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보호필름을 떼어내는 일

상처 받지 않는 대신 잃는 것들에 대하여
글 입력 2022.06.1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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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누웠는데 낮에 있었던 일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년부터 '그냥 일단 해보기'를 삶의 모토로 삼아왔는데 예상치 못한 순간, 온갖 두려움, 망설임, 주저함이 증폭되어 결국엔 매일 꾸준히 해오던 일과에도 지장을 주고 말았다.


대체 뭐가 문젤까. 나의 뇌구조는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남들 다 하는 일에 이렇게 겁을 내는 걸까. 관성이 문제인가.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몸이 따라 주질 않으니 이놈의 습관은 어떻게 고쳐 먹을 수 있는 걸까.


이렇게 스스로가 밉고 원망스럽기도 꽤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나 자신이 마음에 썩 들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어떻게든 넘겨왔던 일들이 댐이 무너지듯 쏟아진 것이다. 대체, 정말, 진짜로 뭐가 문제였던 걸까.


긴긴 밤 동안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망설였을까? 뭐가 무서웠을까? 의외로 간단하게 나온 답은 뻔했다. 거절당하는 것, 혹은 인정받고 난 후에 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못난 사람이라는 걸 들키는 것.


 

거절당하고 싶지 않아. 못나 보이고 싶지 않아. 못나 보이면 거절당할 테니까. 내가 미워질 테니까. 내 옆에 있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완벽해질 수 없잖아. 그러니까 그냥 차라리 네가 나를 평생 몰랐으면 좋겠어.

 

우리 거리를 좀 두자. 내가 좀 어색하고 딱딱하게 군다 하더라도, 그게 너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그래도 그건 아마 내가 솔직하고 여유로운 척 너를 마주하다가 못난 부분을 멋없게 들켜 너를 떠나 보내는 것보다는 나을 걸.

 

이 약간의 불편은 무시하자. 나는 또 겁이 많아 결코 너에게 이 말을 전해주지는 못하겠지만. 고작 내 마음속에서만 미쳐 날뛰는 언어로 태어나 그곳에서 그렇게 죽어버리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 알아줄 수 있다면 좋겠다. 아니, 나를 어떻게 생각해도 좋으니 미워하지만 않았으면 참 좋겠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거절당하면 벌어질 수 있는 대참사에 대해서. 모르긴 몰라도 일단 그 자리에서 돌연사 하거나,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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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새로운 밤이 찾아왔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면 여전히 노트북을 켜고 글을 마구 써 내려가야 진정되곤 했다. 전원이 켜지는 그 잠깐의 시간동안 의미 없는 손장난을 치다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다.


못난이 필름. 새 전자기기에 붙여지는 투명한 보호 필름이 노트북 표면에 여태 붙어있었다. 굳이 떼었다가 하얗고 깨끗한 표면에 흠이라도 질까봐 보기에는 썩 좋지 않아도 그대로 두었던 것이었다. 이미 흠집 나고 구겨지고 때가 타 버린 필름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의 감추어 두었던 본래의 모습을 꺼내 보았다. 나도 내 안의 작고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애써 숨고, 도망쳐왔던 것이었지만 결국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보호필름을 떼어냈다. 더 이상 미리 걱정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날 것 같아서.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아니면 정말 걱정하던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건 '고작 스크래치' 일 뿐일텐데. 그게 날 어쩌지는 못할텐데.


나는 언제나 여전히 나일텐데. 누가 어떤 말을 얹더라도 나는 나일텐데. 누가 나를 거절하고, 미워하고, 그러다 결국 영영 떠나버리더라도 나는 나일텐데.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타인에게 되려 상처를 주고, 또 얼마나 오래 스스로를 가두어 왔을까. 있는 듯 없는 듯 투명하다고 하더라도 그게 없는 것이 되지는 않는데. 거추장스러운 보호필름을 붙이고 다니느라 걱정하고 망설이고 주저하던 날들.


보호필름을 떼어내는 일. 기꺼이 상처받겠다 선언하는 일. 아무리 그래봐야 나는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 일. 스스로를 견디지 말고 받아들여야지. 나부터. 스스로에게 주는 사랑만으로도 충만해질 때까지. 투명한 필름 안에 갇혀 이렇게 못난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지.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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