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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송곳니를 뺄 의지 [영화]

by 이선주 에디터
2024.08.17 19:45

 

 

넓은 저택에 사는 남매들이 있다. 이들은 라디오를 통해 누군가의 녹음된 목소리를 듣고 단어를 배워나간다. 남매들은 어린아이가 아닌 이미 거의 성장한 성인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단어 교육을 받는 모습은 의아한 부분이다. 또한, 이들의 단어 교육은 모두 현실에서 사용되는 단어와 다른 뜻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남매들은 이러한 오류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한평생 수영장이 딸린 저택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나갈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이들의 부모는 세상 밖의 험한 것들에 아이들을 노출할 수 없단 명목으로 남매들을 옥죈다. 물론 이 또한 남매들은 그들 자신의 목이 졸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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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밖으론 한 발짝도 못 떼는 남매들은 모형 장난감 비행기가 문밖으로 떨어져도 그 누구도 선뜻 주워 오지 못한다. 이 가정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는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장성한 막내아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바깥세상 여성을 데려와 돈을 주고 짝지어 준다는 것이다.

 

물론, 남매들이 이 여성을 통해 바깥세상의 것들과 접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남매와의 일대일 접촉을 제한한다. 성적 접촉과 일대일 교류 같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개인적인 행위가 모두 부모의 통제 아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는 물론이거니와 남매들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활동할 수 있는 모든 지점에서 억압받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송곳니>가 보여주는 이 비정상적인 가정은 마치 독재 사회를 우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강력한 가부장적 권력이 지배하고 있는 이 가정은 남매들이 가끔 부모의 말을 거스를 때마다 처벌로서의 폭력을 당한다. 반대로, 부모의 말을 잘 듣는 만큼 개인별 상점과도 같은 스티커를 부여함으로써 가장 스티커를 많이 모은 한 명에게 놀이 시간에 무엇을 할지 정할 수 있는 특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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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특권 또한 바깥세상의 시선으로 본다면 보잘것없다.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면 아버지는 팝송 LP를 틀어 전혀 다른 가사로 해석해 주고, 비디오를 보자고 하면 과거 가족이 함께 찍은 홈 비디오를 볼 뿐이다. 남매들은 이러한 활동 하나에도 즐거워하는데, 이는 오랜 세뇌를 통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남매들이 받는 단어 교육으로 돌아가 보자. 이 가정에서 아버지가 독재자로 은유 되고 있다면, 단어 교육은 마치 독재자의 오른팔과도 같은 언론일 것이다. 공정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책임을 진 언론은 정부의 말을 받아 말하는 앵무새처럼 틀린 정보도 필터링하지 않은 채 남매에게 주입한다. 오랜 세월 동안 이토록 비정상적인 환경 아래 있었던 남매들은 문제를 제기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세상의 전부이며, 옳은 것이라 굳게 믿고 있기에 당연한 결과다.


첫째 딸은 송곳니가 빠지면 독립할 능력이 주어진다는 부모의 말을 믿으며 기대하지만, 송곳니가 빠질 리는 없다. 그리하여 첫째는 자신이 독립하여 세상 밖으로 나갈 능력이 갖춰졌다고 믿으며 자신의 송곳니를 물리적 힘을 가하여 빼버린다. 피를 철철 흘리며 자신의 송곳니를 가격하는 첫째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여야만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다는 데미안 속 한 구절을 상기시킨다.

 

첫째는 빠진 송곳니를 세면대에 보란 듯이 두고 아버지의 차 트렁크 속으로 숨어든다. 첫째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혼비백산이 된 것도 잠시, 해가 떠오르자 아버지는 출근하며 평상시와 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첫째가 자신의 차 트렁크에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주차를 하고 공장으로 들어가 버리지만 카메라는 여전히 트렁크만을 비춘다.


“어른 됨”을 입증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자신을 내던진 첫째가 트렁크를 들어 올리는 순간, 펼쳐질 바깥세상의 광경은 환희보단 충격과 고통에 더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평생에 걸친 세뇌와 억압으로도 막을 수 없던 것은 성장이었고, 이 성장은 마치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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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매사 모든 것을 결정해 주던 부모를 벗어나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해야 하며, 아주 작은 단위의 선택까지 스스로 행해야만 할 것이다. 사소한 부분마저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첫째의 삶은 분명 고통으로 가득하겠지만 그 또한 성장통의 일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첫째의 선택은 희망의 불꽃과도 같다.


첫째가 둘째와 막내와 다른 점은 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걸음을 떼었다는 데 있다. 오늘날 이미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을까? 또한 민주주의를 넘어선 공동체의 성장은 이루어지고 있는가? 피범벅이 될 만큼의 고통을 수반하여 송곳니를 뺄 의지와 용기가 나에게 있는지, 우리 사회는 가졌는지 자문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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