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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표 음악 장르 중 하나인 트로트. 우리나라 청년층에게 케이팝 아이돌이 있다면, 중장년층에게는 트로트가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몇 년 전 미스트롯의 탄생으로 우리나라는 트로트 열풍에 휩싸였다. 전국노래자랑에서만 접하는 음악 장르라고 생각했던 트로트는 케이블, 지상파 할 것 없이 TV를 틀면 나오는 단골 소재로 자리 잡았다. 송가인, 임영웅, 이찬원 등 다양한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범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열띤 트롯 열풍 속에서 우리집은 조용한 편이었다. 필자는 대표적인 멜론(실제로는 유튜브 뮤직을 듣는다) 탑 100귀로 아이돌의 케이팝을 주로 듣는다. 부모님은 일평생 덕질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케이팝보다는 트로트이지만, 그렇다고 트로트 가수들에 열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우연한 기회로 장윤정 콘서트에 다녀온 엄마가 며칠 동안 콘서트 후기를 말해주시는 모습이 떠올라 <트롯열차 - 피카디리역> 공연 정보를 접했을 때 먼저 제안했다. 엄마, 트로트 공연 같이 갈래? 엄마의 대답은 '너무 좋지!'였다. 덕분에 간만에 효녀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향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피카디리 극장. 피카디리 극장은 1970년대~1990년대까지 한국 영화계의 중심에서 위상을 뽐내던 종로 3대 극장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장소가 먼저였는지, 공연 제목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공연장은 문화역284(한국 근현대사의 서울역을 원형으로 복원한 복합문화공간)이 떠오르는 비주얼이었다.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MC의 짧은공연 소개가 있었다. 소극장 특성상 관객과 예술가의 거리가 가까워 즉각적인 티키타카가 가능했다. 이날 MC는 개그맨 장동혁이었는데, 얼굴을 보자마자 '어?' 소리가 절로 나왔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 코너에서 '안녕~ 동혁이 형이야~'로 시작하는 꽁트를 하던 개그맨이었다. 중학교 시절 주말에는 항상 개그콘서트 챙겨보며 일요일을 떠나보낸 사람으로서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급상승했다(트로트에 대해 문외한이라 캐스트를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


이 공연은 한 마디로 소개하자면, 앞으로 나아가는 열차의 특성을 활용해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희노애락의 정차역을 지나 우리의 인생과 추억을 돌아보게 하는 트로트 공연이다. 공연을 보기 전에는 내가 이 공연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아는 노래가 연이어 나왔다. '임과 함께', '어머나' 등등 아빠가 술 마신 날 부르던 노래, 예능에서 기상송으로 나오는 노래, 운전하며 들은 라디오에서 틀어준 노래 등등. 전체는 아니더라도 하이라이트 소절은 따라 부를 수 있는 곡들이 많이 나왔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다채로운 구성이 있다. 다양한 가수들이 차례대로 트로트를 부르지 않고 상황극, 관객과의 대화, 댄스(댄서분들이 춤을 정말 잘 춘다), 기타 공연 등등 여러 형태로 트로트를 즐길 수 있다. DJ가 나와 준비가 된 사연을 읽고 그 노래에 맞는 노래를 선곡해주는 시간에는 관객들의 웃음이 쉼없이 터져 나왔다. 관객의 90% 이상이 부모님뻘이었는데 어른들이 꺄르르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두 노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먼저 김광석의 '60대 노부부 이야기'. 예전에 봤던 김광석 뮤지컬(바람으로의 여행)에서 처음 접하고 한동안 플레이리스트에서 이 노래가 빠지지 않았다. 가사를 곱씹다 보면 머리에 그려지는 부부의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노래는 매우 담백하게 흘러가 계속 듣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곡이다. 평소 좋아하던 노래가 공연에서 나와 기분이 좋았다. 트로트에는 인생사 희노애락이 녹아져 있다는 말처럼 공연에 나온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풍부한 감정이 돋보였다. 원곡과는 색다른 맛이어서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 노래는 '나를 외치다'다. 이번 공연에서 처음 듣게 된 노래였는데 가사가 너무 좋아서 기억에 남는다.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 뒤쳐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  응원하던 e스포츠팀이 국제전에서 결승전에서 아쉽게 준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난생 처음 스포츠팀을 응원하게 되기도 했고, 결승전까지 가는 길을 지켜봐온 사람으로서 선수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하고 우승을 바라고 있었던 걸 알아 경기가 끝난 한참 후에도 마음을 추스리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이 노래를 듣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눈물이 살짝 맺혔다. 엄청나게 풍부한 성량과 함께 흘러나오는 지금은 끝이 아니고 내 길을 계속해서 걸으면 된다는 노랫말이 큰 힘이 되었고, 응원하는 선수에게도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공연이 끝났다. 직관적인 가사로 처음 듣는 노래도 곧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고, 부모님뻘만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추억은 나 역시 공감할 수 있었다. 공연 중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 DJ의 오프닝 멘트가 흘러 나왔는데 "어? 배철수인가?"하니 엄마가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고 알려줬다. 엄마와 나 모두 알고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기억하는 DJ가 다르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이 공연으로 나는 또 한번 문화를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열린 마음, 열린 태도. 에픽하의 '트로트'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어디 하나 기댈 데도 없는 이 세상 / 너 뿐이다 트로트 / 딴따라 딴딴따 트로트 가락에 / 맞춰서 움직여 네 박자 / 술 한잔에 울고 노래가락 속에 / 웃는 내 인생아 트로트'.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트로트에는 인생이 있다. 누군가의 인생을 쉽게 평가해도 될까? 트로트에 대한 리스펙이 생긴 하루였다. 이 날 트롯열차를 무사히 운행해준 강혜연, 이태이, 장동혁, 김재민, 최재영, 표지은, 안소연, 정수아, 최도현, 홍소한 캐스트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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