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뉴질랜드 여행 기록 - 다섯. 크라이스트처치와 회복탄력성 [여행]

폐허가 된 과거를 안고 미래로 도약하는 도시의 근력
글 입력 2024.11.0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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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남섬의 최대 도시, 크라이스트처치를 볼 때 사람들은 무엇을 주로 생각할까?

 

도시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느끼게 되겠지만, 크라이스트처치는 여타 뉴질랜드의 도시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대도시다. 동네의 구석에서 거리 예술가들의 작품(주로 그라피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술가의 도시, 작은 기념품 가게와 중고 서점이 귀여운 관광 도시, 중심부에 커다란 식물원을 품고 있는 자연 친화 도시, 그리고 높다란 회사 빌딩들이 들어선 상업 도시. 고작 이틀 정도 둘러본 내가 느꼈던 감상조차 이리 다면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크라이스트처치는 팔방미인의 매력을 뽐내는 근사한 복합 도시라는 걸 알 수 있다. 거리를 구경하는 매 순간이 진심으로 즐거웠다.

 

그럼에도, 앞으로 내가 이 도시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이미지는 상술한 것들이 아닌 ‘회복탄력성’이다.

 

Quake City라는 아주 특별한 박물관 덕분이다. Quake City 없이 구경했더라면 아쉬움과 의문이 남았을 텐데, 흥미로운 전시 덕분에 도시의 이면을 만났다.

 

여행에 있어서마저 꼼꼼하지 못한 탓에 계획 없이 걷기 시작한 내 눈에 몇몇 공사 현장이 눈에 띄었다. 단순히 “미술관! 식물원! 도시 구경!” 세 마디 정도만 생각하고 도착한 크라이스트처치. 크라이스트처치의 식물원은 뉴질랜드에서 본 것 중에 가장 멋졌고, 노면전차가 지나다니는 도시의 풍경은 환상적으로 생경했지만, 식물원 가장자리의 캔터베리 박물관 재건 공사 현장과 도시 중앙의 크라이스트처치 성당 공사 현장엔 딱 집어 부르기 뭐한 어둑함이 있었다.

 

나름의 사전 조사를 위해 찾아보았던 여행 후기들이 떠올랐다. 요 몇 년 사이, 특히 2010년대의 뉴질랜드 여행 블로그들을 찾아보면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라는 후기가 많다. 도시가 아직도 회복 중이며, 도시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눈치가 보였다는 것이다. 최근까지도 사람들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2010-2011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때문이다. 진도 6이 넘는 강력한 지진은 도심과 교외 지역을 말 그대로 짓밟았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도시의 기능은 마비됐다.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남섬의 대도시는 대지진의 상처를 안고 있다.

 

Quake City에서 만난 크라이스트처치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이 아니었다면 나 또한 그저 얌전히 실망하고 떠나갔을 테다. Quake City, 흔들리는 도시라는 뜻의 박물관은 2010-11 크라이스트처치 지진의 진원지와 지진의 발생 과정에서부터 지진을 겪은 시민들의 증언, 구조에 참여한 단체와 국가들에 대한 감사 인사까지 잊지 않고 기록하여 전시한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지진 직후 인터뷰를 했던 시민들의 10년 후를 인터뷰한 후속 인터뷰였다. 누군가는 도시를 떠났고, 누군가는 남았다. 지진을 대비해 들어 두었던 보험에 큰 덕을 보았던 시민이 누군가의 만약을 위한 보험 설계사가 되었다는 후속 인터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 아름다운 회색 도시가 더 반짝거리는 것만 같았다. 크라이스트처치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서로를 돕고 자신을 돕는 시민들의 선한 의지로 사람들은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왔고, 2024년의 여름 끝자락, 지진의 상처는 흉터와 함께 아물어있었다. 지진으로 흔들렸던 크라이스트처치의 상수도 수질은 여전히 논란거리고, 크라이스트처치 성당은 재건될 만큼의 자금이 모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크라이스트처치 사람들은 그들의 슬픔과 상실을 기록했다. 그것이 마치 이 도시가 아픔을 수용하는 방법이라는 듯, Quake City라는 박물관을 만들어 그날로부터 이어진 이야기를 방문객들에게 전한다. 내가 여행한 이 도시는 좌충우돌을 넘어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지진 이전으로 회귀하고자 하지 않는다. 시민들은 지진 이후의, 상처를 안고 다시 도약하는 사회를 그린다. 상처를 끌어안는 포용력과 다시 앞으로 나아갈 근력. 도시 곳곳에서 생동감 있는 억척스러움이 느껴지는 남섬의 명실상부한 대도시, 크라이스트처치는 매력적인 회복탄력성 도시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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