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에서 읽는 운명의 순간들,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을 생생히 느끼게 해주는 책
글 입력 2022.11.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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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가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화려하고도 피로 물든 세계가 낭만을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오싹한 공포감을 선사하며, 현대의 유럽통합을 볼 수 있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합스부르크가는 중세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650년에 걸쳐 유례없는 긴 명맥을 이어온 폭넓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제국은 유럽의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주변의 국가들과 혼인관계를 맺으며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방대한 역사만큼 개성적인 인물들이 있고, 그들과 얽히고설킨 사건이 잔뜩 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다양한 인물들과 파란만장한 스토리 때문인지, 수많은 예술작품의 배경이 되어왔다. 베르디의 오페라 <카를로스>,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 <마리 앙투아네트>, 실베르터 르베이의 뮤지컬 <엘리자벳> 같은 작품을 비롯해 회화에서도 알브레히트 뒤러, 베첼티오 등 거장들이 회화 작품을 남겼다.

 

 

합스부르크-표지평면.jpg

 

 

합스부르크 제국에 관한 책은 많이 나와있지만, 명화에만 초점은 맞춘 책은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명화를 통하여 합스부르크 제국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담고 있는 명화를 필두고, 명화에 초점을 맞추어 각각의 부분들을 묘사했다. 방대한 서양사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이도 명화를 통하여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글로만 읽는 역사는 우리의 머릿속 상상에 맡겨야 한다. 그러나 그림과 함께 보는 역사는 그 시대의 관찰자의 눈을 빌려 우리를 사건의 한가운데로 인도한다. 역사 속 인물과 그 시대를 생생히 볼 수 있어 훨씬 풍부하며 흡입력 있게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해가 가능하다.

 

아돌프 폰 멘첼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플루트 연주회>에서는 당시 궁전의 로코코 형식의 화려함과 프로이센을 유럽 열강으로 끌어올린 대왕 프리드리히 2세의 위엄을 한눈에 보여준다. 명화는 말로는 모두 표현할 수 없는 당시의 배경과 인물의 표정들로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 명화는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까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는 운명적인 정략결혼을 한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우호 노선을 타면서 “전쟁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가 대두된다. 오직 외교를 위한 급한 결혼 때문이었을까.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는 상대가 평범하고 왕이 될 그릇이 아니어도, 놀기 좋아하고 생각이 얇은 딸이 강대국의 왕비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무시한 채 결혼을 밀어붙였다.

 

그런 와중에 불길한 결혼식을 이어간다. 국경을 넘어갈 때 급조된 성소에는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가 걸려있었다. 남편의 배신을 용서치 못하고 자식을 죽인 공주의 오싹한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었다. 베르사유에서 결혼 축제는 불꽃을 터트릴 계획이었지만 큰 폭풍이 몰려와 다음으로 행사를 미루고 다음 행사에서는 많은 사람이 몰려와 1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만들어냈다. 이뿐만이 아니라, 예배당에서의 결혼 계약서 작성 의식에서 앙투아네트가 아이 같은 글씨로 서명을 하고 펜을 들자 잉크가 떨어지며 이름 위에 커다란 얼룩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앙투아네트를 국민 대다수 평화의 상징으로 여기며 환영했다. 그녀의 젊음과 풋풋함이 호감을 주었을 것이다. <스피넷을 연주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는 매끈하고 하얀 피부, 갸름한 얼굴, 생기 넘치는 눈동자의 소유자였다. 합스부르크의 특징인 부정교합도 그녀에겐 사랑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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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와 아이들, 1787

 

 

<마리 앙투아네트와 아이들>은 앙투아네트가 32세 일 때 그려진 초상화다. 이 작품은 당시 가장 성공한 여성 화가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이었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은 그녀의 수작으로 평 받는다. 여성으로서 한창 때를 맞이한 왕비의 아름다움,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몸짓, 치맛자락과 레이스의 섬세한 묘사, 색채 면에서도 화려한 붉은색을 주로 사용했지만 전체적으로 화려한 인상을 주어 완성도가 높다.

 

그럼에도 당시 이 작품은 환영받지 못했다. 앙투아네트가 미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탕하고 놀이에 집중하는 삶을 오래간 살아온 앙투아네트는 경솔한 행동을 반복했고 민심을 잃었다. “의상비로 나라를 거덜 내는 적자 부인이다”라는 비난을 듣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 그녀가 이제 화려한 생활을 절제하고 왕위 계승자인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로, 또 왕비로서 자각을 가지기 시작할 때 이러한 비난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국모의 이미지를 얻으려 어머니와 아이들의 애정 넘치는 모습을 그렸지만, 이 그림은 어쩐지 행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인물들은 제작기 다른 곳을 보고 있으며, 앙투아네트의 표정도 텅 비어있는 느낌을 준다. 장남이 가리키는 유아용 침대는 텅 비어있으며 기분 나쁘게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여기서 잠들어 있던 차녀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아이를 잃은 또 가여운 왕비라는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혁명 후 국왕 일가는 국외로 도망가고자 했으나, 붙잡혀 혁명정부에 처형을 당한다. “20세기 오스트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슈테판 츠바이크는 앙투아네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평범한 인간이 가혹한 운명을 거쳐 불멸의 존재가 될 때까지의 이야기라고 평했다.”

 

 

때때로 예술가가 세계를 아우르는 대단한 소재 대신에 사소해 보이는 소재를 통해 자신의 창의력을 증명하는 것처럼, 운명 역시도 별 볼일 없는 주인공을 찾아낸다. 그래서 부서지기 쉬운 재료를 가지고도 최고의 긴장감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연약하고 의지가 부족한 영혼을 통해서도 위대한 비극을 전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일 때가 있다. 그때 우연히도 주역을 맡게 된 가장 아름다운 비극의 예가 마리 앙투아네트다.

 

- 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엘리자베트


 

합스부르크가의 조피 대공비는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합스부르크가의 유일한 남자’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굳세고 정치에 능했다. 불안했던 시기에 우수한 장남 프란츠 요제프를 황제로 세우자 빈 3월 혁명도 수습되어 나라에 안정을 되찾았다. 요제프는 어머니의 통치력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행동했다. 그런 그가 단 한 번 순종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바로 엘리자베트를 아내로 삼는 일이었다. 결혼 외교를 위해 주도면밀히 설정된 맞선 자리에서 요제프는 상대 헬레네가 아닌, 호기심으로 따라나온 15세의 여동생에게 반해버린다. 그의 눈에 엘리자베트는 자신과 다른 어린아이의 느낌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작은 새로 보였을 것이다.

 

요제프의 굳은 의지로 밀고 나간 결혼은 속전속결로 이어진다. 공부보다는 사냥과 서커스를 좋아하던 그녀는 반 년 만에 황비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자 스트레스로 몇 번이나 히스테리를 일으켰다고 한다. 자신의 그릇에 맞는 작은 나라의 왕비가 되었다면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언니의 맞선에 따라간 그 시점에서 운명의 톱니바퀴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로 시작한 궁정 생활은 엘리자베트에게 스트레스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남편은 그녀를 새장 속 새처럼 귀여워할 뿐, 어머니인 조피 대공비의 말을 들어달라고 한다. 뮤지컬 <엘리자베트>에서 심술궂은 시어머니로 그려진 것과 달리 조피 대공비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엘리자베트는 이기적인 행동을 해왔다. 엘리자베트와 마찬가지로 대공비도 가문에 시집을 온 뒤 꽤나 고생을 겪었기 때문이다. 황비가 된 이상 개인을 죽이고 제국의 안정을 가장 우선시하지 않으면 혼돈의 유럽을 넘어설 수 없었다. 조피는 그녀에게 황비의 자각심을 심어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엘리자베트는 빠르게 장녀를 낳았고, 양육권을 조피에게 빼앗겼지만 도저히 소중한 손주를 미숙한 며느리에게 맡길 수 없었다. 조피의 반대를 무릎 쓰고 장거리 헝가리 여행에 두 살짜리 아이를 데려간 엘리자베트는 아이를 병으로 잃고 만다. 그 후 엘리자베트는 육아를 포기하고 이후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궁전을 떠나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여행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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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트, 1865

 

 

이 눈부신 초상화의 주인공은 28세의 엘리자베트다. 그녀의 섬세한 이목구비의 미모는 어느 왕가와 비교해도 1,2 위를 다툴 정도였다. 그녀는 아이를 셋이나 낳으면서도 잘록한 허리둘레를 유지했고 키가 크고 허리가 늘씬한 체형에 어울리는 크리놀린 패션을 소화해낸다.

 

이 완벽한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그녀는 과격한 다이어트를 한다. 승마, 펜싱, 체조, 아령 등의 격렬한 운동을 하고 공복 중 걷기 운동을 하다가 기절하기도 했다. 길고 김은 머리카락은 값비싼 재료로 세 시간씩 손질했으며 피부를 위해 우유 목욕도 했다. 내면의, 인생의 큰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외모를 갈고닦은 그녀에게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큰 힘이 됐다. 왕족으로써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엘리자베트의 인기를 식지 않게 하며 정치적으로도 우호성을 이끌어내는 큰 역할을 했다.

 

그림에서 그녀는 한창때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리석 궁전을 배경으로 비스듬하게 서서 이쪽을 바라고 있다. 자랑거리인 머리카락에는 별 모양의 장식을 몇 개나 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수가 놓인 드레스를 걸친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우수 어린 눈빛은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다. 입술은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그림에서 행복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이 그림은 아름다움과 호사스러움 속에서 볼 수 있는 깊은 고독과 어두운 예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비극의 느낌이 느껴지기에 이 그림을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이 시대엔 사진이 탄생하여 회화의 빛이 흐려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엘리자베트를 생각하면 이 초상화부터 떠올린다. 눈에 보이는 것을 뛰어넘어 본질을 보여주는 것. 그러하여 마음속에 깊이 의미를 남기는 것. 회화의 힘이다.

 

뮤지컬 <엘리자베트>에서는 1막이 끝나는 시점, 자신의 아름다움의 힘을 깨닫고 당당하게 등장하여 주위를 압도하는 장면에서 이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 그리고 위에서 거대한 액자가 내려오며 무대 위 살아있는 인간의 초상화가 만들어진다. 실로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연출이었다.

 

엘리자베트는 더욱 방황을 하며 여행을 다녔고, 사랑받지 못한 아들 루돌프는 ‘마이얼링 사건’으로 남작 영애와 동반 자살을 한다. 엘리자베트는 큰 충격으로 그날 이후 상복을 벗지 않았다. 그녀는 정처 없는 방랑을 시작했다. 루돌프가 죽은 10년 뒤 1898년 스위스 엘리자베트는 피습을 당한다. 이탈리아인 무정부주의자인 그는 다른 왕족을 노렸지만, 실패하고 우연히 근처에 있던 엘리자베트를 표적 삼았다.

 

“왕족이라면 누구든 좋았다”라는 남자의 말은 엘리자베트의 일생에 한층 허무함과 적막감을 준다. 그녀의 죽음 이후로 합스부르크가는 비탈길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프란츠 요제프의 아내, 아들, 그 뒤를 이을 후계자까지 모두 죽음으로 흘러가면서 제국의 종언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제국>은 서양사를 어려워하지만, 합스부르크 제국의 이야기는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명화를 통해 합스부르크 역사를 이해하는 데 허들을 낮추었고, 흥미를 돋우었다. 개성이 강하고 운명의 비정함을 지닌 합스부르크의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보며 그들의 존재감을 느끼고, 신비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역사는 돌고 돌 듯, 합스부르카의 사건들은 지금의 사건들과 맞닿아있는 부분이 많다. 이를 보며 문제 앞에서 우리가 행해야 할 행동들과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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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ㅇㅇ
    • 프란츠 요제프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어렵고 찾기 힘든 정보도 아니구요. 제대로 조사하고 기사를 쓰시길 바랍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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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요제프
    • 2022.11.13 18:13:26
    • |
    • 신고
    • 제국이 종언을 맞았다.(X) 제국의 종언은 가까워지고 있었다.(O) 정보의 오류를 지적하실 때는 문맥을 다시 한번 잘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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