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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침범> 가족적 낙인, 반드시 묶여야만 하는 것.


 

['창조주여, 저를 흙으로 빚어 인간으로 만들라고 제가 요청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내 달라고 제가 애원이라도 했습니까?'] - 실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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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알잖아요. 내가 평범하지 않은 거."

 

"나는 고통이 좋아요. 고통을 느낄 때 제일 솔직해져. 그걸 볼 때 마음이 편안해요. 살아있는 것 같아."

 

그런 소현을 보고 누군가 말한다. 그 애는 악마라고.

 

영은은 참담하게 말한다. 소현이 들고 있던 식칼에 베여 피가 흐르는 손을 쥐고.

 

"지금은 소현이 곁을 떠날 수 없어."

 

소현은 통제불능의 존재다. 자식은 완벽히 부모의 통제 아래 놓여있는 존재가 아니다. 엄연히 다른 개체, 타인이다. 그러나 모두가 영은에게 엄마로서의 책임을 묻고 비난한다. 교회는 동네 커뮤니티를 휘어잡고, 영은과 소현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퍼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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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사랑스러워야 했을, 그랬어야만 할 내 자식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느껴진다면? "나 못하겠어." 영은이 울부짖는다. 본인이 만들어냈으나, 감당할 수 없었던 피조물을 붙잡고 함께 차가운 물 아래로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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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악행은 그토록 혐오스러운 고독을 내게 강요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오!"] - 프랑켄슈타인(1818), 메리 셜리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소현을 괴물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괴물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트라우마의 굴레로 회귀하는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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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진심일 리 없다. 믿었다가 또 버림받을까봐."

 

"니 애도 태어나봤자 불행할 텐데 그냥 여기서 싹 다 죽자."

 

한국적 가족: 이모-엄마-딸-언니-동생의 굴레로 회귀하는 것. 사적인 관계에서, 나이가 다른 한국 여성들의 관계는 대부분 그 굴레로 수렴하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이 영화의 인물들은 그렇다. 보장된, 안전한 친밀감의 울타리. 가족이라는 이름의 보호.

 

그러나 과연 우리 모두에게 ‘가족’은 언제나 ‘보호’와 동일한 의미였나?

 

트라우마와 불건강한 관계, 멋대로 기대하고 버려진 상처. 고독한 마음 속에 '가족'이라는 것은 이미 허울만 남겨진 울타리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영화 속 인물들은 그것을 욕망하고 재현한다. 어딘가 뒤틀린 구석을 감출 수 없는 채로.

 

영화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고독에 잠겨 죽는 것만이 괴물의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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