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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은 인간과 뗄 수 없다. <로봇 드림>은 언제나 외로움과 함께하는 인간의 모습을 강아지 도그를 통해 보여준다. 혼자 사는 도그는 우연히 외로움을 채워 줄 수 있다는 로봇 광고를 본 후, 로봇을 구매한다. 그렇게 도그는 로봇과 친구처럼, 연인처럼, 추억을 만들어 나간다.
특히, 도그와 로봇이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씬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고 뭉클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좋았던 때도 잠시, 도그와 로봇은 함께 간 해변에서 로봇의 고장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된다.
도그는 로봇과 재회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노력하지만, 결국 로봇을 데려오지 못한다. 영화의 구조상, 둘의 이별은 꽤 초반에 발생하는데, 이는 모든 행복했던 순간은 마치 찰나처럼 빠르게 흘러가 버리는 인생의 한순간과도 같이 느껴진다.
도그와 로봇의 이별 후, 둘은 각자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되고, 그에 따른 관계를 맺기도 한다. 로봇은 꽤 오랫동안 도그를 그리워하는 듯 보인다. 영화의 제목처럼 로봇은 계속해서 도그와 재회하는 꿈을 꾸고, 도그에게 향한다. 도그 또한, 로봇을 그리워하긴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고독을 채우기 위해 친구 사귀기를 목적으로 스키캠프를 가기도 하고, 연을 날리며 새로운 친구 ‘덕’을 사귀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의 차이는 로봇이 움직이지 못한 채로 해변에 묶여있는 신세라는 점도 있겠지만, 로봇이 처음으로 눈을 뜨고 마주한 존재가 도그이기에 로봇의 세상은 도그로 가득하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씁쓸한 차이지만 어쩌겠는가. 그 또한 의지로 통제할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시종일관 도그를 그리워하던 로봇은 새(鳥) 가족과 만남 이후, 조금씩 변화를 맞이한다. 처음으로 로봇은 도그 외의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어미 새는 로봇의 품이 둥지를 틀기에 적당한 장소라 판단하여 찾아온다. 그리하여 새끼 세 마리가 태어나게되고, 어미 새가 없을 때는 로봇이 대신 새끼들을 보살펴주기도 한다.
특히, 로봇은 가장 성장 속도가 느렸던 막내 새에게 다정을 보여준다. 시간이 흘러 새끼들은 어엿하게 성장하여 어미 새와 함께 떠나게 되는데, 막내 새는 쉽사리 로봇을 떠나지 못하고, 로봇을 꽤 오래 껴안은 후, 떠난다.
로봇과 막내 새의 이별은 마치 로봇과 도그의 어찌할 수 없었던 이별의 축소판과도 같다. 한쪽이 잘못하여 깨어진 관계가 아닌, 그저 둘에게 닥쳐온 이별. 로봇은 새 가족과의 이별에서 크게 슬퍼하지도, 요동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그 순간을 받아들인다. 로봇은 새 가족과 만남의 과정을 통해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자연스레 학습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도그는 로봇을 찾으러 다시 해변을 찾아가지만, 이미 고물상에 팔려 가버린 로봇과 만날 순 없었다. 도그는 로봇과의 이별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도, 고독은 언제나 해결할 수 없는 숙제였다. 그렇게 도그는 새로운 친구 로봇을 들이게 된다. 로봇은 고물상에 들린 라스칼에 의해 발견되고 새롭게 개조되어, 두 번째 삶을 시작한다.
로봇은 도그에게, 도그는 로봇에게 배운 것을 새롭게 시작한 소중한 관계에 적용하여 “더 좋은 나”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로봇은 손을 힘주어 꽉 잡으면 상대가 아파한다는 것을 도그에게서 배웠기에 라스칼의 손을 가볍게 잡고, 도그는 로봇에게 바닷물은 최악이라는 것을 로봇과 기나긴 이별을 통해 배웠다.
그리하여 새로운 친구 로봇을 바닷물과 닿지 못하게 보호한다. 로봇과 도그는 물리적으론 함께하진 않지만, 서로에게 배운 모든 것을 지닌 채 성장한 것이다.
영화의 엔딩씬에서 로봇은 새로운 친구 로봇과 함께 있는 도그를 우연히 보게 된다. 로봇은 잠시 도그를 향해 달려가는 상상을 해보지만, 현재 도그와 함께 하는 새로운 로봇과 자신의 곁에 있는 라스칼을 떠올리며 상상에서 빠져나온다.
그 대신 로봇은 도그와의 추억을 기분 좋게 회상하듯 둘의 추억이 담긴 ‘September’를 재생한다. 로봇은 마치 도그와 함께 춤을 추었던 그때처럼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도그 또한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모를 노랫소리에서 ‘September’의 춤사위를 기억하곤 춤을 춘다. 이때 화면은 이분할 되고, 도그와 로봇이 함께 춤을 추는 듯한 연출이 시작된다.
노래는 추억을 품고 있고, 쉽게 기억에 스며들기에 로봇과 도그의 관계는 ‘September’에 스며들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둘은 언제, 어디에서든 ‘September’를 들으면, 함께 있어 행복했던 그날이 떠오를 것이다.
도그의 새로운 친구 로봇은 도그의 춤사위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곧이어 도그를 따라 함께 춤을 춘다. 로봇은 라스칼의 최애 곡인 ‘Happy’를 이어 재생한다. 그렇게 도그와 로봇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옆에 있는 자와 함께 현재를 만끽한다.
모든 인간은 기억과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 인간에게 추억과 기억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추억은 돌이켜 볼수록 우리를 아프게 하기도 하고, 그 순간이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또, 기억은 인간의 고독을 잠시 치료해 주기도 한다. 오래 기억에 남아, 추억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순간을 사랑했고, 행복했었단 의미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끝난 관계는 언제 어디서든 우릴 쿡쿡 찌르지만, 그 관계를 추억할 수 있기에 끝이 어디인지 모를 인생을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외로움은 또 언제든 우릴 찾아와 괴롭히겠지만, 추억이 함께 하니 괜찮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 속 테이프를 돌리면 언제든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