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도서 하나를 추천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읽기 어려운 내용도, 교훈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꽤 외로웠던 시절을 버티게 해주었던 책이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깔깔거리며 웃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책 제목은 “구경하는 들러리양”이다. 이 책은 흔한 빙의 소재를 기반으로 하되 빙의 소재 작품이 갖는 클리셰에서 일부분 벗어난 전개가 가장 큰 특징이다. 작가는 엘리아냥으로, 책 내용은 다음과 같다.
![[크기변환]들러리[꾸미기].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09/20240929145338_gktpmsih.jpg)
"현실에 치여 사는 스물다섯 학원 강사 김혜정! 그런데 즐겨 읽던 소설 야수의 꽃 세계로 떨어져 소설 속 인물 ‘라테 엑트리’가 된다.…그런데 기왕 들어오게 해줄 거 소설 속 세 미남 황자 론드미오, 최연소 공작 케니스, 마탑의 주인 아윈과 썸 좀 타는 주인공이 되게 해주지. 여주인공을 괴롭히다 털릴 예정의 조연 라테 엑트리가 되어버리다니! 에휴~ 그러면 그렇지 내 팔자야. 현실에서 워낙 시달리고 순응하며 살아와서일까? 혜정, 하니 소설 속의 라테는 결심한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구경이나 하자! 어차피 소설 보는 재미로 살아왔던 인생! 소설이 눈앞에서 실현된다는데 어찌 마다하겠는가! 팝콘이나 먹으며 구경하지 뭐. 와작! 그런데 조연이었던 라테는 오히려 소설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점점 내보이게 되는데…? 소설 속의 들러리양의 파란만장한 구경기가 시작된다!" (출처: 인터넷 소설 소개글)
이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책 속 주인공을 제외한 조연의 이름에서 조연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연 중 방앗간 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 같은 아들은 챔시이고, 피아노를 잘 쳐 손가락이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소녀의 이름은 핑거즈 플라이, 뻔뻔한 철 같은 정신력을 가진 사람의 이름은 아이언 멘타르, 케니스에게 달라붙던 미친 스토커 귀족 영애 이름은 지러브 크레이, 반납 좀 잘하라는 사서의 이름은 반나브 좀자레, 악녀의 끄나풀 짓을 다 티 나게 한 여성의 이름은 크나푸르 다티나, 엑트리 가문의 요리사는 드푸, 음유시인의 이름은 드러라, 황태자한테 껌뻑 죽던 단역은 바수니아 등 이름에서 조연의 성격을 미리 알 수 있다는 점이 소설을 읽으며 큰 감초 역할을 해주었다.
다른 빙의 소재의 소설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주인공의 서사를 강조하기 위해 등장하거나, 혹은 작품의 세계관을 공고히 세우기 위한 배경 정도, 그것도 아니라면 주인공에게 반하는 역할로 등장했기에, 그들의 역할은 주로 주인공을 돕거나 주인공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거나 주인공의 적대세력이 되어 주인공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이 전부였다. 그러나 “구경하는 들러리양”은 수많은 조연에게도 조연의 성격과 상황에 맞는 이름을 붙여주어, 새로운 조연이 등장할 때마다 독자로 하여금 조연을 주인공을 위한 수단이 아닌 한 인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그리고 몇몇 조연은 다른 소설에서도 그런 것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소설과 가장 달랐던 점은, 다른 소설에서는 조연의 반복 등장이 “얘 왜 또 나와. 아 작가가 내용을 또 질질 끄네.”라고 생각하게 했다면, “구경하는 들러리양”에서는 “어 이 사람 전에 음유시인이었었지.”라고 생각하게 해, 내적 친밀감이 형성되는 기분으로 소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게 외로웠던 시절 나에게는, 작은 위로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주인공을 위한 조연이 아닌 조연 그 자체의 조연이라는 점이 이상하게 참 좋았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점 두 번째는 전개다. 보통 흔한 빙의 소재의 작품은 여러 고정적인 전개구조가 있다. 예컨대, 빙의 소재는 어떤 역할에 빙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크게 빙의 되는 인물로는 주인공, 악녀, 혹은 엑스트라 정도로 나뉜다.
그러나 전개는 대부분 비슷하다. 주인공에게 빙의 된 경우는 빙의한 사람이 주인공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아 포기하려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물의 관심을 사게 되고, 주인공은 그런 삶에서 벗어나려다가 남자주인공의 애를 타게 하는 전개가 진행된다. 악녀에 빙의 된 경우는 빙의한 사람이 악녀에서 벗어나 죽임을 당하는 마무리를 피하려고 하다가 남자주인공을 길들여서 남자주인공이 빙의한 사람에게 집착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빙의한 사람은 모든 소설 내용을 알고 있으니 소설 속 여러 일을 예견하고 해결해서 성녀로 취급받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엑스트라에 빙의하면, 주로 그 엑스트라는 남자주인공에게 죽임을 당하는 엑스트라인 경우가 많기에, 남자주인공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다고 하며 빙의한 사람이 움직이다가, 그 과정에서 남자주인공에게 여러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을 해 남자주인공에게 사랑을 받고, 그 과정에서 다시 많은 인물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여겨지는 전개가 진행된다.
나는 이러한 고정적인 전개를 볼 때마다, 주인공이 빙의했다는 이유로 소설 속 원래 빙의 된 인물에게는 관심이 없던 주인공, 조연이 모두 한순간에 돌변해서 빙의한 인물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영별로라고 생각했다. 말이 되느냐는 소설이니까 차치한다고 치더라도, 주인공이 빙의하기 전까지는 사랑받지 못하던 인물이 주인공의 빙의 했다는 이유로 모든 사랑을 받는다면, 그건 곧 주인공이 빙의하기 전까지의 인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람이라는 말이지 않은가. 그래서 소설에서 주인공이 빙의하고 나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때쯤, 나는 늘 조용히 읽기를 중단하곤 했다.
![[꾸미기][크기변환]img.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09/20240929145707_doqbvofh.jpg)
물론 “구경하는 들러리양”도 엑스트라에 빙의한 주인공이 남자주인공 중 한 명의 사랑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비교적 빙의 소재 소설에서 여자주인공의 엄청난 지혜와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구경하는 들러리양”에서 주인공이 빙의한 라테는 추녀에 가깝게 묘사되고, 라테와 나중에 이어지는 남자주인공은 자아를 찾아서 능동적으로 라테와 이어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렇기에 독자로 하여금, 억지사랑이 아닌 그들이 노력해서 이룬 사랑으로 여겨지게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이 외에도 빙의한 주인공이 처음에는 여타 소설처럼 열심히 소설 속에 개입하려고 하였으나 들러리로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설정도, 주인공이 빙의한 소설 속 원래 여자주인공도 능동적으로 변해서 자아를 찾은 것처럼 묘사된다는 점도 모두 좋았지만, 크게 꼽자면 위의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흔한 빙의 소재 소설에 지쳤거나, 모든 등장인물이 결국 주인공을 빛내기 위한 장치로 가득한 소설에 지친 사람에게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외롭고 쓸쓸하던 시절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소설이기에,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은 사람도, 자신의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