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독립출판에서 발견한 작은 미래 - 디자인이음 이상영 이사

글 입력 2023.04.2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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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책이 위기"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독립출판계다. 거기에는 책에 대한 우려가 무색하게 묵묵히 자신의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책을 진지하게 읽는 독자들이 있다. 기성 출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형태의 출판물,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빛나는 출판물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애정을 바탕으로 읽고 쓰고 만드는 이들이 모여 이룬 이 세계는 함께할 더 많은 동료를 기다리는 중이다. 

 

1년에 두 차례 독립출판 플리마켓 ‘베어북마켓’을 여는 디자인이음은 기성 출판과 독립출판을 모두 아우르는 출판사이다. 예술, 실용 분야 단행본을 꾸준히 내면서도 주목받는 독립출판물을 ‘청춘문고’라는 이름으로 리뉴얼해 출판하고 있다. 청춘문고 시리즈로 나온 독립출판물만 40여 권. 독립출판물임을 알리는 듯한 독특한 제목과 함께, 독립출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만한 작가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디자인이음이 독립출판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1일, 두 번째 베어북마켓을 앞둔 베어카페에서 디자인이음의 이상영 이사를 만났다. 다가오는 베어북마켓과 함께 소수의 색다른 시도에서 이제는 또 하나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은 독립출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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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음에서 운영하는 베어카페 입구

 

 

“베어북마켓은 오랫동안 작업하신 분들이 새로운 활기를 찾고, 

신진 작가님은 독립출판계에 한 발을 내딛는 자리예요.”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디자인이음은 어떤 출판사인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디자인이음의 이상영입니다. 남편인 서상민 편집장님과 함께 디자인이음을 꾸려가고 있어요. 편집장님은 매거진과 디자인을, 저는 단행본과 편집을 맡고 있습니다. 베어북마켓을 비롯해 베어카페에서 열리는 행사와 워크숍도 제 담당이라 제가 이 자리에 나왔어요. (웃음)


디자인이음은 예술, 실용, 취미생활 분야의 책을 주로 내고 있어요. 일상을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책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책을 만듭니다. 『킨포크매거진』, 『베어매거진』도 내고 있어요. 2017년부터는 독립출판에서 주목받는 작품을 문고판으로 리뉴얼해 출판하는 ‘청춘문고’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이음에서 주최하는 베어북마켓은 어떤 행사인지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베어북마켓은 베어카페에서 열리는 독립출판 플리마켓이에요. 예전에도 다른 서점이나 작가님들과 크고 작은 행사를 해 왔는데, ‘베어북마켓’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여는 건 작년 가을에 이어 두 번째예요. 도서를 기반으로 하는 창작자들과 작은 출판사가 책과 굿즈를 판매합니다. 소설, 에세이, 일러스트집 등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만나볼 수 있어요. 창작자분들이 사인을 하거나 경품을 주는 등 개별적으로 이벤트를 여시기도 해요. ‘작가들의 작은 축제’라고 할 수 있죠. 

 

 

지난가을 열렸던 첫 번째 행사에서 기억에 남는 참가 팀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처음에는 판매 부스에 각자 혼자 앉아 있던 작가님들이 오후가 되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소개를 하고 대화를 주고받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자연스레 서로의 작업과 근황을 이야기하며 격려하는 분위기가 되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지금, 두 번째 베어북마켓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요, 이번 행사 준비는 어땠나요?


1년에 한 번 가을에만 할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겨울 동안 끙끙대며 열심히 무언가를 만드는 작가님들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어요. 꽃피는 봄날, 겨울에 작업한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죠. 책을 엄청 많이 팔아야겠다는 마음보다 그동안 우리가 묵묵히 해 왔던 걸 누군가에게 보여주자, 우리가 만든 것들에 바람을 쐬어주자는 마음이에요. 오랜만에 작가님들끼리 서로 얼굴도 보고요. 


행사를 열 때면 역시 날씨가 가장 신경이 쓰여요. 또 작가님들이 힘들게 책을 갖고 오시는 만큼 좀 더 많은 분과 만날 수 있도록 저희가 홍보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베어카페에 방문해주시는 분들에게 홍보하며 주변 서점에 포스터도 붙이고 보도자료도 돌리고 있어요.

 

 

여기저기서 북페어와 마켓이 많이 열리고 있는데, 베어북마켓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게 저희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참여 작가가 100명이 넘어가면 보러 오는 사람도 지치거든요. 그러다 보면 인기 있는 작가님에게로 사람이 몰리는 경향이 있죠. 베어북마켓은 공간 특성상 참여 작가 수가 40~50명 정도라 작가님 한 분 한 분이 주목받을 수 있어요. 작업물에 대해 작가님과 깊이 있게 대화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베어북마켓은 오랫동안 작업하신 분들은 새로운 활기를 찾고, 신진 작가님은 독립출판계로 한 발 더 내딛는 자리예요. 

 

마켓이 열리는 공간도 독특해요. 베어카페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한옥 카페로 옛 한옥 형태와 분위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거든요. 마켓이 열릴 때는 실내, 실외 공간을 모두 사용하는 데다가 근처 식당 사장님이 특별히 오셔서 음식도 해주시니까 마치 잔칫집 같은 분위기가 됩니다. 

 

 

이번 마켓에도 많은 작가님들이 참가 신청을 해주셨다고 들었는데요, 참가 작가님들을 선정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보셨나요?


텍스트 중심인 도서와 이미지 중심인 도서의 비중을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소책자, 엽서책, 일러스트집, 그림책 등 다양한 출판물을 내시는 작가님들을 모셨습니다. 저희와 예전에 같이 작업해본 분들, 독립출판계에 자리잡고 꾸준히 작업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열심히 하시는데 아직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신진작가님들과도 함께하려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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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음의 '청춘문고' 시리즈

 

 

"기성 출판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실험적으로 해보며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기가 자기 책을 홍보하고, 독자들도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책을 찾아 즐기는

 독립출판 문화 자체가 미래지향적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이음에서는 주목받는 독립출판물을 ‘청춘문고’라는 이름의 문고판으로 출간하고 있기도 해요. 벌써 시즌4, 40여 권이 출간되었을 정도로 지속적인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청춘문고’는 반짝반짝한 독립출판을 아카이브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스토리지북앤필름과 함께 기획한 시리즈예요. 다행히 많은 작가님이 흔쾌히 참여해주셨죠. 독립출판 서점이 많지 않은 지방에서는 독립출판물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데, 청춘문고는 일반 도서로 분류되어 일반 서점에도 입고되니까 독립출판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실제로 마켓에서 ‘청춘문고’ 시리즈를 보고 찾아온 독자를 만났다며 소식을 전해 온 작가님도 계셨어요. 

 

 

2017년부터 ‘청춘문고’를 만드시고 관련 행사를 여시며 독립출판계를 쭉 봐오셨을 텐데, 변화의 흐름이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청춘문고를 시작할 때는 이제 막 독립출판에 활력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어요. 시즌3을 내던 때가 가장 인기가 폭발적이었던 시기예요. 독립출판 서점도, 작가님도, 마켓도 에너지가 넘쳤죠. 지금은 그때보다 폭발적인 에너지는 덜 하지만 종류가 더 다양해지고 내용도 깊어진 듯해요.


외부 관심이 좀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때도 있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독립출판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때를 지나 이제는 이미 많이 알려진 상태라 그렇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희도 예전에는 독립출판이 뭔지 알리자는 느낌으로 기획하고 작업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어떻게 좀 더 새로운 걸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독립출판계에서 인기 있는 주제는 무엇인지, 최근에 눈여겨볼 만한 트렌드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종류로 따지면 에세이의 강세는 여전하고요.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며 출판물에서 그림이나 만화, 사진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예요. 실제로 마켓에서 둘러보면 그림책에 대한 반응이 꽤 좋고, 일상툰 같은 만화책 종류도 인기가 있습니다.


주제의 경우, 초반에는 퇴사, 연애, 사랑을 다룬 책의 선호도가 높았던 것 같아요. 한동안 ‘달’이 들어가는 제목의 책이 잘 팔리기도 했죠. (웃음) 비슷한 책이 많아지다 보니 이제는 주제 자체보다 자기만의 관점이 얼마나 잘 드러나는지가 중요해졌어요. 같은 주제를 다뤄도 작가의 관점이 선명하고 개성 있는 쪽이 흥미를 끌죠. 그런 책은 독자분들이 더 잘 알아보세요.

 

 

예전에 다른 인터뷰에서 독립출판이 ‘출판의 미래’라고 언급하신 적이 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한지 궁금합니다.


아직도 유효해요. 일단 독립출판에서는 기성 출판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시도가 나와요. 독자들이 굉장히 능동적이라는 특징도 있어요. 판매처가 한정되어 있기에 책을 사기 위해 멀리서 오셔서 작가님께 진지한 질문을 드리는 독자가 많죠. 독립출판이 출판의 미래라고 한 이유는 이러한 특성 때문이에요. 기성 출판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실험적으로 해보며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기가 자기 책을 홍보하고, 독자들도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책을 찾아 즐기는 독립출판 문화 자체가 미래지향적이라고 생각해요. 

 

변하는 세상에서 독립출판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고 봐요. 사람들이 책을 안 읽으니까 이미지가 많고 텍스트는 적은 출판물, 보다 실험적인 형태의 출판물 수요가 늘어나는데, 독립출판은 거기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요. 대표님 결재도 받아야 하고 한 번에 기본 2천 부씩은 찍어야 하는 기성 출판과 달리 비교적 간단하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으니까요. 또 책이 일종의 소장품이 되어가는 분위기에서도 개성 있는 독립출판물이 눈길을 끌 수 있어요.

 

많은 분이 독립출판을 하셔서 독립출판계가 더 활발해지면 좋겠어요. 모두가 책 한 권씩 낸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미 한 권 내신 분께는 한 권으로 그만두지 말고 계속 꾸준히 쌓아가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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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카페

 

 

“저는 그 ‘우리’가 많아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모두가 작가가 된다면, 모두가 서로의 책을 사주면 되는 거죠.”

 


독립출판의 강세는 그만큼 자기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걸 보여주는 듯해요. 책 사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쓰는 사람은 늘어난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해요. 이사님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보시나요?


그 부분은 늘 어려워요. 걱정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죠.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이야기는 휴대폰이 나오기 전부터도 있었거든요. 책 만드는 사람이 결국 책 사는 사람이다, 우리끼리 사고판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오가고요. 저는 그 ‘우리’가 많아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모두가 작가가 된다면, 모두가 서로의 책을 사주면 되는 거죠. 앞서 말씀드렸듯 모두가 책 한 권씩을 내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내 책을 쓰다 보면 남의 걸 읽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독립출판을 알아갈수록 애정이 바탕에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디자인이음에서 펴내는 『베어매거진』에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오는데요, 이상영 이사님은 지금의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와 편집장님은 동양화를 전공한 후 시각 디자인과 편집 디자인 일을 해왔어요. 의뢰를 받아 다른 사람 책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우리 책을 만들고 싶어졌죠. 그 마음으로 디자인이음을 시작했어요. 힘들지만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베어매거진』을 만들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일을 만나지만, ‘우리는 그래도 책이지’ 하면서 돌아오죠. 


베어북마켓 참가 조건으로 출간한 책이 있어야 한다고 명시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책이 아닌 굿즈나 소품이 더 잘 팔릴 수도 있겠지만, 이 행사의 기반은 책이었으면 해요. 요즘 누가 책을 보냐는 얘기도 많이 듣는데 그래도 저희는 책 만드는 일이 가장 재미있어요. 애증의 관계죠. (웃음)

 

 

그렇게 책에 애정을 갖고 있는 건 역시 책의 물성 때문일까요?


물성도 물성이지만 무엇보다 책을 만들며 느끼는 보람이 있어요. 특히 청춘문고 작가님들과 함께 작업하며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굉장히 만족도가 큰 일입니다. 또 저는 뭘 하든 책부터 찾아보는 사람이라 그런지 책이 보물상자처럼 느껴져요. 책에는 하나의 세계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앞으로 디자인이음에서 만들어보고 싶은 책이 있나요? 


일단 청춘문고 시리즈를 계속하려 하고요, 취미·실용 분야의 외서도 꾸준히 국내에 소개하고 싶어요. 소설과 시선집도 계속 내고 싶어요. 저희가 좋아하는 작가님들과 좋아하는 책을 앞으로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며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베어북마켓은 가을에도 열리니, 그때 여유로운 마음으로 들러주시면 좋겠습니다. 색다른 경험이 될 거예요. 괜히 왔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 거라 자신 있게 말씀드려요. (웃음) 

 

또 독립출판 작가님들께 세 권까지는 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세 번째가 되면 비로소 좀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은데, 두 번째 책 내는 게 너무 어려워서 첫 번째 책만 내고 그만두시는 분이 많아요.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관심은 있지만 책을 내본 적 없는 분이라면, 독립출판은 진입 장벽이 높지 않으니 꼭 한번 경험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진제공: 디자인이음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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