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결정적 그림>이라는 책을 통해 알폰스 무하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됐다. 다양한 예술가의 대표 작품 또는 삶을 바꾼 그림을 소개하는 책이었다. 그중 알폰스 무하는 포스터 하나로 하루아침에 무명 생활을 청산하게 된 화가로 소개되었다.
그는 어렸을 때 프라하 미술 아카데미에 떨어지기도 하고, 다니던 회사에 해고당한 적도 있었다. 마음처럼 풀리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성실히 그림을 그린 끝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연극 포스터 요청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특유의 화려한 색채, 유려한 곡선, 그리고 신비로운 여성상은 <무하 스타일>로 불리며 명성을 높였다.
올해는 알폰스 무하 165주년을 기념해 <아르누보의 꽃: 알폰스 무하전> 원시 전시회가 열렸다. 무하의 오리지널 포스터부터 판화, 드로잉, 유화, 디자인 장식 오브제 등 300여 점의 작품이 한곳에 모였다. 여기서 아르누보란, 19세기 말 시작된 독특한 예술 운동으로 특정 시스템이나 원칙을 따르지 않고 독창적인 새로운 미술 경향을 뜻한다. 확고하면서 독보적인 무하 스타일은 그를 아르누보 대표 작가로 만들었다.
책에서 작가를 무하의 지스몽다 포스터를 접했을 때도 만약 내가 동시대 사람이라면, 줄 서서라도 모으고 싶은 포스터라고 생각했던 만큼 실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설레었다. 전시회 벽면을 가득 메우는 아름다운 여성들. 꽃과 식물들이 여성을 둘러싼 배경을 아름답게 채우고 색감도 환상적이다. 자세히 그림을 보면 옷 장식이나 벽 그림 등 세밀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보통 요즘 아이돌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또 그 옆에 예쁜 애 반복’ 혹은 ‘잘생긴 애 옆에 잘생긴 애, 잘생긴 애 연속’이라 할 수 있는데 무하 그림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봄/여름/겨울/가을, 아침/낮/저녁 등 다양한 테마 속 여성들이 서로 다르게 아름답다. 봄은 화사하게 아름답다면, 여름은 파아란 하늘과 함께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가을은 우아하게 아름답고 겨울은 차분하게 아름답다. 작가가 아름다운 여성 그리기로 차력 쇼를 보여준 듯한 기분이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그의 상업 작품 활동이었다. 그의 연극 포스터들을 보며 요즘 시대에 태어났으면 독보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 웹소설 표지는 물론 제품 패키지 콜라보로 인기를 휩쓸었을 텐데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전시회를 계속 보다 보니 그는 당시에 이미 유명한 알 수 있었다. 인쇄소 광고 이미지로 시작해서 술, 담배, 과자 다양한 분야의 광고 이미지를 만들었다. 광고 이미지들 옆에는 당시의 제품 패키지가 실물로 전시 중이었는데 틴케이스가 너무 예뻐 타임머신을 타고 당대 사람이 되어 그가 참여한 제품 패키지를 다 모으고 싶었다.
이번 전시회는 단순히 알폰스 무하의 아름다운 작품들만 조명하지 않는다. 전시회는 1부 <뮤즈가 건넨 붓, 화가가 그린 전설>, 2부 <아르투보의 꽃>, 3부 <무하 오디세이>, 4부 <슬라브이 화가>로 총 네 파트로 구성된다. 1~3파트는 순수 미술과 상업 미술을 넘나드는 그의 폭넓은 작품들을 보며 눈이 즐거웠다면 4부에서는 체코 출신 작가라는 그의 정체성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화폐, 우표, 행사 등 세계대전이 끝난 뒤 어려운 고국의 다양한 요청에 무료로 재능 기부 형식으로 참여한 작품이 많았다. 여태 그의 작품 스타일에만 집중했었는데 고국에 대한 애정을 알게 되니 무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전시회 막바지에는 성 비투스 대성당의 알폰스 무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재현한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실제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알록달록 빛이 반짝거리며 저마다 다른 성격 속 이야기를 그린 스테인드글라스 조각들을 보니 어린아이처럼 작품에 눈을 떼지 못했다. 빤히 보면서 ‘스무 살 때 체코 패키지여행을 갔을 때 본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도 참 예뻤는데..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역시 언제 봐도 예쁘구나’ 생각했다. 어딘가 기시감이 들어, 묵혀두었던 드라이브 속 체코 여행 사진을 보니 몇 년 전 방문했던 성당이 성 바투스 대성당이었다! 눈앞에 있는 작품을 내가 직접 본 적이 었었다니..
어딘가 운명적인 느낌에 오래도록 알폰스 무하를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