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가족’이 아닌 ‘개인’으로 살아남기 – 가족을 구성할 권리

폐쇄적 가족주의를 넘어 다양한 유대를 상상할 때
글 입력 2022.10.0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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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① 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 제1항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한다.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가족의 범위’를 위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민법의 정의는 다양한 영역에서 ’가족’을 기준으로 하는 제도와 정책의 기준이 된다. 이렇듯 오랜 시간 동안 (물론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삶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법과 제도는, 혼인과 혈연만이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인정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 밖에서 이루어지는 유대는 ‘가족’으로 인정되거나 보호받지 못했고, 또 혼인과 혈연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소위 ‘정상가족’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가족들은 여러 편견과 차별로 인해 제도 안에서도 소외되었다.

 

이는 국가와 사회가 ‘가족’을 그저 돌봄을 포함한 재생산과 사적복지를 책임지는 ‘기능’의 단위로서 여기며 공적인 영역의 역할을 떠넘겨온 문제와도 연관된다. 그리고 이렇게 기능의 측면에서 가족을 바라보는 인식은,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정상가족’을 구성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지는 신체 혹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해 왔다. 그렇기에 ‘가족’의 범위와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시민’을 정의하고 위치 짓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사적인 영역’이라 여겨 왔던 ‘가족’의 개념을 재정의하기 위한 공론장으로 한 걸음 더 들어서고 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선택하는 삶은 기존의 가족 규범이 만들어낸 각본을 넘어 다양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가족’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더 이상 ‘비혼’이라는 단어는 낯선 단어가 아니며, 다양한 형태의 시민적 유대와 결합을 상상하던 사람들이 모여 실제로 이를 시도해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러한 ‘가족 변동’의 현상은 ‘돌봄의 공백’, ‘공동체의 붕괴’, ‘고립’과 같은 말을 통해 곧잘 우리 개인과 사회의 ‘위기’로 읽혀진다. 그리고 ‘정상가족’에서 벗어난 삶을 선택하거나 이미 그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개인들은 이러한 위기를 불러온 ‘원인’으로 지목되며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마주한 ‘가족 변동’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위기’일까?

 

『가족을 구성할 권리(김순남 저)』는 우리를 ‘고립’의 두려움과 ‘취약함’의 함정 속으로 이끄는 ‘위기’의 원인을, 폐쇄적인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여러 시스템과 이성애규범적인 가족 중심 시민 모델이라고 본다. 이 때문에 가족 안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 기존의 가족 규범과 불화하는 사람들은 더욱 고립되고 취약한 위치에 서게 된다. 따라서 ‘가족’의 정의와 범위를 물으며 어떤 존재도 ‘가족’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안’이 아닌 사회 안의 시민 ‘개인’으로서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음을 요청하는 과정이 되며, 이 과정에서 ‘가족’은 저항의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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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재정의하기 : 명사가 아닌 동사로서 변동하는 ‘가족-하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대부분 ‘가족’이라 불리는 집단 안에 소속되고, 이성애중심의 가족 규범을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 아래에서 ‘가족 안의 존재’로서 인식된다. 이렇게 결혼과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만을 인정하는 사회 속에서 그 외의 다른 가족을 상상하는 일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가족을 ‘가족’이라고 느끼고 인지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의외로 전혀 다른 가족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결혼이나 혈연이라는 조건보다, 생계와 거주를 공유하고 정서적인 연대를 통해 서로 의지하며 유대를 쌓아갈 때 ‘가족’과 같은 친밀감을 느낀다. 즉 명사가 아닌 동사로서 ‘가족-되기’ 혹은 ‘가족-하다’를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혼과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단일한 관계가 아닌,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관계망 속에서 동등한 시민으로서 상호 의존하는 관계로서 ‘가족 실천’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가족사회학자 데이비드 모건은 '가족'을 명사가 아닌 형용사,

나아가 동사로 봐야한다는 의미에서 '가족하다'의 수행성을 드러내는

가족실천(family practic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

즉, 모든 가족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일정한 가족모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따라서,

가족 관계를 수행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가족의 의미가 구성되는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 pp. 55-56

 

 

그렇기에 우리는 기존의 가족 규범에 따라 이미 ‘주어진’ 가족이 아닌,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친밀한 관계로서 ‘가족’을 이뤄가고, 이 과정에서 차별없이 존중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해 ‘가족구성권’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족구성권’을 주장하는 일은 단순히 ‘다양한 가족’을 법과 제도 안에 포섭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뿐 만 아니라, 시대와 사회의 변화와 생애의 과정에 따라 달라지는 가족의 의미와 범위를 계속해서 해체하고 재정의하는 것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이성애중심 가족규범이 만든 ‘이상적인 시민모델’에 대해 계속해서 묻고,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모두가 개별적인 ‘시민’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

 

실제로 우리는 서로 비균질적인 삶을 겪으며 각기 다른 관계와 다양한 유대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가족’을 오로지 사적 영역으로 치부하고, ‘가족신화’ 안에 갇혀 가족을 성역화하는 태도는 우리를 ‘가족’이 아닌 우리 그 자체의 ‘개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자리를 지워버린다. 이에 따라 가족 밖의 개인들이 더욱 ‘취약한’ 위치에 놓여짐은 물론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가족’을 정치화하고, 공론장으로 이 개념을 끌어와 함께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주거, 의료, 보험, 수당, 세금, 장례, 상속 등 삶의 전 과정에서 ‘가족’을 단위로 다양한 제도가 설계되고, ‘가족’으로 인정받지 아니면 서로에 대한 권리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족’이 되는 것은 단지 인식과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가족’을 정치화한다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법과 제도를 ‘가족’이 아닌 ‘개인’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과 동시에, 삶의 전과정과 그 안에서 맺는 관계들을 정치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족구성권 운동’은 가부장제, 이성애중심주의, 정상신체주의, 인종주의, 성적권리의 부재 등에 저항하는 움직임과 연결되며,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따라서 ‘가족 변동’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지금의 우리는,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물으며 다양한 시민적 유대를 상상하고, 시도하고, 이를 위한 기반을 만드는 일에 대해 함께 논의해 나가야 한다. 결혼과 혈연이 아닌 다양한 유대와 친밀성을 상상하고 필요로 하는 우리 모두는 더 이상 고립되거나 ‘고립을 예비한 존재’도, 비정상적이거나 ‘자격이 없는 시민’도 아니어야 한다.

 

 

우리는 익숙한 것이 안전하다는 것, 비슷한 관계를 맺고 비슷한 생애주기를 따르며

 비슷한 삶을 살아야만 사회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당연한' 전제에

저항해야 하며, 이는 근본적으로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문제이기 이전에 나와 타자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습과 관계의 문법을

요청하는 문제다.

이러한 차원에서 필자가 주장하는 퀴어가족정치는 삶의 차이를 발굴하고

차이를 확장하며, '가족은 무엇이다'라고 단일하게 정의하지 않은 채

다양한 관계성 그 자체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퀴어가족정치의 핵심은 새로운 가족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망을 상상할 수 있는 인식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며,

퀴어한 삶과 관계성이 세대를 이어 전수되고 이어질 수 있도록

시민 간의 다양한 유대를 정치화하는 것이다.

 

 - p. 123

 

 

 

‘가족’이 아닌 ‘개인’으로 살아남기 : '가족구성권' 운동이 지향하는 곳


 

우리는 누구나 삶의 어느 시기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성애중심의 가족규범에 부합하는 ‘정상가족’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제도 안에서 고립과 단절, 취약함은 '그 가족'이라는 기준 밖의 사람들이 ‘감수’해야 하는 몫으로 여겨진다. 이들이 마주하는 ‘위기’가 가족규범과 불화하고 국가가 원하는 재생산의 기능의 수행하지 않는 이들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의 삶은 분절되고, 세대와 젠더 등 개별적인 이슈로 구분되며 연대의 가능성은 점점 지워진다. 예를 들어 ‘독거는 노인의 이슈로, 비혼은 여성의 이슈로, 청년세대의 불안정성은 남성의 이슈로 분리되며, 세대갈등과 젠더갈등이라는 구도 속에서 시민들의 삶이 손쉽게 동질화(p. 37)’되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될 때 우리가 마주하는 위기의 실체와 그 근본적인 원인은 찾지 못한 채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만 더욱 심화된다.

 

그렇기에 저출생과 ‘돌봄공백’으로 대표되는 인구와 재생산의 위기를 특정한 집단의 책임으로 돌릴수도, 고립과 생활기반의 불안을 특정한 집단의 특성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 기능적인 차원에서 ‘가족 안의 시민’이 아닌 자기 자신 그 자체로 존중 받을 수 있는 시민 개인으로서, 연속적인 삶의 과정에서 상호의존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망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관계를 지칭하는 이름이 무엇이든 그 관계가 삶의 단위,

생활의 단위라면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고,

물적인 토대를 확보해나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가 가족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상호의존의 생태계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사회에서 시민들의 유대도 가능해진다.

이는 곧 사회의 기본단위를 가족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으로

상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 p. 89

 

 

실제로 책 안에서는 지금까지 국가와 사회가 조성해 온 위기감의 내용과 달리, 1인가구의 비율이 높음에도 고립도가 높지 않은 해외의 사례와 통계 등을 통해 가족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곧 고립으로 직결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이와 함께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하는 청년 세대 안의 불평등 문제가, 가족 안에 속해 있는지의 여부 등 '가족 자원'의 보유 여부와 큰 상관관계를 가지는 한국의 현실을 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동안 ‘가족’에게 재생산과 돌봄 등의 기능을 떠넘겨온 국가와 사회가 오히려 이성애중심 가족규범을 통해 고정관념을 형성하여 갈등을 일으키고, 근본적인 위기를 해결하기보다는 불안만 가중시켜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 삶의 모든 영역과 시점에서 시민들 간의 다양한 연대와 관계망을 만들 수 있도록, 전방위적으로 구체적인 대안과 사례를 찾고 상상하며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일지 모른다.

 

물론 비균질적인 시민들의 삶을 제도 안으로 포섭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가족규범이 추구했던 ‘생애정상성’의 허상을 해체하고 ‘가족’을 재정의하는 것은 그 자체로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의제가 되며, ‘가족’에게 미루어 왔던 기능적인 측면의 재생산이 아닌 우리 개개인의 각기 다른 삶을 재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더불어 책에도 소개되는 ‘내가 지정한 1인’ 제도, 미국의 연명의료결정법 대리인제도에서 가족의 규정 등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완벽하진 않아도 시민적 유대로 형성되는 관계망의 기반을 만들고 그 관계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나 정책에서의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가족규범과 불화하며 ‘정상 가족’ 혹은 ‘이상적인 시민 모델’과 괴리된 존재로 취약한 위치에 서야 했던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시민적 유대와 다양한 관계망을 상상하고 실천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주장하며 우리 사회의 불안과 위기, 그 기저에 있는 가족규범과 시민모델을 논의의 장으로 끌어오며,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 뿐만 아니라 각자 삶 안에서 맺어온 관계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원)가족과의 불화 혹은 가족규범과의 불화가 스스로와의 불화가 되지 않기를, 우리 모두가 가족의 이름이 아닌 ‘개인’이라는 주체로 사회 안에서 존중 받고 바로 설 수 있기를 바라본다.


 

국가와 사회는 가족의 틀을 매우 고정적인 것처럼 여기게 하고,

이에 따라 '정상가족'과 '취약가족'으로 시민의 삶이 분리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 시민들의 삶은 생애에서 누구나 취약성을 경험하고,

동시에 고유한 관계들을 쌓아 나간다.

한 개인의 삶 안에서도 삶이 얼마나 유동적인 수 있는지,

혼자 살면서도 여러 갈래의 함께 살기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이미 체감하고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해체한다는 것은

혈연가족 안에서 태어나고 살고 생을 마감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족신화를 해체한다는 것이며, 가족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삶과 죽음이 이루어짐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 pp.103-104

 

 

 

김효중 컬쳐리스트 태그.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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