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방인이 되어보는 경험 [미술/전시]

이경준 작가의 첫 사진전, < ONE STEP AWAY >
글 입력 2024.03.0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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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같은 삶을 꿈 꾼 적이 있는가? 대부분은 다소 생뚱맞은 질문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타국에서 배척당하고 차별받은 수많은 이민자를 떠올리며 고개를 열심히 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꿈 꾼 적이 있다! 단순히 언젠가 읽은 알베르 카뮈나, 어제까지도 들은 이센스의 앨범이 멋져서 이러는 건 아니다. 그저 아무도 날 모르는 장소에 존재하고 싶었고, 나를 제외한 거대한 세상이 움직이고 있음을 철저히 느끼고 싶었고, 내가 느끼는 지독한 감정과 감각들에서 잠시 소외되고 싶었다. 이 세상과는 상관없는 사람인 것처럼, 잠시 머물다 갈 무언가를 바라보는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감히 이경준 작가의 첫 사진전 < One Step Away >에서 그런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서울역 인근에 새로이 개관한 그라운드 시소 센트럴에 발을 내딛는 순간, 뉴욕 도시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방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 1 PAUSED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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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건물 숲 사이사이를 거느리며 도시 자체를 새삼스레 느끼다 보면, 건물과 빛의 관계성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 펼쳐진다. 무채색의 건물들이 햇볕을 머금으며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다 해가 지면, 그에 보답하듯 깜깜한 밤하늘을 배경 삼아 저마다의 불빛을 뿜어낸다.

 

차갑게 고정된 건물들, 그리고 그들을 쬐어주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태양. 쓸쓸한 따듯함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히 이 둘의 상호작용 때문일 것이다. 그 관계성에 집중하여 건물 창 하나하나를 몰래 들여다보고 햇빛의 색깔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건물들이 딱딱하거나 차가워 보이기는커녕 말랑말랑한 푸딩같이 보이기도 한다.

 

 

 

# 2 MIND RE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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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자체가 지닌 기하학적인 패턴들에 집중한다. 평행과 직각,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도시.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점의 모습으로 포착한다. 버드아이뷰로 대상을 평면화하고 좌표화 시키는 관점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한 명 한 명, 한 점 한 점을 호기심 있게 지긋이 바라보다 보면 각 점들의 입체성이 보인다. 갑작스레 점들이 3차원으로 툭 툭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점들에게도 각자만의 삶이 있으니 말이다.

 

루프탑에서 혼자만의 휴식을 만끽할 때도, 친구들과 파티를 즐길 때도, 심지어는 횡단보도를 지나갈 때도. 사실 우리는 모두 도시를 무대 삼아 제각각의 직선, 삼각형과 오각형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 3 REST S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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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 할 틈도 없이, 푸르른 나무들이 나의 눈에 와르르 쏟아져 담긴다. 편안함을 주는 녹색. 그리고 그 안에 어우러져 존재하는 사람들의 풍경은 나의 마음을 언제나 꽉 차게 해준다.

 

작품들의 배치 또한 같은 맥락에서 구성된 듯하다. 직선적이고 평면적으로 전시해 두었던 지난 섹션들과는 다르게, 곡선을 주로 활용하여 공원과 같은 여유로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작품들을 단순히 벽에 걸어두기보다는, 세워두어서 앞뒤로 다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히 좋았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평면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촬영한 작품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이 점으로 보이거나, 점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의 미소가 보이고 사랑이 보이고 즐거움과 슬픔이 보인다.

 

모두가 각자만의 삶을 떠안고는 센트럴파크에 모이고, 눈이 잔뜩 쌓인 마을에서 눈사람을 만든다.

 

 

 

# PLAY BACK


 

이경준의 뉴욕에서 빠져나오기 전, 관람객들은 각자의 고민을 직접 종이에 적고 분쇄한다. 분쇄된 고민은 그곳에 다른 이들의 분쇄된 고민들과 함께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이경준 작가는 우리에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one step away 하면, 나와 사람들은 점이 되고 건물은 직선과 평면이 되어버린다. 심각하게만 생각했던 나의 고민과 감정들이 별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겠다. 마치 내가 내 삶의 이방인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방인이 되어보는 경험은 왜 중요할까. 결국은 one step back 하기 위함이 아니려나. 이때에는 one step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끔은 two step 일지도. 나는 이경준 작가의 사진전에서 이미 ONE STEP BACK의 과정까지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센트럴파크에서의 작품과 눈이 잔뜩 쌓인 마을을 담은 부분에서 말이다.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고, 숨을 고르고, 객관적으로 그리고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충분히 했다면! 다시 성큼 앞으로 나와 사람들을 자세히 바라보고, 감정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온몸으로 삶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렇게 나는 잠시 이방인이 되었다가, 다시 (비)이방인이 된 채로 그라운드 시소를 떠났다.

 

 

[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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