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것은 자유였을까, 일탈이었을까 - 연극 슈미

글 입력 2023.03.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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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겨울이 막 시작되던 즈음, 나는 찬 바람을 뚫고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그날 나는 <슈미>를 처음으로 관람했고, 약 두 시간 동안 무대 위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에 숨을 죽였다.

 

그리고 연극은 내게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졌다. 주인공 슈미는 왜 그렇게까지 자유의지와 선택에 집착한 것이며,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자유에 대한 진정한 해답인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슈미는 그토록 갈구했던 답을 찾아낸 것만 같았고, 나는 여전히 미결로 남은 물음표를 안고 올해 다시 연극 <슈미>를 찾았다.

 

이 극에는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내온 다섯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슈미와 결혼해 이제 막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경만, 검사로 성공해 권력과 부를 거머쥔 도규, 경만의 대학 동창이자 과거 슈미와 가까운 관계였던 유완, 그리고 현재 유완을 사랑하고 있으며 유완이 책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애경. 이 다섯 명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오랜만에 조우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폭력적인 사랑 방식, 질투심, 상하 관계가 숨어 있었고 이는 깨질 듯 깨지지 않는 위태로움을 유지했다.

 

슈미는 경만과의 결혼 생활을 지루해했고,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에 환멸과 같은 권태로움을 느꼈다. 반대로 경만은 슈미와의 결혼에서 행복을 느꼈다. 경만은 슈미를 위해 도규에게 돈을 빌려서까지 으리으리한 신혼집과 값비싼 가구를 마련했는데, 도규는 이를 빌미로 은근히 슈미와 상하 관계를 두려 했으며 잘못된 욕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슈미와 경만의 신혼집에 제일 먼저 찾아온 사람은 애경이었다. 유완을 찾기 위해 영국에서 한국으로 온 애경은 슈미에게 유완과의 내연 관계를 털어놓게 된다. 애경은 영국에서 유완을 자신의 집 가정교사로 들였고, 유완이 책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자신 또한 유완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이 되어주었음을 강조한다. 애경의 이야기를 들은 슈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한 집에 모두 모이게 된 다섯 사람. 슈미는 유완을 시험하기 위해 술을 권하지만, 한때 방탕한 삶을 살았던 유완은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며 슈미의 제안을 거절했다. 슈미는 유완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자유의지가 아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회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슈미는 유완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끊임없이 시험한다. 이 과정에서 슈미는 유완에게 애경이 유완과 사랑에 빠진 관계라고 말했음을 밝혔고, 애경의 마음과는 달리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유완은 결국 술이 든 와인잔에 입을 대고 만다. 그런 유완의 모습에 애경은 절규했고, 슈미는 원하는 바를 손에 쥔 듯 환하게 웃었다.

 

슈미는 그 이후에도 파티를 즐기러 간 유완의 행동을 궁금해했다. 슈미는 파티를 마치고 돌아온도규와 경만에게 유완이 ‘디오니소스처럼 머리에 포도 잎사귀를 장식’했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슈미가 유완을 단순히 시험에 들게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슈미는 유완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자신만의 욕망과 실현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어릴 적 벌거벗은 채 함께 햇살을 맞이했던 슈미와 유완은 그것을 자유라 여겼고, 슈미는 유완을 통해 그 자유를 실현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결국 슈미는 유완에게 권총을 건넨다. 삶을 종결함으로써 스스로의 선택과 자유를 증명해 보이라는 뜻일까. 이후, 유완이 총에 맞았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충격에 휩싸인 애경과 경만과 달리 슈미는 광기 어린 듯 환호한다. 슈미는 유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하며 그의 죽음을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슈미의 생각과 달리 유완은 우발적인 사고에 의해 총에 맞았다. 슈미는 유완이 끝내 자유 의지대로 삶을 끝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절망한다. 슈미에게 유완의 죽음은 자유 실현의 실패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결국 온전히 ‘나’로 존재하길 바랐던 슈미는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뒤, 방아쇠를 당겼다.

 

1차원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슈미라는 인물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인물들을 관찰하고 조종하고,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게 만드는 슈미의 행동은 마치 광기로부터 발현되는 듯하다. 비극이 시작된 씨앗이 슈미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슈미는 계속해서 ‘나 스스로 빛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며,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바로 삼는다. 슈미는 사회가 원하는 책임과 지위, 통상적인 관례에 속박되는 것을 거부한 셈이다.

 

자유 실현의 종착지가 결국 자살이 되었다는 것이 비극적으로 다가오지만, 슈미가 그토록 강조한 자유의지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쏟아질 것만 같은 세상의 파도 속에서 주체성 없이 그대로 함몰되고 있진 않은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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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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