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핫한 트렌드 키워드 하나를 뽑자면 <텍스트 힙>이 있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 릴스 등 영상이 검색이나 여가 생활에 있어 디폴트가 된 세상에서 독서가 힙한 취미가 된 것이다. 최근 새로운 힙이 등장했으니. 바로 <클래식 힙>이다. 트렌드 미디어 캐릿에 따르면, Z세대 사이에서 클래식 음악 감상이나 미술 전시 관람처럼 예술적 소양을 쌓는 활동이 힙하고 낭만적인 취미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캐릿은 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 두 미술관 방문 데이터를 들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전체 관람객 중 2030이 차지하는 비율은 과반이 넘는 66%였으며, 한가람 미술관은 20대 비율이 최근 3개월간 419% 증가했다. 이러한 폭발적인 반응은 고전 미술 중심의 전시가 인기인 탓이라고 한다 (기사 출처: 러닝 다음은 뭐가 뜰까? 아이돌 콘서트급 티켓 파워 가진 클래식 팬덤!)
갑자기 스스로 취향이 바뀌었나 생각이 들 때는 그것이 유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니, 작년부터 관심 가기 시작한 미술 전시 관람이 사실 유행의 영향을 받았던 건가 싶다. 잔잔한 바다, 아리따운 여성, 서정적인 분위기의 마을 등 잘 그려진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 켠이 무겁다. 나 혼자 보는 속도가 너무 빠른가? 내가 지금 뭔가 놓치고 있는 걸까? 와, 진짜 잘 그렸다 또는 너무 예쁘다 말고도 더 다양한 감정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전시 관람이 즐거우면서 내가 잘 관람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신경 쓰인다. 내가 사랑하는 티비 시리즈 알쓸신잡 속 유시민 작가님이 미술관에서 유창하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나 감상을 들려주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스스로가 초라해진다.
이러한 심리적 압박 때문인지 미술 전시도 좋지만, 해설이 자세하게 적힌 그림 관련 책을 읽는 걸 더 좋아한다. 이번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읽기도 비슷한 이유로 시작했다. 표지에 적힌 <세상에서 가장 쉬운 미술 기초 체력 수업>이라는 카피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읽어보니 대학교 때 미술 관련 교양 수업을 들으면 이러한 내용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미술사 교수인 저자가 쓴 미술 교양 입문서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저자 노아 차니는 전문 미술사학자로서 미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복잡한 미술 이론 지식 없이도 작품을 쉽게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번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의 저술 동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이것도 예술일까?> 장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이론가들은 예술,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문명이란 기본 욕구가 충족된 후에야 생겨난다고 생각했다. 먹을 수 있고, 따뜻한 곳에서 잘 수 있고, 주거지가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만 예술을 창조할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생긴다고 여겼다. 그러나 동굴에서 살던 선사시대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으로 먹고살고, 동물들을 따라다니고, 동굴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애스는 상황에서도 예술을 창조했다."] - 44페이지
미술 작품을 깊게 이해하고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는 건 매우 고차원적인 행위라고 생각했었다. 예술 자체가 똥손인 나는 엄두도 못 내는 것이기에 예술을 해석하는 건 더 어렵고 엘리트인 소수의 사람들만 가능한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예술은 본능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창조하고 싶은 본능에서 비롯된 산물인 것이다. 본능에서 비롯되는 일이라니, 마음의 장벽이 한 층 무너진 것 같았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훌륭한 예술>에 대한 3가지 질문을 소개한다. 첫 번째, 훌륭한가? 두 번째, 아름다운가? 세 번째, 흥미로운가? 각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지점들도 알려주니 어떤 걸 느껴야 할지 감 잡기 어려운 작품 앞에 당당히 서 있을 시간이 마련됐다. 같이 간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하여 서로의 견해를 나누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먼저 전시를 다 둘러보고 같이 간 사람을 기다리며 또 어떤 걸 봐야 할지 멋쩍었던 시간들이여 안녕. 저자가 강조하는 열린 마음과 함께 미술관에서 좀 더 주체적이고 당당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수강 신청 기간에 광클을 해야 잡을 수 있는 인기 교양 수업처럼 어렵지 않은 말과 다양한 사례, 흥미로운 비하인드 이야기로 이뤄져 있으니, 미술관과 앞으로 더 친해질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