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야기를 사랑하는가?
하나의 이야기는 하나 이상의 삶을 품게 된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가 낯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결국은 삶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시선에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누군가일지라도,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이해하게 되면 함께 아파하고 진심 어린 행복을 빌게 된다.
이야기는 누군가의 삶을 담아내는 가장 좋은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동화 속 주인공이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라 기대하는 바람도. 만화 속 등장인물이 세상의 도전에 맞서 꿈을 이뤄내길 응원하는 마음도. 드라마 속 캐릭터가 오늘의 좌절을 이겨내고 내일을 향해 당차게 나아가길 바라는 진심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타인을 이해해왔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만큼 무수히 많은 삶들이 저마다의 애쓴 하루를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 또한.
[한 화가의 삶과 작품을 본다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과 나도 모르게 교신하는 일이다.] -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 21-22p 中
여전히 미술은 어려운 내 마음을 두드린 것은 ‘라울 뒤피’라는 이름보다는 ‘이야기’라는 단어였다.
한 예술가와 그의 작품이 미술사에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보다, 위대한 예술가이기 전에 한 인간일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한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더 궁금해한다.
이런 내게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라는 직관적인 제목의 책이 이제껏 만난 그 어떤 미술 서적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뒤피의 작품에서는 활력이 느껴진다.
‘색채의 하모니와 율동’이라는 수식에 걸맞게 다채롭고 통통 튀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만난 적도, 만나 볼 수도 없는 그의 환한 웃음이 눈앞에 선연해진다.
[“뒤피의 작품은 즐거움 그 자체다.”] - 거트루드 스타인
다양한 화파와 직업의 경계를 넘나들어 활동한 뒤피는 특정한 화풍을 대표하는 예술가 대신 ‘행복을 그린 화가’라는 별칭으로 미술사에 남아 있다.
대표 분야가 없다는 이유로 과소평가된다는 점은 아쉽지만, ‘삶의 기쁨을 그린 예술가’라는 그의 별명이 내게는 꽤 마음에 든다. 한 사람의 생애와 그가 남긴 작품이 ‘즐거움’, 특히 ‘삶의 기쁨’이라는 관념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 어쩐지 낭만적이다.
책을 통해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된 지금은 더욱 그렇다. 마치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은 뒤피의 작품이 삶이 지치는 순간마다 기댈 수 있는 소소한 도피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라울 뒤피의 이야기는 특별했다. 단순히 낯선 과거의 예술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넘어 어쩌면 닮고 싶은 삶의 태도를 배웠다.
특정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어 창의성을 불태운 창작자. 누구보다 삶을 사랑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기쁨만을 남기고자 노력한 예술가.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과, 그럼에도 삶은 아름답다는 가치관을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사는 내게 ‘라울 뒤피’라는 예술가는 동경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위대한 예술가는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중략) 무엇보다 뒤피가 좋아했던 바다는 단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 40p 中
내게 라울 뒤피는 ‘바다’를 닮은 사람이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그는 수많은 바다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바다 그림을 많이 남겼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예술가로서 도전과 발전을 멈추지 않은 그의 모든 삶이, 항상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다처럼 느껴졌다.
뒤피의 생애를 훔쳐보며 그저 이유 없이 동경한다 느꼈던 바다를 사랑하는 이유 역시 깨달았다. 나 역시 바다처럼, 바다를 닮은 뒤피처럼 결코 정체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뒤피는 삶이 고뇌에 찰지라도 스스로의 예술에 그 고통을 절대 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처한 현실이 어둡고 힘들 때마다 뒤피의 작품을 바라보면 삶에 긍정적인 시선을 던질 수 있게 된다.] -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 338p 中
삶이 항상 아름다울 수 있을까?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되뇌지만, 내 삶을 항상 사랑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아름다움만을 그리려고 노력했다는 뒤피의 어록을 보면서 아직은 더 많은 성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내 눈은 추한 것은 지우게 되어 있다”] - 라울 뒤피
하지만 그런 뒤피의 삶 역시 항상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삶에도 개인적인 고뇌와 슬픔이 존재했고, 그를 둘러싼 세상은 세계 제1, 2차 대전이라는 냉혹한 시대를 거쳐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삶을 개척하려 노력하고 절망적인 시대 속에서도 희망과 삶을 향한 투지를 담아내려한 뒤피에게서, 삶을 사랑하는 법은 매 순간에 충실한 내게 달려있음을 배웠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때론 좌절로 주저앉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것. 특별해서가 아니라 고유해서, 대단하진 않더라도 항상 애를 쓰며 살아내기에. 삶의 아름다움은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것 역시.
[뒤피는 알고 있던 듯하다. 어두운 밤이 지나야 다시 찬란한 아침이 오고, 아름답던 색들도 검은색으로 뒤덮여도 다시 그 위에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 328p 中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쉽게 요행을 바랐다. 사소한 칭찬에 우쭐대고 얻어걸린 행운을 실력이라 착각했다. 열성을 쏟지 않은 도전에 쉽게 좌절했고, 작은 불행에 크게 절망했다. 매 순간에 충실하지 않고도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삶을 사랑한다고, 유한히 머무르는 이 세상이 더없이 아름답다고 말한 것이 부끄럽게도 내 삶에 그리 최선을 다하지 않아 온 것 같다.
[“삶은 나에게 항상 미소 짓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삶에 미소 지었다.”] - 라울 뒤피
삶이 언제나 나에게 미소 짓는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그 언젠가 빛나는 삶을 살다간 뒤피처럼 나 역시 삶에 항상 미소 짓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때로는 삶이 나를 배신하고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도, 매 순간 살아있는 바다처럼 결코 멈추는 법을 모르는 ‘라울 뒤피’같은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