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싸우자, 이곳이 우리들의 세계니까 [영화]

글 입력 2023.1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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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 포스터.jpg

 

 

평화로운 금요일 방과 후, 갑작스레 한 소식이 학교를 뒤흔든다. 그것은 바로 학교 최고 인기인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다는 것. 이것이 큰일인가 싶겠지만 키리시마는 배구부의 유망주이자 주장이다. 그러한 키리시마가 도대회에 선발되었단 소식을 조례 때 모두가 듣고 기뻐하던 참이었기에 이는 큰 파장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그만큼 촉망받던 키리시마가 친구들에게 일절 언급 없이 돌연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겠다’라며 선생에게만 전달한 상황인 것이다. 이로 인해 인물들은 혼란에 빠진다.


우선 이 영화는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소위 인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키리시마의 절친 히로키, 테라시마, 토모히로와 키리시마의 여자친구 리사를 중심으로 한 사나, 미카, 카스미. 그와 반대의 집단인 영화부 부장 마에다와 영화부원들, 키리시마와 같은 배구부인 쿠보와 코이즈미, 그리고 음악부 부장인 사와지마로 나눌 수 있다. 키리시마의 동아리 탈퇴 선언은 이러한 인물들의 환경 변화를 비롯해 여러 감정을 촉발한다.


키리시마의 부재로 인해 코이즈미는 키리시마 대신 리베로를 맡게 된다. 키리시마 없이도 경기 일정은 진행되고, 코이즈미는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지만 턱없이 지고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 쿠보는 코이즈미에게 화풀이하며 연습 시간마다 그를 극한으로 몰고 간다. 그런 코이즈미를 자신과 겹쳐보는 배드민턴부 미카는 노력과 노력으로 대신할 수 없는 재능의 간극을 보며 씁쓸한 실의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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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의 여자친구 리사는 모두가 자신에게 키리시마의 행방을 묻는 상황에서 연락도 설명도 없는 키리시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슬퍼한다. 이러한 리사를 그녀의 친구 사나가 달래지만, 이런 사나에게도 요즘 거슬리는 상황이 있다. 자신의 남자친구 히로키와 대화할 때마다 자꾸만 사와지마와 눈이 마주치는 것. 사실 히로키를 몰래 좋아하고 있던 사와지마는 방과 후마다 옥상에 올라 색소폰을 연습하는 척하며 친구들과 농구를 하는 히로키를 구경해 왔다.


히로키와 함께 농구하는 친구들은 토모히로와 테라시마로, 이들은 귀가부-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다. 둘은 동아리 활동을 하는 키리시마와 히로키-야구부였으나 최근 그만두어 둘과 함께 농구를 한다-를 기다리기 위해 농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키리시마가 자취를 감춘 시점에서 본래의 목적을 잃은 그들은 혼란에 빠진다. “저기 말이야. 우리들 농구 왜 하는 거지?”


이러한 인물들 주변에서 포착되는 영화부는 자신들의 영화를 찍기 위한 열의에 빠져있다. 영화부는 직접 창작한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고 싶어 하지만, 담당 선생은 그런 매니악한 장르보다 청춘 로맨스가 대중에게 먹힌다며 자신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을 것을 종용한다. 지원도 응원도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마에다와 부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좀비 영화를 찍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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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한 명의 부재로 인해 사건이 일파만파 흘러가게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한 명은 스크린에 제대로 된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는다. 마치 인물들이 허상을 좇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내내 인물들은 키리시마의 행방을 묻고 쫓기 바쁘다. 하지만 키리시마를 쫓는 이들은 한 번도 키리시마를 마주치지 못한다. 오직 마에다와 영화부 부원들만이 옥상에서 내려오는 키리시마를 스친다.


키리시마라는 존재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이 키리시마가 원초적인 꿈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꿈을 갖기 시작한 순간의 꿈, 너무나도 설레고 즐거워서 뭐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던 가장 순수한 꿈을 말이다. 열의도 꿈도 없는 귀가부, 노력과 재능의 간극으로 인해 즐거움을 잃어버린 코이즈미와 미카, 현실적인 고민으로 인해 야구부를 그만둔 히로키. 이들은 모두 현실을 잊을 만큼 열정적으로 임할 꿈이 부재하거나 그러한 꿈을 갈망하는 인물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꾸만 키리시마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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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과 후, 키리시마가 옥상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인물들은 전부 옥상으로 뛰어 올라간다. 하지만 옥상에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영화부원들만 있을 뿐이다. 그에 인물들은 격양된 상태로 서로를 탓하며 헐뜯기 시작한다. 마치 좀비처럼 말이다.

 

모두가 다투는 와중에 마에다는 꿋꿋하게 영화를 찍는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8mm의 필름 카메라 렌즈로. 그러자 허술했던 좀비 분장은 마에다의 상상이 가미되어 실감나는 좀비 영화가 된다. 선생의 만류에도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며 좀비 영화를 찍는 마에다는 앞서 말한 가장 순수한 꿈을 이어 나가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누구도 그의 열정을 막지 못할 것이다.


다툼이 끝난 뒤 옥상에 남겨진 히로키와 마에다는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이 장면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가장 잘 드러낸다. 히로키는 다툼 도중 마에다가 떨어트린 카메라를 주워들곤 필름 카메라를 통해 마에다를 들여다본다. 관객은 히로키가 필름 카메라로 마에다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없고, 그러한 장면이 영화에는 가시화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마에다가 서 있는 곳이 역광이라는 정보를 통해 히로키가 본 마에다의 모습은 빛이 났을 거란 추측이 가능해진다.


반면 마에다는 히로키의 전신을 필름 카메라로 쭉 훑으며 “역시 멋있다.”라고 하지만, 찰나에 담긴 히로키의 모습은 쓸쓸함과 서글픔이 한껏 묻어난다. 히로키의 외적인 모습은 ‘뭐든 잘하고, 잘생긴 인기남’, 영화에 등장할 법한 남자 주인공이다. 그의 속내는 어떨까. 멋지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씁쓸해 보인다.

 

마에다와 달리 주변 상황에 맞춰 휘둘리는 히로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다. 심지어 여자친구에게도 무심하다. 그의 자세한 사정은 영화에 나타나 있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계속해서 히로키가 야구부 연습에 가진 않아도 여전히 야구가방을 메고 다닌다거나, 마에다와의 대화 이후 야구부의 모습을 지켜본다거나 하는 장면을 통해 그가 야구를 계속하고 싶어 했음을 보여준다.

 

학창 시절 ‘그저 동아리일 뿐이잖아. 왜 그렇게 열심히 해?’와 같은 질문을 들어본 적이 있다. 이후 학업이라는 현실과의 타협으로 인해 좋아하던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기에 히로키에게도 장애물이 되었을 주변의 시선과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히로키는 매일 연습에 매진하는 3학년 야구부 주장 선배에게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지만, 이러한 질문은 역으로 히로키 스스로가 갇힌 틀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어차피 3학년에는 은퇴해야 하고, 그렇다고 스카우트될지는 불분명하니 동아리가 끝나면 현실적인 진로를 정해야 하는 상황. 야구부를 하고 싶어도 선뜻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쉽게 결단할 수 없어 휩쓸리길 선택한 히로키. 그렇기에 히로키가 야구부 주장 선배와 마에다를 보며 다시 필드로 돌아가겠다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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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자. 이곳이 우리들의 세계다.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하니까.’


우리에게 방황은 불가피하다. 마에다조차도 좀비 영화를 중단하라는 선생의 지시에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어쨌건 우리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하고, 이곳이 우리들의 세계니까. 현실로 내몰려도 타협하지 않고 치열하게 투쟁하는 마음을 가지자. 그런 마음이 내게도 반짝이며 깃든다.

 

 

[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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