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의 성소수자
<가자에서 온 여인 The Belle from Gaza>은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다.
텔아비브 하트누파 거리, 매춘하는 여성들이 지나가는 차량에 호객 행위를 한다. 그녀들의 상당수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텔아비브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유일하게 성소수자에 개방적인 커뮤니티를 가진 곳이다. 바깥에서 그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가정에서 환영받지 못하며, 심하면 친족살해를 당하거나 길거리에서 위협당한다.
그녀들은 살기 위해 텔아비브로 온다. 그러나, 그곳의 트랜스젠더 여성 쉼터에 머무는 이들은 매춘을 강요받는다. 그녀들은 결국 생계를 위해 길거리로 내몰린다.
그런 거리에서, 욜랜드 감독은 한 여인을 찾는다.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까지, 45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온 여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말이다.
욜랜드 감독을 이스라엘 거리로 안내한 이는 ‘탈린 아부 한나(Talleen Abu Hanna)’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스라엘인이자 팔레스타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만약 팔레스타인에서 자랐다면 게이로서도, 트랜스 젠더 여성으로서도 살아있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은 동성애가 금기시되기 때문이다.
경계의 교차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
혐오와 차별, 생존을 위한 탈출, 국경과 성의 경계선, 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들. 팔레스타인 출신 트랜스젠더 여성인 다니엘이 증언한다. ‘납치범들은 제게 서안 지구 검문소로 달려가라고 시켰어요. 그럼 이스라엘 경비들이 절 테러리스트라 여길거고, 쏴죽일 테니까요.’ 이중삼중으로 고립된 삶. 그녀들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차를 타고 하트누파 거리를 지나가는 한 남성은 그녀들의 처지를 무관심하게 비웃는다. ‘경찰이나 조심해.’
카메라는 그런 이들의 삶에 밀접하게 다가간다. 감독은 클로즈업 샷으로 이들의 얼굴과 표정 변화를 섬세하게 담는다. 몹시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렌즈를 통한 감독의 시선은 절대로 폭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녀들에게 인간다움과 친밀감을 불어넣는다.
소수자들에게 부족한 건 그런 시선이었다. 먼 거리에서의, 타자화된 동정이 아니라, 가까운 거리의 이웃, 네 이웃,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아멘.
생의 증명을 위한 사투
그렇게 카메라에 담긴 이들의 얼굴에는 혼란과 비극, 해학적 웃음, 삶에 대한 빛나는 찬가와 희망이 혼재되어 있다. 그들의 삶이 불쌍한가? 그들이 비참해 보이는가? 성소수자란 이유로, 영원히 비극 속에 놓인 채로 외롭게 죽어갈 것 같은가? 그녀들은 온몸으로 ‘아니’라고 말한다. 편견은 무지에서 비롯된 헛된 공포라는 걸, 감독은 스크린으로 직면시킨다.
스스로 원하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미소가 피어난다. 트랜스 수술에 대해 얘기하던, 베일을 쓴 여성이 행복에 가득 찬 얼굴로 말한다. “나는 빛날 거야.” 삶의 비극이 아무리 무릎을 꿇려도, 그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한 삶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살아간다.
이들을 고립시킨 것은 정체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을 보이지 않는 경계 지대에 밀어두고 외면하는 것은, 지역 사회와 국제 사회, 종교와 국경이다. 위태롭게 내몰린 좁은 경계 안에서도 이들은 ‘생존’함으로서 존재를 증명한다. ‘네가 나를 못 본 척해도 보란듯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로서 증명한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헤드윅이 외쳤듯이, “나를 부정하면 파멸하리라(Deny Me and be doomed).” 생의 증명을 위한 사투. 그것이 이들이 어두운 텔아비브 밤 거리에서 찬가를 부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