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모두를 위한 그림책 잡지 - 라키비움J 롤리팝

제이포럼의 그림책 잡지 『라키비움J 롤리팝』
글 입력 2022.07.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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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여행(Journey)이기도 하고, 폴짝 뛰어오르는 것(Jump)이기도 하다. 기쁨이 넘치는 것(Joyful)이며 동시에 저널(Journal)이다. 작은 새(Jay)이기도 하며 제이(提耳)는 ‘명사. 귀에 입을 가까이하고 말함. 또는 친절하게 가르치거나 타이름’이다. 그리고 제2. 첫 번째보다 더 설레는, 제2이다.

 

 

『라키비움J』는 독자 기반의 그림책 전문 잡지다. 잡지의 발행인이자 제이포럼 출판사 대표인 전은주 대표를 비롯해 그림책 연구가, 초등교사, 영어독서지도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한다. 또 네이버 그림책 카페 ‘제이그림책포럼’을 통해 그림책을 애호하는 독자들과 활발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잡지명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도서관과 기록관, 박물관 세 가지 기능을 모두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하는 합성어 ‘라키비움’은 이 잡지의 기능적 측면을 설명하고, ‘J’는 잡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글의 서두에 인용했듯 특히 어디에나 있는 영문자 ‘J’에 『라키비움J』 만의 의미가 끊임없이 덧입혀지며 세상 하나뿐인 ‘J’가 완성됨으로써 누구에게나 언제든 새롭게 재정립 될 수 있는 ‘J’의 가능성을 말하는 문구는 그림책의 유연함을 닮았다.

 

그동안 『라키비움J』는 각 호에 레드, 옐로, 민트, 보라, 핑크 등 색깔 이름을 붙여왔다. 이번 호에는 ‘롤리팝’이라는 단어가 붙어 『라키비움J 롤리팝』이 되었다. 롤리팝인 이유는 앞선 ‘레드’부터 ‘보라’까지의 4권을 한 데 묶은 합본호이기 때문이다. 각 권에서 가장 사랑을 받은 기사들은 충실한 보강 취재를 거쳐 『라키비움J 롤리팝』으로 재탄생되었다.

 

그러나 이전 기사를 읽은 독자들이 읽기에도 충분히 새로울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 놓인 편집후기 페이지에는 이러한 문장이 적혀있다. ‘이상하다. 분명 합본호가 더 쉽대서 합본호를 만들었는데 새로운 잡지를 내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지?’. 애환이 느껴지는 필진의 한 마디는 그림책을 알리는 데 ‘진심’인 사람들의 정성을 짐작게 한다.

 

 

 

그림책은 7월의 낮도 1월의 밤으로 만들어


 

요즘처럼 무더위가 계속 되는 여름날이면 나는 한겨울밤의 풍경을 상상하는 것으로 더위를 식힌다. 건조하고 또 차갑다 못해 시린 공기, 희거나 검거나 회빛인 무채색 풍경. 그러한 상상이 필요할 땐 이 책만큼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겨울밤을 그린 그림책, 레이먼드 브릭스의 『The Snowma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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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 한 소년이 밖으로 나가 눈사람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년이 눈사람을 완성하자 그는 살아 움직이게 되는데, 둘은 잠든 부모님 몰래 집 안을 구경하고 하늘을 날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꿈 같았던 둘만의 시간은 아침이 찾아오면서 끝이 난다.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눈사람이 서 있던 자리에 찾아가지만 눈사람의 모자와 목도리만이 소년을 기다리고 있다.

 

영국의 Ramdom House 출판사에서 출간된 버전의 경우에는 이 페이지에 ‘But the snowman has gone.’라는 문장이 쓰여있다. ‘어젯밤의 일은 꿈이었다’거나 ‘눈사람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문장이 아닌, 눈사람은 사라졌다는 사실을 기록하듯 적은 이 문장은 그림과도 결을 함께한다.

 

모든 것엔 끝이 있음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 담백함, 독자에게 해석을 일부분 맡기며 ‘그들은 정말 밤하늘을 날았던 게 아닐까’ 상상하도록 하는 『The Snowman』의 은유적인 결말은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림책 세계는 그러하다. 많은 우리는 그걸 ‘어린아이의 마음’ 즉 ’동심’(童心)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건 아이만의 마음이라기보다 누구에게나 있는 아름다운 상상력이다. 또 한 편으로는 실제 어린아이의 마음은 ‘순수하고 사랑스러움’으로 표현되는 무언가보다는 훨씬 더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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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는 다양한 매력이 있지만, 무엇보다 독자의 직관력을 발휘시키는 은유적인 글과 그림이 가장 특징적인 매력일 것이다. 창의성을 염두에 둔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겠지만, 그림책은 기본적으로 상상을 요하는 매체다.

 

『라키비움J 롤리팝』의 문을 여는 첫 번째 기사 ‘아름다운 그림책 : ABC 그림책’은 그림책 세계를 한 눈에 조명한다. ‘26개 알파벳으로 26만 가지 상상력’이라는 부제목처럼, 알파벳을 다양한 방식으로 비틀고 뒤집으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 각양각색의 ABC 그림책들을 소개한다.

 

『A B See』는 알파벳 ‘C’의 자리에 비슷한 발음을 공유하는 단어 ‘See’를 대입하면서 알파벳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구현한다는 테마를 재치 있게 유희했고, 『The Gashlycrumb Tinies』는 Amy, Basil, Clara 등 ABC 순의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그린 독창적인 주제의 그림책이다.

 

 

 

쓰다듬고 뜯어보고 씹어보고, 그림책의 물성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고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자꾸만 가방을 확인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대개 책의 아래쪽에 가로로 둘러진 ‘띠지’다. 이전엔 띠지에 적힌 문구를 읽지도 않고 버리던 때도 있었는데, 출판사의 일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 용도를 고민하고 띠지를 책 한 권의 일부로 여기게 되면서 가능하면 소장하고 있다. 추천사를 읽거나 특이한 질감의 종이일 경우엔 만져보기도 한다.

 

종이책의 물성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겉싸개부터 책등, 가름끈에 이르기까지 종이책의 물성을 기발하고도 지혜롭게 활용한 그림책들을 소개한 기사인 ‘그림책 물성 안내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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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 표지의 경우 보통 책을 감싸는 겉싸개와 함께 구성되어있다. 특히 그림책에서는 분리 가능한 겉싸개가 활용도가 높은 편인데, 겉싸개를 벗겼을 때의 표지에 반전을 주거나 벗긴 표지와 겉싸개의 그림이 합쳐지며 책의 주제를 전달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노인경 작가의 『곰씨의 의자』는 겉싸개를 벗기면 주인공의 속마음이 드러나고 소피 블랙올의 『안녕, 나의 등대』는 낮과 밤의 풍경을 겉싸개와 표지 각각에 담으며 책의 주제인 등대지기의 삶을 시간대로 표현한다.

 

특히 독창성이 돋보였던 예시는 작가 지우의 두 권의 그림책이었는데, 때수건을 굿즈로 출시하기도 했던 『때』는 ‘때’라는 단어의 중의적인 의미를 활용해 겉싸개는 때수건의 까칠한 질감을 살려 만들었으며 그 겉싸개를 벗기면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중년 여성의 뒷모습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한다. 지우 작가의 다음 작품인 『나의 한 때』는 독자가 머리카락을 자르듯 가위로 겉싸개를 잘라야만 하도록 만듦으로써 독자의 직접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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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에도 책을 두르는 모양처럼 감싸안고 또 고리처럼 순환하는 의미를 담은 띠지, 앞과 뒤가 연결되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앞표지와 뒤표지, 두 표지가 이어져 완성되는 세계라면 세계의 한가운데 그어진 선이 되는 책등, 한 권의 책 안에서 유일하게 3차원의 공간을 누리는 가름끈, 책의 결을 한올한올 칠하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책머리와 책입과 책발 등 종이책 한 권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이 각양각색의 역할을 다 하는 중이었다. 그림책을 세워보고 눕혀보고 펼쳐봄에 따라 이야기는 새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곱씹으며 ‘그렇지, 이게 그림책의 맛이지’ 생각했다.

 

이처럼 이야기는 안과 밖 모든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책의 편집자나 작가의 아이디어와 노고가 곳곳에 깃든 그림책의 물성은 내용과 더불어 독자들에게 풍부한 독서 경험을 선사하고, 이는 내가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물성이 지닌 매력으로 가장 먼저 접근하고 설득하는 이유다. 오감을 활용해 뜯어보고 씹어보고 미지의 공간감을 손 안에 쥐어보는 것만으로도 그림책 세계의 뼈대와 배경이 지어지니 말이다.

 

*

 

『인어를 믿나요?』(Julián IS a Mermaid)를 쓰고 그린 제시카 러브 작가 인터뷰 기사로 시작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부터 21세기 인어 모티브의 그림책을 소개하는 ‘그림책 속 인어 변천사’로 마무리되는 대목은 연구의 심도가 느껴지는 파트다.

 

각종 매체를 통해 한국의 그림책 작가가 ‘린드그렌 상’이나 ’안데르센 상’, ‘볼로냐 라가치 상’과 같은 여러 그림책 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도 상을 구분하기엔 어려운 독자들을 위한, 전 세계 그림책계의 주요 상을 총집합한 정보 전달 목적의 기사도 있다.

 

쉬어가는 특집 기획처럼 그림책 속 인물들을 16가지 MBTI 유형으로 분류한 재치 있는 ‘캐해’ 기사나 작가들의 헌사들을 가족 헌사형이나 스승의 은혜형으로 유형화한 ‘헌사열전’ 파트도 흥미롭다.

 

인터뷰도 많이 실려있는 편인데, 외국의 그림책 작가뿐 아니라 이수지 작가나 안녕달 작가와 같은 한국의 그림책 작가의 인터뷰도 고루 담았고, 『우리는 딱이야』의 경우 글 작가와 그림 작가, 그리고 그림책의 편집자를 각각 따로 인터뷰하며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담아내며 보다 풍부한 내용을 꾸리기도 했다.

 

잡지에는 ‘여성은 왜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칼럼 두 편이 실려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출간 200주년을 맞아 나온 두 편의 그림책 『위대한 괴물의 탄생』과 『펜으로 만든 괴물 - 메리 셸리는 어떻게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을까요?』를 엮은 글이 1편이다. 연달아 이어지는 2편은 그림책 『빨간 늑대』를 중심으로 고전 동화 속 여성들의 뜨개질 행위를 여성의 글쓰기와 연결해 글쓰기를 통한 해방과 전복을 이야기한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들은 더 부풀고 새롭게 옮겨갔다. 그림책의 유연함을 닮고싶은 것에서 시작했지만,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인어가 되고싶은 소년의 이야기 『인어를 믿나요?』를 쓰고 그린 제시카러브의 인터뷰를 읽고는 뻣뻣하지만 고집스러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의 쓰임을 고민할 수 있었다. 내 방식대로 유연해지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그림책을 타고 나에서 나로 가는 여행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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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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