 세계’의 레이어는 너무 복잡하고 다층적인데 모든 사람들이 믿을 만한 확실하고 단순한 세계관(예를 들어 여러 이념들)이 붕괴된 현재 사회로 인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이러한 세상 속에서 확실한 것에 대한 약속은 자기계발서 같은 체제순응적 방법론에 의한 것이거나 대안적 가치로서 저항담론을 의도했으나 망해버린 것(‘구조를 패야겠으니 거기서 나와주시겠습니까?’) 같은, 환상 속에서나 존재한다. (그리고 환상은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환상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책의 분석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인상적이다. 먼저 우리가 모두 중독자라는 일종의 공통감각 같은 것을 건드리는 것, 그리고 그 환경을 만드는 소비 생태계의 메커니즘을 들추어 내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낙관적 결말도, 확실한 정답도, 완전한 종착지도 없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문화 중독자(cultural dope)들을 위로하며 함께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할 뿐이다. '갓생' 챕터 마지막에서 밝혔듯이, 이 ‘실패한 상태’를 새롭게 전유할 가능성도 한 스푼 덤으로.

 

 

* 윤조원&박미선, 「옮긴이 해제 | 로런 벌렌트의 정동 이론」, 『잔인한 낙관』, 로런 벌렌트, 후마니타스, 윤조원&박미선 옮김,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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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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