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고매한 부품의 이야기 - 연극 '생각은 자유'

글 입력 2022.12.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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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를 지배하는 자아도취의 신


  

현대사회에서 권력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되는 거대한 네트워크망과 같다. 각 연결망의 주체들은 자격을 통해 편입하여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세계를 뒤덮은 자본주의적 환상은 특정한 이념으로 규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신을 섬기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신은 인류를 지배해왔던 신들과 다르게, 자신에 대한 숭배가 아닌 자아도취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장 훌륭한 신자가 되기 위하여 자신을 섬긴다. 자신에게 바치는 공물, 자신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조각물들. 그런고로 현대인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고상한 정신세계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이제 모든 사람이 자본의 달콤한 노랫소리에 이끌려 부유함이 약속하는 사랑과 자유를 갈망한다. 자유주의적 이념이라는 환상 아래에 뚜렷한 경계선을 정상성과 합리성으로 합리화하고 자신이 그 안쪽에 있음에 안도한다. 이 시끄러운 현대사회의 만신전에서 우리는 더 자유롭고 아름다워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방식으로 우리 스스로 끔찍한 성실함으로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작동하고 있는 권력 체계의 주체들은 결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단일적 존재나 뚜렷한 주체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인정하는 자격을 인장처럼 달고, 이득관계라는 규칙에 따라 질서 있게 움직이는 군단의 말단병사들과 같다. 네트워크 질서 안에서 얻은 영향력으로 인해 자유를 만끽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들은 수많은 연결망 속에 갇힌 죄수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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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고매한 부품의 이야기


 

오늘 리뷰할 '생각은 자유'는 이러한 권력체계의 주인처럼 보이는 이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동경한 '높으신 분들'을 다룬 작품이다. 연극은 가진 자들의 협력을 통해 유지되는 권력 네트워크를 충실히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연극의 러닝타임 내내 이들이 만들어내고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권력 네트워크에 대해 묘사하고, 연극의 끝에서 그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것을 배제하였는지에 대해 비춘다.

 

연극에서 묘사된 현대 권력이란 각 구성원의 열정과 협력을 통해 유지되므로, 연극을 이해하기 위해선 각 인물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한다.구서광은 검사 출신 정치인으로, 최근 MH그룹의 이사인 오사라와 사랑 없는 결혼을 했다. 최근 오사라는 화재로 전신에 끔찍한 화상을 입었다. 구서광은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는 남편으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해 국회의원이 되는 데 성공한다.

 

한편 그의 정치자금을 대준 동생 구서환은 레몬홀딩스의 펀드를 운영하는 기업인이다. MH 그룹의 전 회장 오미라는 처형이자 구서환의 경제적 협력 관계를 맺은 인물이다. 메이저 언론사 기자 이우진은 구서광의 이미지 메이킹을 돕는다. 기자 이우진은 기업들로부터 광고를 수주받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주가조작에 참여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묘사가 등장한다.

 

이들은 구서광의 성공적인 국회 입문으로 축배를 들지만, 의식불명의 오사라가 깨어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구서광은 오사라가 전과 다른 사람같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하지만, 그에게 그것을 고민할 여유는 없다. 그는 오사라를 담당하는 -구서광과의 관계를 통해 외과 과장이 된-젊은 주치의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을 정도로 오사라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을뿐더러, 당선 다음날 구서환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서 언론인과 정치 유튜버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에 이어 구서광이 아내의 주치의인 외과의와 썸씽이 있다는 것이 선전지처럼 돌고, 레몬홀딩스의 주가조작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구서광은 주치의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문제를 덮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오사라의 병실 앞에서 이들은 앞으로의 전략을 짜보지만 조여들어 오는 언론사의 조사에 갈 길을 잃고 만다.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각 구성원은 이 네트워크에서 발을 빼기 위해 노력한다. 오미라는 구서환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쓰고 외국으로 도피할 것을 권하고, 구서광은 선을 그으면서 구서환과 오미라와의 관계를 청산하려 한다. 이우진 역시 더는 이들의 스피커가 되지 않겠다고 한다. 이 중 가장 막대한 피해를 당할 예정이었던 구서환은 위기에 몰리자 자신이 몰래 녹음한 녹음기록을 보여준다.

 

녹음에 따르면 지금 깨어난 오사라는 오사라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었던 간호사였다. 언론에는 간호사가 죽고 오미라가 살아있다고 알려졌지만, 오미라와 구서환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범죄를 오사라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전신화상을 입은 간호사를 오사라인 것처럼 꾸미고 모든 서류에 그녀의 싸인을 받았다.

 

처음에는 PTSD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꾸몄지만, 정말로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주치의가 구서광과 내연관계에 있는바, 이들은 간호사를 오사라로 변모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사실이 밝혀진 후, 공허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이들을 정치 유튜버가 하나씩 담으면서 연극이 끝난다.

 

주치의와의 관계를 끝낸 구서광에게 구서환은 그가 진심이었냐고 묻는다. 구서광은 진심이라는 것이 어디있냐고 물어본다. 연극은 이들의 인간적인 정서나 목표는 다루지 않는다. 그들이 각 자리에서 필사적으로 유지해온 권력 네트워크만을 충실하게 다룰 뿐이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이들은 다른 사람의 존엄과 인격을 지워버리고, 그 자신조차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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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가며


  

전반적으로 연극은 이러한 권력 형성 과정에 대해 차갑고 치밀한 태도로 재현한다. 이들의 행패를 알리고자 하고, 마지막까지 이들의 얼굴 면면을 비추는 정치 유튜브조차 슈퍼챗과 후원을 위해 움직이는 또 다른 권력의 주체로 묘사된다. 연극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초입부와 퇴장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등장인물이 무표정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묘사는 풍요로움을 향해 내달리지만 권력의 구성요소로서만 작동하는 인간들을 인간이 아닌 하나의 부품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연말에 서울시교향악단 베토벤의 합창 9번을 들으러 갔다. 나는 이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데, 다른 부분도 좋지만, 마지막까지 기다린 4악장의 가사들을 좋아한다. 기쁨의 천사는 모든 인류를 향해 양 날개를 감싸 안고, 인간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와 연인을 만났음을 기뻐한다. 하지만 이 기쁨의 무리에서 하나의 영혼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이 무리를 떠나라고 냉정하게 이야기한다.

 

기쁨의 신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자비로운 태도와 이런 냉혹한 발언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단 하나의 조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그 자신만의 영혼을 가졌다고 할 수 없는 인간은 신조차 구원할 수 없다. 기쁨의 천사가 그들을 추방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추방자로 만든 것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연극을 보는 나는 나의 영혼을 가졌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이 거대하고 복잡한 권력의 세계에서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 자신과 세계를 고립시킨다.

 

하지만 반대로 이 촘촘한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순진하고 천박한 망상일 것이다. 여기에 대해 연극은 위안 아닌 위안을 준다. 마침 연극의 제목은 '생각은 자유'다. 이 끔찍한 세계에서 기쁨의 천사 날개 안에서 추방되지 않을 유일한 길이 거기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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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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