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귀환 혹은 귀결

글 입력 2023.11.2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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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선택하고 싶은 직업이 뭐예요?”


바늘 끝에 쏠린 집중을 조금 덜어내며 타투이스트가 물었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푸념하는 손님을 위한 대꾸였다. 무엇을 열망하는지, 무엇에 결핍을 느끼는지 알고 싶을 때 유용한 질문이라고 첨언했다. 첫 직업을 가져보지 않은 난 왠지 멋쩍게 웃음이 났다. 다른 생각이 곧 뒤따랐고, 조금 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꼭... 다시 태어나야 하나요?”


“하하... 그 말이 왜 안 나오나 했어요.”


질문으로부터 한 달 전 생각했었다. 나무로 태어났어야 한다고. 도심 사이를 가로지르는 숲길의 나무들이 영험해서. 부러워서. 친구 같아서.


비관에서 출발했지만, 평행우주 내지 혹시 모를 전생의 형상을 추적해나간다는 생각에 퍽 재미있었다. 그래, 나는 왜 인간보다 나무가 되었어야 마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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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넘실거리면 숨을 멈추며 긴장하고

나무가 너울거리면 숨 막히는 안정을 느낀다


인간이 언제 아름다운지 모르고

나무가 언제 아름다운 빛을 내는지 안다


인간을 보면 고개를 숙이고

나무를 보면 하염없이 위를 본다


인간의 소리는 이내 소음이 되고 

나무의 소리는 본디 화음이 된다


인간의 감정은 하나씩 배워야 알 수 있고

나무의 영혼은 배우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인간을 안으면 비울 수 있고

나무를 안으면 채울 수 있다

 

 

이게 전부인가. 이 정도면 인간보다 나무인 게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이 정도 이유로도 충분하다면 나무가 되어야 하지 않나. 의미와 이유란 없을수록 무결하고 완강한 것이므로. 


“슬픈데 그것 역시 대답이 되네요. 너무 지쳐있다는 지표잖아요. 태어남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게.”


진정 나무라는 모습이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인지, 무엇으로부터든 회피하고픈 욕망인지 결정할 수 없다. 지금, 인간의 행색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만 알 수 있다. 


나무의 올곧음이 부럽다.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가지의 기개가 눈부시다. 단단한 뿌리의 산발함을 가진다면 삶을 애정할 수 있을 텐데. 발과 머리, 바람 부는 대로 휩쓸리며 매번 나무를 선망하고 시샘한다.


그 반작용으로 나무를 닮은 사람을 찾는다. 담담함과 유연함을 고루 갖춘 이상향. 컴컴한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인간이 되려 했던 곰처럼, 그들의 말과 행동을 주워 먹으며 나무가 되길 염원한다. 그럼 적어도 삶에 지치지 않을 것 같다는. 장수하는 삶을 저주로 여기지 않을 것 같다는. 인간의 군락마저도 사랑할 것 같다는. 허영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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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식물 타투를 받고 있는 건 나무의 정절한 생명력을 얻고 싶은 요행일까. 지금 오른쪽 팔엔 귀여운 새, 물고기, 식물 줄기가 자라나고 있다. 원래 있던 꽃과 나비와 사슴과 어우러진다. 마치 동화의 한 장면. 옹기종기 모여든 생명을 품고 있는 팔은 마치 거대한 나무의 가느다란 가지 같다.


작가 요조의 말을 기억한다. 타투에 임하는 태도에는 죽고 싶은 마음과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앞서고 뒤서는 트랙이 있다고. 두 마음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막상막하를 달린다고. 이 트랙에서는 죽고 싶은 마음이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누구 못지않게 살고 싶은, 기왕이면 열렬함을 내뿜고 싶다는 걸 안다. 죽고 싶다는 건,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건 바라는 삶의 형상이 강하게 내재한다는 부표일지도. 

 

그 형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탐구한다. 


이따금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을 때 기억해내려 한다. 내 근원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 뿌리에 가까워지기 위한 측은하면서도 귀여운 동력이 존재했다는 역사를. 

 

그래서 다시 태어나면 어떤 직업을 골라볼까.


목수만 빼면, 우선 괜찮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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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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