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바아사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생각이 되는
글 입력 2024.10.3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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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오늘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소 마뜩잖은 감이 없지 않다.

 

간 날 보다 안 간 날이 더 많은 요가를 시작한 지 어느덧 반년이 되었고, 이제는 가당치도 않은 핑계를 대는 것이 스스로도 머쓱한 지경인지라 끝내 다음 달 등록을 하지 않았다. 요가를 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참 민망한 상황이라서 이 이야기를 써도 되는지 한참 망설이다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전혀 그럴듯하지도 못한 핑계를 대본다.

 

어쩐지 불행 배틀처럼 느껴져 멋쩍지만, 자발적으로 요가를 시작한 결심부터가 내게는 제법 대단한 도전이었다. 심각하게 몸이 뻣뻣하다는 뻔한 이유이지만, 이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실제 내가 요가를 하는 모습을 본다면 충분히 대수롭다 느끼리라 장담할 수 있다. 수준을 논하기 이전에 가장 기본적인 동작조차 제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굳이 이런 치부를 드러내면서 요가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참으로 단순했다. 타고나길 뻣뻣한 몸을 그런 이유로 오랜 기간 방치한 결과가 쌓이고 쌓여 더 이상 조치를 취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온몸이 아팠고, 그날이 마침 지역 체육센터 강좌 등록 마지막 날이었으며 유일하게 요가만이 자리가 남아있었다는 운명(?) 같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실제 요가 수업은 예상을 크게 비껴가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나는 그 수업의 가장 열등생이었고, 그보다 더 불행이라면 나의 유연성이 70대 이상인 것 같다는 자괴감이 더해졌다는 점이며, 그나마 다행이라면 요주의 인물인 내 수준을 따로 고려해 주시는 강사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전이 있다면 내가 요가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일 테다.

 

결국 다음 등록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단언컨대 나는 요가가 싫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좋은 쪽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물론 요가를 하는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고 매 순간 나의 한계를 실감해야만 하는 그 시간은 전혀 즐겁지가 않다. 이로 인해 수업을 나가기로 결심하는 과정부터가 수행의 시작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를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모두 ‘사바아사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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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송장 자세’라고 하는 이 동작은 요가 수업의 마무리 단계에 이루어지는 명상 시간인데, 50분에서 한 시간 남짓의 고된 수련 끝에 한계에 임박했을 시점 모든 것을 멈춘 후 눈을 감고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5~10분 정도 가만히 휴식을 취하면 된다.

 

매일 잠을 자야만 하는 인간에게 가만히 누워있는 자세란 별스럽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내겐 잠을 자는 것도 아닌데 움직이지 않고 누워만 있는 감각이 처음에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고, 또 충격적일 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그 후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요가를 가는 결심의 8할 이상이 이 사바아사나가 된 것이다.

 

익숙해지지도 않는 매번 고통스러운 수업 끝에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누워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나를 느낀다. 나의 일부이면서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별로 없는 몸의 감각을 읽게 되는 것이다. 탁 트인 넓은 공간에 눈을 감고 누우면, 고요해진 주변 공기 너머 창밖으로는 수업 시간에는 전혀 들리지 않던 차가 달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무엇보다 내가 호흡하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려온다.

 

그렇게 전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어떤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몸 안에서 흐르는 게 느껴지는데, 송장 자세라는 말과는 어긋나게 그 흐름이 마치 내가 살아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만 같다. 그리고 문득 이대로 영원히 일어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는 충만함과 함께, 그 외의 모든 번뇌들이 사라져간다.

 

머릿속이 정말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찬 상태로 요가 수업을 온 날에도, 사바아사나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 모든 고민과 걱정들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몸이 가장 살아있는 것만 같을 때 머릿속이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지는 것이다.

 

내게 죽음이란 항상 두려운 대상이기만 했다. 이런저런 고민과 걱정들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가끔 그 생각의 끝엔 내일 다시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몰려오기도 했다. 누군가는 죽음이 영원한 안식이 될 수 있다고도 말했지만, 내게는 그 끝이란 두려움과 아쉬움 이상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바아사나를 통해 처음으로 끝이 난다는 것이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건 사바아사나가 송장 자세를 뜻한다는 그 숨겨진 속내를 인식하기 이전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 안식은 이에 앞선 고통을 감내해야만 온전히 얻게 되는 평안이었다. 사바 아사나라는 무거운 뜻풀이 속에 단순히 그런 자세를 취한다는 것 이상의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살아내는 과정 자체가 고통이고 마침내 죽음을 통해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라면, 그 끝을 덤덤히 수용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 어떤 미련도 남지 않을 만큼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겹지만 밤에 잠이 드는 게 더 어렵다. 정상적인 수면 패턴을 논하자면, 어떤 측면에선 불면의 일종일 수 있는 이 증상이 벌써 몇 년일 정도로 꽤 오래되었다. 숙면이 어려우니 일어나는 과정이 힘겨운 건 당연할 테지만, 불면의 원인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사실 그만큼 오늘에 후회가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삶을 충실히 살아낸 사람이 죽음의 안식을 충만히 느끼게 되는 것처럼, 오늘에 최선을 다했다면 편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지는 않았을까?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흘러간 날이면, 잠들기 전 갖은 번뇌가 가득 차올라 불면의 밤을 보낸다는걸.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생각이 되는, 번뇌의 굴레에 빠진 내 일상에도 사바아사나가 필요한 것 같다.

 

조만간 다시 요가를 시작해야겠다.

 

 

[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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