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두에게 전하는 위로 -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따스함으로 가득한
글 입력 2024.05.1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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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아침, 평소처럼 잠에서 깨지만 눈꺼풀이 생각보다 더 무겁다. 몸도 평소보다 더 묵직하게 느껴진다. 애써 몸을 일으켜 세수하고 매일 같은 하루를 시작하는데, 오늘따라 바깥으로 향하는 발길이 무겁다. 가까스로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서 평소 걷던 길을 따라 다리를 건너지만 이내 멈춰서고 만다.

 

아, 오늘은 매일 같지 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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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이즈카'가 회사를 그만두던 날의 아침은 저렇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야근투성이에 혼만 나기 일쑤였던 회사에서 겨우 버텨내던 마음속 촛불이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꺼져 버린 아침. 만약 내가 사라져도 세상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고 돌아갈 텐데. 매일 건너던 다리 위에서 이이즈카는 생각한다.


그렇게 회사로부터 도망쳐 찾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도 이이즈카는 무례한 손님을 대하며 주눅 들고, 친근하게 말을 걸어 오는 동료에게도 낯을 가리며 쉽게 친해지지 못한다. 사람들을 자꾸 화나게 만드는 것 같은 나, 자기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은 나를 생각하는 이이즈카의 어깨는 한없이 작고, 움츠러들어 있다. 나사가 빠지며 어긋난 자취방의 커튼레일처럼 어느 순간부터인가 삶이 어긋나 버린 듯하다. 그는 자신이 딛고 서 있는 어떤 공간에서조차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불안정함을 영화에서는 빈 화면으로 보여준다. 꽤 많은 순간, 이이즈카가 지나가고 난 이후에 비어 버린 배경을 카메라는 오랫동안 비추고 있다. 주인공이 없어진 배경에 주목하는 스크린을 바라보다 보면, 그도 단순히 지나가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의 시작을 알렸던 이이즈카의 말처럼, 그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알려준다.

 

말 없는 스크린을 통해 소외감이 시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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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친구였던 '오오토모'와의 만남은 그런 이이즈카에게 작은 변화의 시작이다.

 

처음엔 고향에 자신의 변변찮은 근황이 알려질까 오오토모를 꺼리던 이이즈카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오며 관심을 보여주는 오오토모에게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어렵게 털어놓은 속마음에 모두가 항상 맞는 길을 걸어갈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니겠냐고 위로하는 친구에게 이이즈카는 후련함을 느낀다.


그 순간, 스크린이 비추는 것은 이이즈카가 없는 텅 빈 배경이 아니다. 이이즈카가 존재하는 그 공간 그대로 화면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다음 장면으로 전환된다. 이이즈카가, 그리고 관객이 느꼈던 소외감이 따뜻하게 해소된다.


이 영화의 백미라고 느껴지는 마지막 부분에, 이이즈카의 생활은 영화의 시작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여전히 편의점 사장님의 대타 요청은 거절하기 어렵고, 큰마음 먹고 시작한 요리는 텅 빈 간장통과 함께 결국 레토르트 카레로 마무리되어 버린다.

 

하지만 고쳐 달은 커튼레일에서 두꺼운 커튼은 한쪽으로 걷어내고 얇은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받는 그의 표정은 훨씬 편안하다. 숨듯이 이불에 들어가 있던 그는 이제 햇살을 한 몸에 받으며 바닥에 누워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아침이 오면 공허해졌던 이이즈카가, 그럼에도 매일 아침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자신을 다시 기특하게 여기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스스로의 아침을 떠올렸을 것이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버티지, 생각하며 시작하는 아침을. 이 영화는 그런 모든 사람을 위로하는 영화다.

 

너무 눈부시지도 않지만 적당히 따뜻한 커튼 너머의 햇빛처럼, 적절한 온도의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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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후의 삶은 마지막 장면의 이이즈카처럼 평소와 다르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쪽에 자리 잡은 따스함은 누군가가 하루를, 또는 이틀을 더 버틸 힘을 줄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수많은 이이즈카에게 이 영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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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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