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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술관 책이 열어주는 그림의 뒷문 - 더 기묘한 미술관 [도서]

by 박주은 에디터
2024.10.14 09:25

 

 

미술관 책, 상상 속의 미술관


 

요새는 [더 기묘한 미술관]처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주는 책들이 참 좋다.

 

좋아하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책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혼자 미술관 책이라고 부르고 있다. 층고 높은 미술관을 설렁설렁 걸어가듯, 언뜻 보았을 때 “왜?”라는 의문을 던지곤 뒤돌아서게 만드는 작품들에 ‘이 그림에는 사실 이런 뒷이야기가 있어!’ 하고 살을 입혀주려는 작가들의 글쓰기가 참 따뜻하게 다가온다. 내가 좋아하는 변호사의 글쓰기다. 진병관 문화해설사의 글을 애정 있게 읽은 이유 중 하나다.

 

나름의 인생 경험이 쌓인 덕분일까, 이름을 들었을 때 대표작이 떠오르는 화가들이 몇몇(아쉽게도 한 손에 꼽히는 정도다) 생겼다. 미술관 책에 그런 화가들이 등장할 때면, 화가의 이름 뒤에 따라오는 작품명이 익숙하건 익숙하지 않건 나름의 재미가 있다. 같은 화가, 같은 작품의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쓰는 이마다 모두 다른 관점에서 제각기 다른 부분의 이야기를 조명하기 때문이다.

 

 

  

펠릭스 누스바움과 기억해야 할 역사


 

그중에서도 특히 펠릭스 누스바움의 이야기는 미술관 책에서 만날 때마다 깊은 인상이 남는다. 사실 역사책에서 만났더라도 그의 이야기는 강렬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누스바움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그의 이야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테다. 그럼에도 어떤 이야기꾼은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을, 다른 누군가는 [죽음의 승리]를 중심에 두고 그를 설명한다. 이는 단지 작품 선택의 차이일 때도 있지만, 때때로 이런 미묘한 차이가 예술가를 어떤 맥락에 놓고 설명하는지 또한 결정하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그의 예술학적인 발자취나 그와 가까운 관계였던 화가들, 그의 삶과 당대의 시대상이 소통하는 부분 같은 것들이 있다.

 

책은 [죽음의 승리]를 통해 누스바움의 작품이 가지는 역사적인 가치를 조명한다. 격동과 환란의 시대, 독일인이자 유대인으로 살아갔던 화가의 삶 자체가 우리가 기억해 마땅한 역사임을 조곤조곤한 글로 이야기한다. 그림과 설명을 찬찬히 넘기며 누스바움이 남긴 삶의 자취를 따라가 봤다. 역사 시간에 배웠던 세계 2차대전의 흐름이 그의 그림 [광란의 광장(1931)], [피난처(1939)],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1943)], [죽음의 승리(1944)] 속 그의 붓놀림으로 나타나 있었다.

 

나에겐 지나간 일이었을 참상을 살아낸 화가의 혼란과 절망, 체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단순히 익숙한 작품명이었던 ‘죽음의 승리’의 무게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듯하다.

 

 

 

카라바조와 인생의 테네브리즘


 

[더 기묘한 미술관]과 미묘한 운명이 있는 걸까?

 

시의적절하게도, 11월부터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시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마침 이 책을 읽고 있던 중이었다. 작품이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볼 사전 같은 책이 생긴다는 것 또한 미술관 책의 장점 중 하나다.

 

몇 년 전 운이 좋게 이탈리아에 가본 적이 있다. 수많은 예술품의 향연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난다. 좋았던 작품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긴 어렸던 나이라 선명하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켠 채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그림을 굉장히 오래 쳐다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옥 같은 인물들의 얼굴이 신비하게 다가왔었다. 진병관 문화해설가에 의하면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를 이용한 기법을 테네브리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짤막한 미술 상식을 하나 얻었다.

 

카라바조는 테네브리즘의 대표 주자 중 하나다. 신교와 구교가 신념을 두고 다투던 시절의 로마에서 활동해서일까? 그의 그림에서는 어딘가 신성한 분위기가 풍긴다. 빛의 대비를 극대화한 [성모의 죽음]이 특히 그렇다. 다른 그림들에는 아름답게 연출된 영화와 같은 극적인 느낌이, 종교화와 같은 엄숙한 그림엔 연극의 한순간 같은 느낌이 있다. 손에 잡히는 책에서 보고 있음에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그림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극적인 대비가 매력적인 그림을 따라간 걸까,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인생사 또한 빛과 어둠의 대비가 선명했다. 동명의 예술가 미켈란젤로에 비견될 정도의 인기를 누렸던 한때가 지나, 가톨릭교와 반목하게 된 [성모의 죽음]을 계기로 괴팍한 성격을 조절하지 못해 그림자 속에서 살아갔던 카라바조는 자화상인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남기고 사망한다.

 

 

 

그림 뒤의 사람과 가까워지기


 

극적인 예술가들의 삶을 읽을수록 이야기의 힘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림만을 보았을 때 얻는 감동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역시 작품과 이야기를 연결 짓는 순간 찾아오는 것 같다. 예술은 결국 사람의 일이기에, 모든 작품은 만든 이의 역사를 담는다. 누스바움과 카라바조가 살았던 시대가 그들 그림의 큰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말이다.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작품뿐만이 아니라 작가와도 가까워진다.

 

숨겨진 이야기의 조각을 풀어내는 책 [더 기묘한 미술관] 덕에 상상 속의 미술관에서 오래도록 그림 앞에 머물러 보았다. 언제든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갈 수 있는 미술관이 곁에 있다는 건 든든한 일이다. 작가 진병관이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가 듣고 싶을 때, 언제든 이 책을 다시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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