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떻게 죽을 것인가 [도서/문학]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 알려준 첫 번째 교훈 - 죽음
글 입력 2023.09.1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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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했던 시점은 중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어렵고 전문적인 글보다는 힘을 돋아 주는 자기계발서와 같은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지금에 비해 어린 나이임에도 당시의 나는 이 책을 술술 잘 읽어 내려갔다.

 

그렇다고 해서 깊은 영감을 받았던가 하는 건 아니었다. 읽은 기억은 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정도, 이것이 내가 이번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다시 마주했을 때의 첫인상이었다.

 

중학교로부터 수년이 흘렀고, 나는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중학생의 나와 지금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정신적인 성장? 달라진 행동력? 부끄럽게도 그런 긍정적인 변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경험’. 이것이 과거와 현재의 나를 가르는 명확한 기준이었다.

 

4년 전, 나는 외할머니와 친할아버지의 상을 같은 날 당하게 되었다. 자주 찾아 뵙지 못했지만, 같은 날 동시에 두 분이 눈을 감으셨다는 사실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처음 경험한 내게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허망함이 강하게 찾아왔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두 분의 죽음은 그때의 내게 결코 당연한 경험이 아니었다. 삶이 한순간 허망해졌고, 돌아가신 어르신들에 대한 죄송함만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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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쪽을 넘기면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리겠구나’ 생각했다. 두 번째 쪽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An old man, a young man, and life’s greatest lesson”. 한국어로 이야기하자면, “노인, 젊은이, 그리고 인생에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노인이 청년에게 주는 교훈이라. 저 문장에 대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인식은 그저 ‘꼰대의 잔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저 문장을 보자마자 외할머니가 항상 말씀하시던 “너는 ‘빠담 풍’ 하지 말고 ‘바람 풍’으로 바르게 해라”와 친할아버지의 “항상 베풀며 살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조부모님들의 말씀들을 들을 당시에는 그냥 넘기고 말았지만, 지금은 안다. 애정 어린 어르신들의 말씀은 틀린 게 없다는 것을. 그렇게 이 책에 대한 강한 믿음과 확신을 지닌 채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을 읽는 시간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모리의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낄 때마다, 모리가 본인의 죽음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할 때. 혹은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 때 조부모님 생각으로 마음 한 곳이 무거워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시나브로 책을 다 읽고 나니, 여전히 마음속을 울리는 두 가지 교훈이 있었다. 이제부터 나는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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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배웠다. 모리는 시한부 생명이라는 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나오던 그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그저 시름시름 앓다가 사라질 것인가', 혹은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쓸 것인가' 고민하다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 생각해 보면 사실 당연한 이야기이다. 살아있는 동안 시름시름 앓으며 생을 끝낼 바에야 남은 시간을 쪼개 열심히 사는 게 더 멋진 선택이라는 것 말이다.

 

그런데 나는 당연한 생각을 잊고 살고 있었다. 할머니의 입관식은 내게 삶과 부질없음과 허망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사람이 생을 마감하자, 차갑고 딱딱한 나무처럼 느껴졌다. 장의사들이 수의를 입히기 위해 몸을 잠시 들어 옮길 때에는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절망스러웠었다.

 

발인식이 끝난 후 마지막으로 조부모님의 뼛가루를 확인했다. 아, 사람이 죽으면 하나의 단백질 덩어리 혹은 한 줌의 재에 지나치지 않구나. 삶이란, 죽음이란 이렇게나 부질없고 허망한 것이구나. 삶에 대한 적극적인 의욕이 싹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모리는 무기력함에 대항했다. 물론 조부모님께서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를 꼬집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야기나 조금의 거동이 가능했던 모리와 다르게, 외할머니께서는 한순간의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셨고 친할아버지께서는 치매로 인해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리가 삶의 태도를 지적하는 대상은 바로 ‘나’다. 자의가 아니지만 죽음의 문턱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야만 했던 모리조차 필사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했다. 그러한 모리의 모습이 나의 염세적인 마음가짐을 반성하게 한다.

 

*

 

우리들의 삶은 너무나도 불확실하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예고편이 있어 미리 이야기를 예측하면 좋을 텐데, 현실 속 삶은 예고편 따위 준비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결말은 확실하다. 죽음. 마지막이 절망이라는 것만 확실하고 내용은 불확실하다는 드라마를 누가 보고 싶어 하며 찍고 싶어 할까.

 

죽음 앞에 우리들은 너무나도 연약하다. 긍정주의자 모리 또한 죽어가는 자신에 대해 자기 연민에 빠져 계속해서 울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모리는 절망에서 빠르게 벗어날 것을 이야기한다. 울었으면 그걸로 끝이다.

 

‘죽기 싫다’의 동의어는 ‘살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죽음을 거부하는 만큼 우리는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고 싶어 하는 만큼 남은 삶을 열심히 살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정해진 결말이라면, 그 결말을 향해가는 과정이 누구보다 빛났으면 좋겠다. 그 과정의 찬란함이 죽음의 절망을 이겨낼 정도로. 죽음에 대한 무기력함과 공포로 삶을 낭비하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짧으며 소중하다.

 

사람들 모두 각자 자신만의 빛나는 서사로 결말의 슬픔을 이겨냈으면 좋겠다. 새드 엔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를 더욱 여운 있게 만드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심심한 위로도 함께 던져본다.

 

 

[이도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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