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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쓸 글은 장난스러운 키스 love in tokyo, 일명 장키 일드를 추천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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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스런 키스는 여러 국가에서 영화든 드라마든 다양한 장르로 대중에게 선보여졌지만, 원작은 일본 만화이다. 만화가 발매된 시기가 지금보다 훨씬 옛날이고, 당시 일본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잘 담겨있는 만화라 구시대적인 만화라는 평가도 받지만, 나는 좋아하는 만화이다. 만화를 좋아하다 보니, 만화를 최대한 그대로 재현해 놓은 일본 드라마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장난스런 키스하면 대만 영화 버전이 가장 유명할 것 같은데, 사실 나는 장난스런 키스의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남자주인공인 이리에가 개념을 찾은 것 같은 대만 버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장난스런 키스 원작 만화를 보면 이리에가 정말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마지막 권까지 늘 푸른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고 항상 소갈머리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실사화한 작품 중 이러한 이리에의 성격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장난스런 키스 일본 드라마 버전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장난스런 키스 원작이 재미있는 이유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다르다는 점과 밝고 명랑한 여자 주인공이 정말 잘나고 잘생기고 멋진 남자 주인공을 좋아하지만, 남자 주인공은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자 주인공인 코토코는 만화에서는 엄청난 미녀도 아니고, 공부는 매우 못하고, 그저 성격이 밝고 명랑한 사람으로 묘사될 뿐이다. 이와 달리, 남자주인공인 이리에는 만화에서 아주 잘생겼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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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식의 잘난 남자 주인공이 평범한 여자 주인공을 좋아하게 되는 구도의 만화나 영화, 드라마, 소설은 정말 흔하다. 그래서 흔히들 여성향 작품이라고 하면 이러한 내용의 소재를 떠올리곤 한다. 이런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의 성격에 빠져서 평범하지만 특별한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는데, 이런 작품은 개연성이 엄청나게 뛰어나지 않은 이상 비현실적인 내용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사실 현실에서는 예쁘고 잘나면서도 성격 좋은 인물들이 많으니까, 굳이 잘생기고 잘난 남자 주인공이 평범한 여자 주인공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느껴져 공감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장난스런 키스는 좀 다르다. 이리에와 코토코의 이야기를 쭉 따라가다 보면, 이리에가 코토코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아주 명확해진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래서 다른 일본 만화에 비해 이 작품은 비교적 현실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을 보면서 든 가장 큰 생각은 코토코는 이리에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 같은데(실제로 코토코를 많이 사랑하던 킨노가 있었으니까) 이리에는 코토코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잘 살 수는 있었겠지만, 행복하게는 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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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생각의 연유는 두 캐릭터의 성격 차이인데, 코토코는 생각이 밝고 긍정적이지만, 이리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쪽에 가깝다. 그리고 코토코는 쉽게 감정을 표현하는 반면, 이리에는 어떤 일이 되었든 자신의 감정을 숨겨버리는 데 익숙하다. 코토코는 누구에게나 약점이 공개되어 있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이리에는 누구에게나 약점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기에, 약점을 공개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한심하게 여긴다. 한 마디로 코토코는 자신을 옥죄면서 살지 않지만, 이리에는 가족들 앞에서조차 자신을 옥죄면서 살아가는 유형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리에는 자신을 화나게 하고,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코토코 옆에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이리에가 코토코 앞에서 모든 것을 다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코토코가 그만큼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코토코는 여러 면에서 부족하지만, 사람을 대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누구보다 큰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리에는 어쩌면 내가 얼마나 망가지던, 코토코 앞에서는 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가면서부터 코토코를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닐까 예측해볼 수 있다.


실제로 이리에가 작품에서 “나는 코토코 앞에서만 나로 있을 수 있어.”라고 말한 바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오히려 이 작품에서 사랑이 간절했던 사람은 이리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앞서 말한 인기 있는 소재가 사용된 작품에 비해 훨씬 둘의 사랑을 공감하며 볼 수 있다. 보다 보면, “이리에 이 자식, 잘난 것도 부러운데, 코토코 같은 사람이 곁에 있는 것도 부럽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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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만화 작가가 집에서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원고가 완전히 원작 작가의 손에서 마무리되지 못해, 급하게 보조 작가가 마무리하였다는 점이 굉장히 아쉽고, 만약 살아 있었다면, 그 후에 또 어떤 이야기가 연재되었을지(코난을 보면 장수연재야 가능했을 것도 같으니) 굉장히 궁금하지만, 또 그래서 더 기억에 깊게 남은 작품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코토코를 굉장히 민폐라고 표현하고, 또 누군가는 남자 주인공이 인성이 너무 안 좋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굉장히 좋아한다. 이 작품이 재밌는 점은 누군가는 작품을 싫어하는 그 이유가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이유가 된다는 점이다.


가끔, 이맘때가 되면, 장난스런 키스가 떠오른다. 코토코와 이리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그들이 부디 그들답게 잘살고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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